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에서 비정규직 투쟁까지, 삶이 된 저항의 역사

김정대 2025. 8. 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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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운동과 '꿀잠', 고운으로 시작한된 투쟁이 현재의 삶이 된 활동가들

[김정대]

지난 7월 4일 저녁 서울 영등포구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에서 북콘서트가 있었다. 무대 뒤편 스크린에 비추어진 북콘서트의 큰 제목인 '나의 고운 나의 삶 나의 투쟁' 그리고 작은 제목인 '고운으로 시작된 나의 투쟁은 나의 삶이 되었다'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큰 제목을 얼핏 보고 '고운'을 "곱다"라는 의미로 착각했다. 그리고 곧 '고운'이 '고등학생운동'임을 알게 되었다. '고등학생운동'은 나에겐 좀 생소한 말이다. 학생운동이란 말은 주로 대학생들의 반독재 투쟁과 민주화운동에 사용하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학생운동의 다양한 주체의 한 부류인 고등학생을 기억하기 위해서, 그리고 실제 학생운동에서 고등학생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서 '고등학생운동'이라는 명명은 필요했다. 사실 이 북콘서트의 배경이 된 책 이름은 '고등학생운동사'이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학교와 사회를 바꾸고자 뜨겁게 싸웠던 고운을 기록한 최초의 책이다.
▲ 고등학생운동사 책표지
ⓒ 동녘
이날 무대에 마련된 의자에는 진행을 맡은 '다른몸들'의 이혜정, 고등학생운동사의 기획자이자 공저자인 조한진희, 그리고 낯익은 꿀잠 식구들인 김소연, 유흥희, 황철우가 이야기 손님으로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나는 전에 김소연과 유흥희가 '정화여상 사학비리 민주화투쟁'에 깊이 관여했다는 말은 듣기는 했지만, 그 활동을 '고운' 활동으로 자리매김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아마 그 활동에 참여했던 이들 중에서도 그것을 '고운'으로 의식하지 않았던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고운'을 이야기하는 이 북콘서트는 과거의 '고운' 활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그 활동의 의미를 마음에 담도록 하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조한진희는 고운의 마지막 세대가 되어 버린 책임 위에서 고등학생운동사 책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고운 시절 많은 이들이 퇴학과 구속에도 굴하지 않고 치열하게 투쟁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록이나 평가도 남기지 못하고 고운이 소멸했고, 고운을 했던 이들 중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그 역사를 기록하고 고운이 우리 사회에 남긴 것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전했다.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의 운영과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황철우는 너무 어린 나이에 사회운동의 시작인 '고운'을 경험했기에 다른 평범한 삶을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잘못된 세상을 상대로 저항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런 활동은 그의 '고운' 활동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는지 보여주는 한 예이다.

사실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도 '고운'의 영향을 '나의 투쟁'이라는 삶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고운'은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고운' 이후 그들의 현재 진행형이 된 '고운' 활동으로 기륭 투쟁과 꿀잠 활동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 고등학생운동사 북토크:나의 고운 나의 삶 나의 투쟁: 고운으로 시작한 투쟁은 삶이 되었다 북토크 무대에 있는 사람들. 왼쪽부터 이혜정, 김소연, 조한진희, 유흥희, 황철우
ⓒ 권정기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투쟁

나는 가톨릭교회의 예수회 소속의 사제로서 가톨릭 신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목활동뿐만 아니라 다른 일반 사람들도 만나 그들의 기쁨과 희망, 고통과 절망의 상황에 동반했다. 그런 일반 사람들을 만나는 일로 나는 2003년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문재훈 소장)에 결합했다. 김소연도 이 상담센터의 운영에 함께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그를 만나게 되었다.

그 당시 그는 자신과 같은 '고운' 출신인 유흥희와 기륭전자에서 비정규직으로 노동하고 있었다. 그들이 재직하고 있을 당시 기륭전자의 파견 노동자들은 회사의 길게는 9개월, 짧게는 3개월의 초단기 계약으로 인하여 극심한 고용불안을 겪고 있었다. 이런 고용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그들은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우리 노동법의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노동자 보호와 안정적인 고용 관계 유지를 위해 제조업에서 직접 제품을 생산하는 업무에 파견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법의 취지이다. 그래서 기륭전자 노동조합은 회사에 외주용역으로 파견된 노동이 불법이므로 불법을 시정하고 자신들을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해 주길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그들을 이동전화 문자로 계약 해지 통보를 했다. 그래서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2005년 7월부터 회사를 상대로 파업 투쟁을 시작했다.

