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직전 신부가 하려던 고백, '그 한마디'가 가져온 파장
[조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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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영원히 그대를 사랑해> 스틸컷 |
| ⓒ (주)디오시네마 |
01.
"더는 제 안에 감춰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랑은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부터 뒤틀리기 시작한다. 혹은, 진실을 끝내 말하지 않음으로써만 간신히 지속된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2009년에 연출한 <영원히 그대를 사랑해>는 정직과 사랑 사이의 벼랑 끝에 한 인물을 세워놓고, 그 위태로운 줄타기를 통해 관계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묻는 작품이다. 제한된 공간과 인물, 결혼식이라는 시간과 같이 압축적으로 설정된 조건 안에서 영화는 정제되기 이전에 존재했을 하마구치 감독의 정서, 말과 감정의 원형적 진동을 드러내며 독특한 무게를 형성한다.
이 작품은 드라마틱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그 결은 차분하고 정제된 상태로 그려진다. 결혼식 당일, 신부 에이코(카와이 아오바 분)는 오랜만에 나타난 히사시(오카베 나오 분)와 대면하게 된다. 미술학교에서 누드모델로 일하는 그와는 옛 연인 사이로, 이 과정에서 오래 숨겨온 비밀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심지어 약혼자인 세이이치가 예식 직전,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고백하며 결혼식은 중단될 위기에 처한다. 이 단순하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진실 앞에서, 감독은 그 어떤 격정도 없이 감정의 저류를 끌어올린다.
02.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에는 언제나 많은 분량의 대화가 놓이지만, 그 말들이 진실을 직접 가리키는 법은 드물다. 이 작품 <영원히 그대를 사랑해>에서도 마찬가지다. 에이코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많은 대화는 오히려 사실을 감추기 위한 장치로 활용된다. 완성되지는 못하지만, 그가 영화 초반부에서 작성하는 편지로 진실이 고백 되기 시작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 위에 있다. 극을 구성하는 모든 말(후반부에 이르기 전까지는) 어떤 진실을 밝히는 대신 과거를 유예하고 미련을 붙들며, 현재의 결심을 굳히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표상적인 도구로서의 말, 이는 언제나 진심의 언저리를 맴돌며 표면만을 긁는 것에 그친다.
이는 일본 사회가 공유하는 보편적 정서 즉 체면, 침묵, 인내와도 깊이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이번 이야기 안에서는 사랑이라는 근원적 감정과 관계의 윤리 사이에 존재하는 딜레마를 정면으로 건드리는 트리거와도 같다. 따라서, 영화의 중심이 '무엇이 진실인가'를 밝혀내는 탐사적 문제가 아니라, '진실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먼저 말해져야 하는가'에 대한 윤리적 문제로 향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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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영원히 그대를 사랑해> 스틸컷 |
| ⓒ (주)디오시네마 |
"내 비밀이 언젠가 커다랗게 부풀어 올라 당신을 상처입히고 말 거야."
이 작품은 분명 결혼이라는 제도적 절차와 행위를 중심 배경으로 삼고 있다. 결혼식은 축하와 기쁨의 의례인 동시에 사랑의 진실이 제도와 충돌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어떤 진실은 이 의식을 기점으로 모두 지워지기를 기대받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에이코가 끝내 진실을 말하지 못한 채 결혼식을 진행하는 모습은, 이 영화의 가장 차가운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는 유령처럼 떠돌던 진실이 말해지지 않은 채 결혼의 장막 안으로 숨지 못하도록 꽤 치밀한 설계를 해가기 시작한다.
처음은 에이코와 히사시 두 사람의 대화다. 결혼식 직전에 이루어지는 이 장면에서 우리 모두는 에이코가 어떻게 불륜을 저지르게 되었는지, 세이이치(스기야마 히코히코 분)와는 왜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는지 등의 결혼 이전에 존재했던 일들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임신 사실과 그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 알 수 없다는 무거운 사실 또한 함께다. 이 장면으로 인해 아무 생각이 없던 관객 또한 이 사실에 연루되고 만다. 이 이야기에서 배제되는 것은 예비 신랑인 세이이치뿐인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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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영원히 그대를 사랑해> 스틸컷 |
| ⓒ (주)디오시네마 |
"비밀은 언젠가 들킨다는 것을."
결과적으로, 말의 여백은 모든 인물에게 진실을 은폐하고 감추기 위한 도구가 된다. 스스로 윤리의 딜레마를 풀어낼 의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말을 건네오는 에리나(칸노 리오 분)라는 인물은 입체적으로까지 느껴진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 사랑이 사랑일 수 있는지, 사랑을 지키기 위해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 진짜 용기인지 등의 수면 아래에 깔린 여러 물음을 마주해낼 수 있는 유일한 대상으로 말이다.
영화 <영원히 그대를 사랑해>는 긴 대화, 정서적 진동의 미세한 포착, 인물이 가진 도덕적 불안정성 등 하마구치 류스케가 이후 펼쳐나갈 영화 세계의 예고편과 같은 작품이다. <아사코>(2019) 속 두 얼굴도, <해피 아워>(2021)의 네 여성도, <우연과 상상>(2022)의 세 이야기도 결국은 모두 이 작품 속에서 조용히 태동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후에도 거듭하며 탐색 되는 감독의 주요 테마, 사랑이 무엇인지, 진실과 정직은 관계를 구원할 수 있는지, 말은 어떤 방식으로 폭력이 되는지 등의 문제가 모두 이 한 편의 작품 속에서 시험 되고 있다.
그렇게 보면 이 영화는 단지 감독이 보여준 미완의 실험작이 아니라, 그의 영화적 윤리와 정서가 가장 날것으로 드러난 출발점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 작품을 본다는 건 한 감독의 완성된 세계를 역행하여 탐험하는 일이며, 동시에 아직 다 말하지 못한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묻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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