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간 조선시대 선비들이 지옥에서 만들어낸 낙원
[임영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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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에 있는 한국가사문학관. 15~16세기 한국가사문학이 이곳 담양에서 꽃피었다 |
| ⓒ 임영열 |
"불우한 자들이 만든 낙원"
불운한 시대를 만나 정계에서 패퇴한 이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로 낙향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은일처사(隱逸處士)'들은 현실 정치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문학과 학문으로 승화시키고 고향 후진들을 양성하며 다소나마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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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살 천재 청년의 이루지 못한 꿈이 서려서일까. 소쇄원으로 들어가는 대나무 숲길은 정갈하지만 서늘하다 |
| ⓒ 임영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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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쇄원으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대봉대가 관람객을 맞는다. 대봉대는 ‘봉황을 기다리는 곳’이라는 뜻이다 |
| ⓒ 임영열 |
전라남도 담양의 가사문학면과 광주의 충효동이 경계를 이루는 무등산 자락에는 이들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있는 세 곳의 원림과 정자가 있다. 모두 대한민국 명승지로 지정된 곳들이다. 반경 1km 내 있어 '한 마을 안의 세 명승'이라는 뜻으로 '일동지삼승(一洞之三勝)'이라 부른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37곳이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한 마을 안에 세 곳이 국가 명승지로 지정된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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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쇄처사 양산보의 사랑방 역할을 한 광풍각. ‘밝은 바람의 집’이라는 뜻으로 현판은 우암 송시열의 글씨다 |
| ⓒ 임영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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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산보의 생활공간인 제월당. ‘비가 갠후 뜨는 달’과 같다는 뜻이 담겨 있다 |
| ⓒ 임영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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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판은 우암송시열의 끌씨다 |
| ⓒ 임영열 |
담양의 시골뜨기 양산보는 15살이 되던 1517년 청운의 꿈을 안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한양으로 올라간다. 아버지 양사원은 당대 한양에서 제일 잘 나가던 개혁의 아이콘이었던 정암 조광조를 찾아가 어린 아들을 맡겼다. 이때 양산보를 조광조에게 추천해 준 사람은 인근 화순 출신으로 같은 제주 양씨 친척이었던 학포 양팽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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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쇄원 나무다리. 고향의 자연은 스승을 잃은 소년 양산보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
| ⓒ 임영열 |
하루아침에 역적이 된 조광조는 전라도 화순 능주로 유배의 길을 떠난다. 제자 양산보도 스승을 따라 낙향한다. 그리고 한 달 후 중종으로부터 사약이 내려온다. 조광조는 한 편의 절명시를 남기고 38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양산보는 눈물을 삼키며 7촌 당숙이며 조광조의 절친인 양팽손과 함께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스승의 시신을 거뒀다. 그런 다음 지실마을로 돌아와 세상 모든 일과 인연을 끊고 '자연의 낙원'을 건설한다. 20대 초반에 시작한 양산보의 낙원 건설은 40대에 이르러 원림의 모습을 갖춘다. 성산에서 내려와 오곡문 담장 밑으로 흐르는 맑은 계곡물은 작은 폭포가 되어 연못으로 모인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봉황을 기다린다는 대봉대와 생활공간인 제월당, 사랑방 역할을 하는 광풍각을 앉혔다.
뜻대로 되지 않은 세상살이에 반해 고분고분한 고향의 자연은 양산보에게 많은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소쇄처사 양산보는 55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지옥과 같은 정치판은 거들떠보지 않고 이곳에서 처지가 비슷한 문사들과 교유하며 진짜 유토피아를 꿈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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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호가 내려다 보이는 성산의 끝자락 언덕에 그림자가 쉬어 간다는 식영정이 다소곳하게 앉아 있다. 식영정은 서하당 김성원이 장인 석척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다 |
| ⓒ 임영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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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영정 현판 |
| ⓒ 임영열 |
어린 왕을 대신해 수렴청정하던 문정왕후는 친동생 윤원형에게 밀지를 내린다. 전임 왕이었던 인종의 외삼촌 "윤임 일당을 깡그리 제거하라"는 명이었다. 윤임과 윤원형은 피 터지게 싸웠지만 두 사람 다 경기도 파평을 본관으로 한 파평 윤씨들이다. 윤임 일파를 '대윤' 윤원형 일파를 '소윤'이라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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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하당이 장인을 위해 식영정을 지을 때 자신의 호를 따 서하당과 부용당을 함께 지었다. ‘서하당은 노을이 머무는 집’이라는 뜻으로 석천이 사위 김성원에게 지어준 호다 |
| ⓒ 임영열 |
이에 형 억령은 "잘 있거라 한강수야 평온하게 흘러 파도 일으키지 마라"라는 시조 한 수를 남기고 담양 성산 계곡으로 들어와 은거하며 후학들을 양성한다. 이때 운명의 제자 김성원(1525~1597)을 만난다. 임억령은 김성원에게 '서하(棲霞, 노을이 머무는 곳)'라는 아름다운 호를 지어주고 딸과 결혼시켜 사위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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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철은 이곳 식영정에서 <성산별곡>을 지었다, 식영정 뒤편에 있는 성산별곡 시비 |
| ⓒ 임영열 |
가사문학관과 붙어있는 성산의 나지막한 언덕에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식영정(息影亭)에서 임억령은 지옥과도 같은 세속적 욕망의 그림자를 내려놓고 진정한 '유토피아'를 누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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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양과 광주를 가르는 충효교를 사이에 두고 식영정과 환벽당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환벽당은 사촌 김윤제가 낙향하여 지은 정자로 ‘푸르름에 둘러 싸인집’이라는 뜻이다. 송강 정철은 이곳에서 10년 동안 열공해서 과거에 급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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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은 호남 의병장으로 유명한 김덕령 장군의 증조부다. 나주 목사와 13개 고을의 지방관을 역임하던 중 을사사화가 터지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 식영정이 마주 보이는 언덕에 환벽당을 짓고 후학을 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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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르름으로 둘러 싸인 집 환벽당 |
| ⓒ 임영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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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판은 우암 송시열의 글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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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자 마루에서 내려다본 환벽당 원림의 풍경 |
| ⓒ 임영열 |
요즘처럼 무더운 어느 여름날 16살 송강은 이곳 조대 용소에서 멱을 감고 있었다. 이때 환벽당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사촌의 꿈에 용소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용 한 마리가 보였다. 꿈에서 깬 사촌이 용소에 가보니 비범하게 생긴 소년이 물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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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촌과 송강이 운명적으로 만난 조대 용소. 470여 년 전 지금처럼 무더운 어느 여름날 이곳에서 멱을 감고 있던 소년 정철과 사촌이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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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지옥 같은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 송림 우거진 무등산 자락의 정자에서 잠시 쉬면서 옛사람들의 풍류와 함께 진짜 유토피아를 꿈꿔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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