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맞댄 사과는…다르다 [‘할말 안할말’…장지호의 ‘도발]

저녁 차려 먹을 시간에 벨소리가 울려 나가보니 어린 남자 두 아이를 데리고 젊은 엄마가 수줍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위층에 이사온 집인데 인사도 나누고,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통에 폐를 끼칠 수 있어 미리 사과드리러 왔다고 한다. 윗집 엄마가 아는 척하며 우리 부부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까불대는 아이 한 명이 덥석 우리에게 안겼다. 당황한 엄마는 어쩔 줄 몰라 했고 우리는 웃으면서 이웃이 되어 반갑다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그날 이후로 소리의 마법이 시작되었다. 어제만 하더라도 은근히 신경 쓰이던 윗집의 콩콩 소리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건강한 아이들이 배불리 먹고 하루 온종일 신나게 뛰어다니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간혹 엄마를 목이 터지도록 부르는 소리도, 아빠에게 된통 혼나는 소리까지도 들리지만 시끄럽기는커녕 커 가는 아이들로 북적거리는 일상이 가까이 느껴져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노이즈’와 넷플릭스 영화 ‘84제곱미터’는 이웃 간 층간 소음을 다루고 있다. 지옥같이 느껴지는 층간 소음을 공포영화에 가깝게 연출했다. 그만큼 층간 소음을 당하는 사람에게는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것을 말한다. 오죽하면 현실에서의 보복 살해가 심심치 않게 보도된다. 층간 소음은 법적 기준도 모호하고, 실효성 있는 대응책도 없다시피 하다. 운 나쁘게 귀에 느껴지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서로가 비난하는 속수무책이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우리 가족은 위층의 콩콩 소리가 정겹다. 어쩌다 안 들리는 날이면 아이들이 어디 아픈 거 아닌가 하고 은근히 걱정까지 된다.
위층 소음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그 소리에 아이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막연하고 실체 없는 추상적인 소음이 아니라 밝게 웃고 해맑게 커가는 아이들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말도 민망하다. 그저 인사하고, 인정하고, 사과하는 나눔을 겪었을 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세월호·이태원·무안 여객기·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의 희생자 유가족 200명을 초청해 정부를 대표해 사과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자리를 오래 기다리셨을지 모르겠다. 충분한 진상 규명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충분한 배상이나 포상, 사과나 위로가 없었다는 생각도 드실 것”이라며 “여러분의 아픈 말씀을 듣고 필요한 대책을 국민과 함께 만들겠다”고 했다. 일부 유족은 흐느꼈고, 몇몇 유족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기도 했다고 한다.
사고를 당한 당사자와 가족과 얼굴을 맞대는 자리를 이제야 대통령이 마련했다. 기존 사과와는 결이 다르다. 유족 한 명 없는 연단 위에서 노란색 민방위복을 입은 장관이 영혼 없이 고개를 조아리는 흔히 보던 모습이 아니다.
재난이 닥치면 네 탓, 내 탓으로 손가락질하거나 괴담이나 음모론을 실어 나른다. 그래서는 안 된다. 얼굴을 맞댄 책임자의 사과가 우선이다. 첫 단추는 채웠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닥친 재난에 대한 실질적인 후속 조치가 필요할 것이고, 무엇보다 장기적인 예방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1호 (2025.08.06~08.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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