기륭전자 노동조합원들은 이 파업 투쟁을 진행하면서 노숙과 천막 농성, 몇 차례에 걸친 단식, 3보 1배, 삭발, 고공농성, 100일에 가까운 단식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싸움을 이어갔다. 나도 이들과 연대해서 투쟁 현장에서 여러 차례 미사를 함께 봉헌했고, 기륭공대위에 결합해서 사측과의 교섭에도 참여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 원내대표실을 점거하여 대표와 면담도 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싸움은 장기전이 되어갔다.

사회적 합의

그러던 중 기륭전자 노동조합은 파업 투쟁을 시작한 지 1865일 만인 2010년 11월 1일에 회사와 극적인 사회적 합의를 일구어냈다. 기륭전자(대표이사 최동열)와 금속노조(위원장 박유기)는 국회 본관에서 조인식을 열고, 사회적 통합과 노사 상생을 위해 갈등을 종식하고 회사 발전을 위해 상호 협력, 노력하기로 하며 기륭전자는 비정규직 조합원 10명을 고용하기로 한다는 내용의 합의서에 서명한 것이다.

기륭 조합원들은 같은 해 11월 5일 건물을 신축하기 위해 여기저기 파헤쳐져 어수선한 기륭전자 구사옥 공터에서 기륭전자 승리 보고대회를 열고 그동안 연대해 준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답례를 하는 자리를 가졌다. 기륭전자 비정규 여성 노동자들이 잘못된 사회구조에 도전장을 내고 햇수로 6년의 긴 싸움 끝에 쟁취한 승리였으니 얼마나 감격적이었겠는가.

2년 미만의 불법파견 노동자들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 승리는 마침내 2년 미만의 불법파견에 대해서도 사용자에게 직접 고용을 요구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싸움은 단지 기륭 조합원들의 권익만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을 위한 싸움이기도 했다. 이로써 노동자들은 싸움을 어떻게 해야 하고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기륭 조합원들은 당장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없었다. 회사는 이 사회적 합의에 정규직 복직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1년 6개월의 유예를 조건으로 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1년 6개월을 기다렸다. 햇수로 6년이 넘는 긴 시간을 싸웠던 그들에게 싸우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서 1년 6개월을 기다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1년 6개월을 기다리기 위해 그들은 서로 돈을 조금씩 출자하여 조그마한 다가구 주택을 사무실과 같은 공간으로 임대했다.

회사를 상대로 싸움을 이어갔을 때 여성 노동자들에게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생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회사는 주변의 음식점과 상가에 그들이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먼 곳에 가서 생리적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화장실이 있는 그 집은 그들에게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

휴지 조각이 된 사회적 합의

하지만 기륭전자 사측의 치사함은 1년 6개월이 지난 후에 드러났다. 그들은 1년 6개월 동안 아무런 복직 준비도 하지 않았고, 또 1년 6개월의 유예를 요구했다. 노동자들은 유예기간으로 1년을 받아들였고 2013년 5월 10일 현장에 복귀했다. 기륭 조합원 10명은 거의 8년 만에 현장에 복귀했으나 회사는 처음부터 이들을 위한 생산라인을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매일 출근하여 회사 회의실에 모여 업무대기 상태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회사는 이들을 받아들일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고 이미 중국에 있던 기륭 공장도 매각했고, 기륭 본사 신사옥을 매각하는 등 알짜배기 고정자산을 다 처분한 상태였다. 3년 전 국회에서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서명한 사회적 합의는 휴지 조각처럼 버려지듯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이로써 기륭 조합원들은 무언가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 기륭분회 투쟁 일터의 광우병 비정규직 철폐하자
ⓒ 정택용
사회적 투쟁으로의 전환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 개소

기륭전자 사측의 사회적 합의 파기로 기륭전자 조합원들이 기대했던 정규직 전환도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다. 이들은 기륭전자 사측의 사회적 합의 파기를 보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기대하는 정규직 전환은 비정규직 법안이 있는 한 개선될 수 없음을 확인했다.

그래서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자신들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싸움을 넘어 '비정규직 법안 철폐'라는 사회적 투쟁으로 전환했다. 그 첫 번째 싸움으로, 기륭전자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2014년 12월 22일 추위를 뚫고 비정규직 법안 철폐와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옛 기륭전자 본사 앞에서 청와대를 향해 오체투지 행진을 시작했다.

