무인가게에서 손뼉친 할아버지, 그후로 단골이 늘었다
무인 가게 사장님이 전하는 무인 아닌 마음의 설명서. 작고 조용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소란한 하루들, 그 안에서 묵묵히 지켜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기자말>
[이효진 기자]
전라남도 순천에서 내가 운영 중인 이 가게는, 말 그대로 '사람 없는' 무인 공간이다. 누군가를 마주하지 않고도 간편하게 결제하고 필요한 물건을 가져가는 구조. 익숙한 편의점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조금 특별하다.
이곳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주요 고객은 보통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같은 학생들이다. 키오스크 이용에도 익숙하고, 편하게 물건을 사는 데에 두려움이 없다. 하지만 내가 이 가게를 연 곳은 학생들보다는 오히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훨씬 더 많이 사는 동네였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학교 바로 옆 학생들이 많은 그곳에는 비어있는 가게도 없고, 또 그곳보다 내가 선택한 이곳이 월세가 쌌다. 간판을 달고 문을 열었지만, 내가 예상했던 '학생 고객'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 근처에서 대부분 소비를 해결하곤 했다. 굳이 우리 가게까지 걸어오며 물건을 살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 어르신들은, 무인가게라는 시스템 자체에 큰 장벽을 느끼고 계셨다. 누군가에게 계산을 부탁하고, 물건에 대해 물어보며 소통하는 방식에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키오스크의 벽, 어떻게 허물까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가게 안을 유심히 관찰하던 중 한 어르신이 조심스레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그리고 결제를 위해 키오스크 앞으로 다가갔지만, 잠시 머뭇거리더니 결국 아이스크림을 다시 냉동고에 넣고 돌아서는 모습을 봤다.
'아, 이 키오스크가 정말 큰 장벽이구나.'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또 다른 분은 키오스크 앞에서 이리저리 버튼을 눌러보시다 결국 포기하고 돌아가셨고, 어떤 분은 비상 연락처 옆에 적어둔 계좌번호로 입금을 하신 후 자신이 산 물건을 사진으로 찍어 문자로 보내주시기도 했다.
'이분들도 이 가게를 이용하고 싶어 하시는구나. 그런데 그 마음을 막는 건 낯선 기계 하나일 뿐이구나.'
그래서 고민을 시작했다.
'이 벽을 어떻게 허물 수 있을까? 키오스크도 결국 하나의 도구일 뿐인데… 어르신들이 이걸 조금만 익숙하게 사용하신다면, 오히려 더 빠르고 편리하게 물건을 사가실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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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오스크 ‘이 벽을 어떻게 허물 수 있을까? 키오스크도 결국 하나의 도구일 뿐인데… 어르신들이 이걸 조금만 익숙하게 사용하신다면, 오히려 더 빠르고 편리하게 물건을 사가실 수 있을 텐데.’ |
| ⓒ 이효진 |
그러던 어느 날, 키오스크 앞에 서서 결제하다 멈춰 선 손님이 있었다. 그분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문득 설명서를 발견했다. 설명서 시선을 천천히 따라가기 시작하더니 결제 성공! 그 순간, 그분은 작은 감탄사와 함께 손뼉을 쳤다. 기분 좋게 가게를 나서던 그 뒷모습.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이 공간이 '열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한 번은 가게 청소를 하러 들른 날이었다. 한 외국인이 들어와 아이스크림을 몇 개 고르고 키오스크 앞에 섰다. 동네에 사는 분인 듯, 망설이는 듯한 표정으로 한참을 서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도와 드릴까요?"
그 외국인은 지갑을 열어 현금을 보여주며 이것으로도 결제가 가능한지를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능하다고 말한 뒤 천천히 시범을 보이며 결제를 도왔다. 결제가 끝나자, 그는 엄지 손가락을 번쩍 들며 말했다.
"최고!"
"이제 할 수 있겠어요?"
"네!"
나는 그날
무인가게가 누군가에겐 배움의 공간이기도 하다는 걸 알았다. 외국인에게도, 외지인에게도 장벽 없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모든 분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어느 날 집에서 쉬고 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가게 비상 연락처는 남편 번호였다. 할아버지의 떨리는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조심스레 흘러나왔다.
어떻게 하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까?
"결제가 안돼요. 카드 넣었는데도 안돼요. 이거 어떻게 하는 건가요?"
아이스크림을 여러 개 고르셨는데 키오스크 앞에서 막히신 것이었다. 남편은 할아버지와 함께 통화로 하나하나 단계를 설명드렸다.
"지금 상품을 바코드에 갖다 대셨나요?"
"네... 했어요."
"카드는 기계에 넣으셨고요?"
그렇게 긴 통화 끝에 결국 결제에 성공했다. 할아버지는 기뻐하며 말했다.
"됐어요. 됐어! 고마워요."
하지만 이어진 말은 뭉클했다.
"이거 통화하면서 해서 된 거지... 다음에 또 오면 헤맬까 봐... 이 가게 정말 마음에 들거든요, 가격도 좋고 물건도 좋고!"
그리고 조심스럽게 제안하셨다.
"설명서는 너무 글이 많아요. 우리 같은 사람은 긴 글이 눈에 안 들어와요. 좀 더 간단하게 알아볼 수 있게 알려주면 좋겠어요."
그 말씀에 가슴이 철렁했다. 내가 친절하게 적어둔 안내문 조차 누군가에게는 또 하나의 장벽이었다. 글이라는 장벽 앞에서 헤매는 이들이 있다는 것. 그래서 다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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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오스크 사용 방법 직접 키오스크 화면을 찍고, 단계별로 사진을 출력했다. 1번, 2번, 3번. 사진마다 번호를 붙이고 계산대 앞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였다. 글자보다는 이미지가 먼저 보이게. 최대한 단순하게. 보기 쉽게. |
| ⓒ 이효진 |
그 뒤로 키오스크라는 벽을 넘은 어르신들은 이제 당당하게 물건을 고르고 결제하며 단골이 되셨다. 이제 우리 가게는 달라졌다. 초등학생들 또한 입소문을 타고 찾아오기 시작했고 어르신들과 중년 손님들도 편하게 이용한다. 학생, 외국인, 어르신 할 것 없이 누구나 기계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당당해질 수 있는 가게. 그런 곳으로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나는 바란다. 우리의 무인가게가 단순한 판매처를 넘어 누구에게나 열린, 진짜 열린 공간이 되기를. 그 모든 시작은 단 하나의 질문이었다.
"어떻게 하면 더 쉽게 다가올 수 있을까?"
그 답을 찾아가는 이 여정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 개인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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