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평냉과 수육을 이 가격에? 가성비 그 이상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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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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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진식당의 평양냉면 부드러운 면에 슴슴하지만 감칠맛 나는 육수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
| ⓒ 여운규 |
점심시간이 되자 모니터에 지도를 띄워놓고 사무실 인근 평냉집들을 하나하나 검색해 나갔다. 젤 먼저 떠오르는 우래옥이나 필동면옥은 너무 더운 날 찾아가기엔 좀 멀게 느껴졌다. 사무실 가까운 곳에 을밀대 분점이 있으니 거기 가볼까. 아니 그보다도, 영영 사라진 줄 알았던 을지면옥이 다시 오픈했다는데 한 번도 가보질 못했잖아. 그리로 가보나? 생각하던 내 눈에 갑자기 '유진식당' 네 글자가 들어왔다.
그렇지 유진식당! 너무 오래 잊고 있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주변 맛집답게 가성비가 최고다. 오랜만에 종로3가로 나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는 냉면 말고도 맛있는 게 너무 많지 않은가. 수육도 맛있고 녹두전은 정말 최고인데. 그렇담 혼밥으로는 무리다. 나는 급히 메신저를 열어 같이 갈 사람들을 물색했다. 그렇게 3인의 원정대가 구성됐다.
종로3가의 수문장 탑골공원
종로3가는 독특한 곳이다. 서울 한복판이지만 중심지는 아니다. 무슨 말장난이냐 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광화문에서 서울시청으로 이어지는 세종대로 인근은 그야말로 서울의 중심이고 대한민국의 핵심구역이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정부 청사와 주요 공공기관이 밀집해 있다. 번듯하고 넓은 길은 사람들로 항상 붐빈다. 한때 넥타이 부대라고도 불렸던, 이제는 넥타이 대신 사원증을 목에 걸친 직장인들이 바쁘게 오간다. 그뿐 아니라 경복궁, 덕수궁과 서촌은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밝고 흥성스러운 분위기는 동쪽으로 쭉 이어지다가 삼일대로 큰길을 건너 탑골공원을 만나는 순간 급변한다. 여기부터는 어르신들 영역이다. 탑골공원은 종로3가의 시작점이며 수문장 같은 존재다. 원각사지 십층 석탑 자체보다 거기 모여 계신 어르신들로 더 유명한, 시니어들의 핫플이다. 종각을 거쳐 탑골공원을 지나는 순간마다 묘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여기까지야 젊은이. 어서 돌아가서 일해야지. 여긴 좀 더 있다 오게. 아직은 올 때가 아니라네.' 점심때 어쩌다 이 앞을 지나노라면 마치 공원이 그렇게 말을 건네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이 동네를 틈날 때마다 기웃거린다. 매우 괜찮은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십 년 업력의 노포도 많고, 꼭 그런 집이 아니라도 정말로 가성비 뛰어난 밥집들이 널려 있다. 이 구역의 주 고객인 어르신들은 여기 와서 국밥도 한 그릇 드시고 길거리에 앉아 장기도 두시다가 친구를 만나 근처 포장마차에서 선 채로 막걸리 잔술을 드시기도 한다.
그래봐야 만 원 내외로 다 해결할 수 있다. 근처 이발소에 6000원을 내면 머리도 근사하게 손질할 수 있다. 요즘은 근처 을지로3가나 익선동의 붐을 타고 저녁이면 젊은이들이 몰려와 이 거리를 점령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해가 떠 있을 때의 종로3가는 여전히 노인들이 주인이다.
유진식당 앞에 도착했다. 이 집도 대기는 필수다. 나름 신경 써서 일찍 도착했지만 그래도 십여 분은 기다려야 했다. 저쪽 너머로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 계신 어르신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줄은 훨씬 길었다. 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선다는 것 자체를 극히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그런 수고를 거쳐서라도 먹어봐야 할 음식이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줄 서는 수고 끝에야 받아 들 수 있는 소중한 식사가 있는 법이다. 이윽고 우리 차례가 되어 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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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진식당의 평양냉면, 돼지수육, 녹두전 |
| ⓒ 여운규 |
먼저 냉면 육수를 한 모금 맛보았다. 맑고 슴슴한 평냉 특유의 국물인데 뒤이어 육향이 슬쩍 치고 나오고, 이내 익숙한 감칠맛 담은 향기가 슬며시 느껴진다. 이게 무슨 냄새더라 싶어 그릇을 다시 보니 다른 가게 평냉 국물보다는 약간 색이 짙다. 간장이 섞였을까 싶어 여쭤보니 맞다고 하신다(국물에 대해서는 거기까지만 알려주신다고).
면발을 후루룩 들이마시면 살며시 올라와서 부드럽게 끊긴다. 부담스럽지 않게 푸근하게 씹히다가 끝 무렵엔 구수한 향도 아련하게 느껴진다. 순 메밀면은 아니라고 하는데 메밀 함량이 높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여하튼 참 좋은 면이다.
차가운 돼지 수육은 약간 두껍게 썰어냈다. 조금 질기려나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전혀 단단한 식감이 아니다. 무척이나 부드럽고 야들야들하다. 순식간에 사라진다. 녹두전 역시 명불허전. 도톰하게 부쳐냈는데 이른바 겉바속촉의 결정판이다. 둘 다 냉면과 너무 잘 어울린다.
같이 간 동료들의 찬탄이 이어진다. 두 분 다 여기가 처음이라는데, 소개한 사람으로서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단순히 값싸게 평양냉면을 맛볼 수 있으려나 했는데 기대 이상이란다. 그렇지. 여기는 단순히 가성비만으로 평가받을 집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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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로3가 "더 쌍화"의 쌍화차 세트 몸에 좋은 것들로만 구성돼 있다.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것처럼 |
| ⓒ 여운규 |
직장인들의 식후 커피란 미어터지는 카페에서 목소리를 높여가며 전쟁 치르듯 마시는 게 일반적인데, 여기서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 찻집에는 70~80년대 히트 송이 흐르고, 옆 테이블에는 그 노래들이 유행할 때 역시 인생의 절정기를 맞으셨을 법한 어르신 두 분이 앉아 어느 친구의 암이 뼈까지 전이됐다더라 하는 말씀들을 무심하게 나누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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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해선생 흉상 |
| ⓒ 여운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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