기륭전자 조합원들의 대 사회적 투쟁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싸움의 두 번째 계획으로, 기륭전자 조합원들과, '기륭 공대위', 그리고 기륭 조합원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과 여러 시민 단체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정적인 쉼터를 마련하기로 계획했다. 이 쉼터는 숙식 공간, 공동식당 겸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와 미조직노동자들을 위한 교육, 문화, 연대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나도 다른 몇 사람과 함께 기륭 조합원들의 상상을 지지해 달라고 스토리펀딩에 글을 올렸다. 그러나 이 미션의 마지막은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지인들을 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인들에게 연락해서 후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우리가 처음 계획한 쉼터는 집을 임대해서 운영하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계획을 수정하여 공간을 우리가 소유하여 운영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그래서 계획보다 좀 늦은 2017년 8월에 지금의 영등포 신길동에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이라는 이름으로 개소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집을 우리의 활동에 맞춰 수리하고 개조하기 위해서 자원해서 나섰다. 그렇게 그 더운 여름 많은 사람이 꿀잠 개소를 위해서 행복한 전쟁을 벌였다. 그때 나는 해외에서 늦은 공부를 하고 있어서 이 행복한 전쟁도 꿀잠 개소식도 참석하지 못했다.

고운으로 시작된 나의 투쟁은 나의 삶이 되었다

'김소연, 유흥희, 황철우', 이 이름에는 '고운'을 경험했고, 같은 또래이고, 기륭 투쟁을 함께 했으며, '희망버스'를 운행했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 '비정규직 이제 그만', '꿀잠'으로 이어지는 활동을 이끈 주역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2008년부터 기륭공대위에서 기륭 투쟁을 지원했던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는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맞서 35미터 크레인에 홀로 올라 싸우고 있던 김진숙 지도위원의 절규가 사회적 메아리가 되도록 '희망버스'를 제안했다.

그리고 2011년 6월 11일 1차 희망버스가 부산으로 향했다. 이 상상과 활동은 우리 사회의 노동운동이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목표로 활동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이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에 황철우가 있었다. '고운'은 그에게 그런 상상과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소연에게 '고운'은 기륭 투쟁의 사회적 투쟁 전환이라는 꿀잠의 탄생과 운영이라는 역할로 이어지고 있다.

유흥희에게 '고운'은 '비정규직 이제 그만'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당하는 부당함을 사회에 알리고 고발하는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북콘서트의 작은 제목인 '고운으로 시작된 나의 투쟁은 나의 삶이 되었다'는 출연자들의 자기 고백이다. 이들은 과거의 '고운'의 역사가 현재에 어떻게 능동적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산 증인들이다. 지금 그들은 50대 중반의 나이에 접어들었기에 그 정신과 마음에는 신선함과 함께 지혜로운 성숙함도 함께 있다. 그들의 활동에서 보여지는 유쾌함이 바로 신선함이고, 끈기와 지속성은 바로 성숙함이 주는 지혜이다.
▲ 고운동문회 2025년 6월 진행 된 고운 동문회
ⓒ 고운동문회
하느님은 멀리 있지 않다

비정규직 제도와 같은 잘못된 사회구조로 인하여 많은 사회적 약자들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고통당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서로 단절된 지극히 개인주의화 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당하는 고통에 대해서 위로를 받길 원할 뿐 사회구조가 만들어 내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개인의 문제로 보고 신경도 쓰질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에 의존하여 위로와 치유를 받으려고만 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서 기도한다.

그들은 종교가 자신을 마술 세계로 데리고 갈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의지하는 신을 자판기 정도로 전락 시킨다. 자판기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돈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그것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들은 종교를 통해서 그들 앞에 펼쳐진 현실을 올바로 대면할 힘과 지혜를 얻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사회)를 강조하고, 종교와 사회에 투신하는 삶을 살아간다. 이런 의미에서 '고운'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은 매우 건강한 사람들이다.

그리스도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감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표시를 성사(聖事, sacrament)라고 한다. 그들의 행동은 이 사회에서 함께 살기 위한 사회적 투신이었다. 그리고 함께 산다는 것은 '하느님다운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들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본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활동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게 해 준 '성사'와 같은 활동이라고 말한다. 그들을 만나 함께 활동한 것은 나의 행운이었다. 나는 그들로부터 세상을 보는 건강한 시각을 배웠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늘 고맙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정대님은 천주교 예수회 신부이며 비정규직노동자의집 꿀잠 운영위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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