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순 엄마는 왜 맨날 우리집에 음식을 갖다주는가 [배우 차유진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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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연극으로 데뷔해 영화와 연극, 드라마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 차유진의 글입니다. <편집자말>
[차유진 기자]
"언니, 뭐해....!"
힘 빠진 익숙한 목소리가 엄마의 스피커폰에서 흘러나왔다. 건넛마을 동순 엄마가 음식을 좀 만들었으니 가지러 오라는 호출이었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한 달에 두세 번, 때로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음식을 만들어 놓고 전화를 주신다.
솔직히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팔순이 넘은 엄마에게 집까지 와달라는 것도 그렇고, 엄마 역시 매 끼를 손수 챙겨 드시는 편이라 동순 엄마의 음식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받은 반찬이 쌓여 냉장고가 가득 찬 적도 여러 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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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원 다녀온 날이면 음식을 만들어 오는 동순 엄마. |
| ⓒ 차유진 |
호의도 지나치면 부담이 된다 하지 않던가. 평소 식사 시간 외에 방해받는 걸 싫어하던 엄마가 큰숨을 내쉬며 겉옷을 챙기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동순 엄마의 음식 호출은 장마철에도, 혹한에도 계속됐다. 엄마가 가지 못할 때면 직접 차를 몰고 와 손에 음식을 쥐여주곤 바로 가버리셨다.
식사 때마다 늘어가는 동순 엄마의 음식들을 마주하자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드러났다. 엄마를 번거롭게 한 반찬들에 젓가락이 쉽게 갈 리가 없었다. 이웃사촌의 반찬 앞에서 모녀 사이에 싸늘한 냉기가 흘렀다.
"병원 갔다 온 날이면 그래."
"응?"
"투석 받고 와서 잠깐 몸이 반짝일 때 음식을 하는 거야, 살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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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물에 전까지. 동순 엄마의 선물. |
| ⓒ 차유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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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빵에 쨈, 샐러드까지. 동순 엄마의 마음. |
| ⓒ 차유진 |
"동순아, 매실 줘서 고마워."
어느새 집 안 곳곳에 동순 엄마의 흔적이 포근히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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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찬에 떡까지. 동순 엄마의 선물. |
| ⓒ 차유진 |
자주 가는 동네 카페 사장 할머님과 차를 마시며 동순 엄마 이야기를 전했다. 사장 할머님도 당신 아파트 단지에 투석을 받는 이웃이 계시다며, 그분 역시 병원에 다녀온 다음 날이면 단지 안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를 빠짐없이 챙겨주신다고 하셨다. 손수 거둔 고양이도 벌써 세 마리나 된다고 덧붙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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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순 엄마가 만들어온 반찬들. |
| ⓒ 차유진 |
몇 주가 지나고, 사회복지회관에서 줌바댄스 수업을 마친 엄마가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동순 엄마가 다시 기운을 차리셨는지 "언니~ 와 봐" 하며 손을 잡아끌더란다. 함께 내려간 주차장에는 떡이 가득 실려 있었고, 수강생 어머니들과 나눠 먹으니 단연 꿀맛이었다고 했다.
요즘 동순 엄마의 전화가 예전만큼 자주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언니, 뭐해?'라는 따뜻한 부름을 엄마와 함께 기다린다. 다시 하루를 일으켜 음식을 만들었다는 반가운 목소리를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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