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사망사고 감축 정책의 성과와 과제

도재형 2025. 8. 8.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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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재형]

최근 산재 사망사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정부는 산재 근절의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헌법상 책무라는 점에서 일하는 시민의 목숨을 앗아가는 산재 사망사고에 관한 정부의 이런 태도는 마땅하다. 근로자는 안전한 작업환경에서 일할 권리를 가진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산업 안전은 노동 인권과 괜찮은 일자리 확보의 관점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일부 기업은 산업 안전을 이윤과 효율성에 부수되는 요소로 취급하고, 쉽게 포기하거나 축소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지난 SPC 사업장 방문에서 대통령의 일련의 질문들이 가리키는 지향점도 이것인 듯하다.

이러한 어두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부족하나마 우리나라 산업 안전의 질이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2024년 임금근로자 1만 명당 사고 사망자 수를 뜻하는 '사고 사망 만인율'은 0.39‱로, 1999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0.3명대로 진입하였다. 이 성과는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2017년 이후 근로감독관의 증원 및 감독 행정 개선, 2021년 산업안전보건본부 신설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등 정부의 지속적인 정책 수행의 결과물이다. 이 과정에서 경험한 건 산재 사망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신기한 묘책이란 없다는 것이다. 단기간의 성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단 오로지 정부의 꾸준한 정책 추진과 근로감독 강화, 산재 예방 캠페인의 집중과 지속 등을 통해 산업 안전에 대한 기업과 사회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최선이자 유일한 방법이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경험에 기반해서 산재 사망사고 감축 정책 추진 과정에서 살필 몇 가지 사항을 논의하고자 한다.

먼저, 산업 안전은 사업주의 책임이란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1970년대 경제발전 시기 이후 오랫동안 우리나라는 산업 안전에 대해선 저규제 정책을 유지하였다. 산업 안전 규제는 최소한에 머물고 사업주의 재량을 넓게 인정했으며 산업 안전 시스템의 외주화를 늘리고, 제재는 관대했다. 산재 예방에 관한 기술적 접근에 집중하며 집행이 쉬운 백화점식 지원이 예방 정책의 중심이 되곤 했다. 이에 따라 산업 안전은 기업의 경영 상황에 맞춰 조절할 수 있고, 안전 시스템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만들거나 외주화하면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인식이 산업 현장에 퍼져 있었다. 사업주가 안전을 책임져야 할 범위 역시 근로계약 관계로 한정되다 보니, 이를 벗어난 노동자들의 안전은 방치되었다. 예컨대 최근의 질식 사고와 같이 통계상으론 중소기업 근로자의 사망사고로 집계되는 것 중 일부는 원청의 사업에서 일어남에도, 원청은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행을 타개하고 경영주 책임을 부과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중대재해처벌법이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사업주에게 포괄적인 위험 예방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소홀히 한 기업에 대한 제재를 강화함과 아울러 산업안전보건 법제의 보호 범위를 노무제공자 일반으로 확대하는 입법․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산업 안전은 국가의 헌법상 책무란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산재 사망사고의 예방을 위해선 정부의 각종 사업, 제도 개선 노력에 앞서 노사의 안전의식이 정착되어야 하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사업장에선 '안전 규정을 지키면 불편하고 손해다'라는 인식이 남아있다. 노사 교섭 과정에서도 임금․고용 문제가 주된 이슈이고 산업 안전 사항이 다뤄지는 빈도는 드물다. 산업 안전과 관련해선 정부가 노사의 요구에만 의존해선 안 되고, 노동 인권과 괜찮은 일자리의 보장이라는 시각에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청년들의 일자리 미스매치 문제 역시 임금뿐만 아니라 중소업체의 작업환경과 연결되어 있다. 지방 공단에 가보면 위험한 작업환경에선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고, 그보다 안전한 곳에선 내국인 청년들이 일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청년들이 서비스업에만 종사하려 한다고 지적하기 전에, 그들이 왜 그곳에서 일하려 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청년 일자리 문제에서 산업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셋째, 산업 안전의 정책 주체를 안정화하고 정책의 지속성을 확보해야 한다. 2021년 고용노동부에 산업안전보건본부가 신설된 것 역시 이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 이전까지 산업 안전 정책은 국(局) 단위에서 맡았으며 고용노동 정책 내 비중이 작고 고위직급 관료도 부족했다. 이렇게 고용노동부 조직 내에서 산업 안전 정책 주체의 입지가 열악하다 보니 정책 의제의 지속적 추진이 어려웠다. 단기적 정책이 남발되고 분산된 정책들이 추진되며, 핵심적 목표 달성에 집중하기보다 백화점식의 사업을 얼마나 많이 진행했는지가 정책 추진의 중심이 되곤 했다. 산업안전보건본부의 설치는 이러한 과거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그 본부의 설치 후에도 정책 수행에서 비슷한 문제점이 보인다면, 산업 안전 정책의 추진 주체를 강화할 추가적인 조직 개편을 검토해야 한다.

넷째, 근로감독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산업 안전 정책에서 흔히 간과되는 것이 근로감독관의 역량과 전문성이다. 근로감독관은 단순한 국가공무원이 아니라 노동법과 산업 안전 법제의 전문적 지식과 더불어 조사․수사 역량을 갖춰야 하는 전문직이다. 이 점에서 ILO 역시 근로감독관의 채용과 직무 수행에서 전문성을 확보하고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용노동 정책에서 근로감독관의 채용과 직무 교육, 경력 관리는 낮은 순위에 머물러 있다. 단지 국가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을 감독관으로 배치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그들이 근로감독 행정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실천지(實踐知)가 제대로 평가받으며 유능한 감독관이 보상받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속적이고 집중적인 산업 안전 캠페인도 중요하다. 우리가 음주 운전을 줄여간 과정을 되돌아보면 이것이 단속과 제재만큼 중요하단 걸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정책 주체는 오랫동안 과도할 정도의 단속을 진행하면서 제재를 강화함과 아울러 '음주 음전은 살인과 같다'란 인식을 사회 일반에 심기 위한 캠페인을 계속 추진했다. 지속적인 캠페인은 시민들의 음주 운전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고, 그것은 다시 단속 및 처벌에 대한 수용을 유도할 수 있었다. 산업 안전도 마찬가지다. 산업 안전과 관련해선 정말 많은 이슈가 있지만, 특히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핵심 목표를 정해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며 단속과 처벌을 병행해야 한다.

일하는 시민 1명의 목숨을 구하는 건 온 세상을 구하는 것과 같다. 노동자의 안전은 경제적 이익에 종속되어선 안 된다. 이 마음으로 끈기를 갖고 경험과 증거에 기반해 산재 사망사고 감축을 위한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글쓴이 도재형 교수는 장발장은행 심사위원, 인권연대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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