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려는 부모, 위태로운 가정 지키려는 12살 소녀
[김성호 평론가]
올 여름 열린 제22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작은 노바 아미와 벨크로 리퍼의 작품 <불타오르다>였다. 이 영화에서 캐나다 출신 두 감독은 전 세계에서 급증하고 있는 대형 산불과 관련한 독자적 시각을 선보인다. 산불을 재해로, 소방을 그에 맞서는 진화로만 바라보던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선제적으로 불을 놓아 재난을 막는 원주민 부족의 전통적 대응, 또 산불이 숲을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효과까지를 보이는 다큐멘터리다.
작품은 기존의 전면 진화방식의 산불대응이 기후위기와 맞물려 폭증한 전 세계 초대형 산불 앞에 무력하게 패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열을 받아야만 씨앗을 방출하는 식물군 또한 있다는 점에서 생태계가 산불을 자연적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학술적 분석 또한 설득력을 얻는다. 불이 토양을 더 강건하고 비옥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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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사 스틸컷 |
| ⓒ 찬란 |
그럼에도 인간은 큰 불조차 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지혜로써 터득했다. 특히 여러 농경문화권에선 의도적으로 큰 불을 일으켜 쌓인 건초를 태우거나 하는 등의 행사를 축제 등으로 발전시켜 이어오는 사례가 발견되기도 한다. 한국에선 쥐불놀이가 대표적이다. 병충해를 퍼뜨리고 농작물을 해하는 유해동물을 쫓고 그 알을 제거하는 효과가 커 오랫동안 행해져온 축제라 알려져 있다.
불이 새로움을 일으키는 사례가 그저 이뿐 만은 아니다. 때로 도시를 파괴하는 불조차 새로움의 근간이 된다. 온 도시를 휩쓰는 대규모 화재 이후, 대규모 자본이 부동산을 매집하고 재건작업에 돌입해 도시와 공동체를 새로이 건설하는 사례가 미국 서부 등 대규모 산불피해를 입은 지역에서 흔히 발견된다. 피해를 입은 이들에겐 재난이지만 문명과 자본의 관점으로 보자면 건설이며 활기를 더하는 일이 되는 아이러니다. 모든 걸 파괴하는 불이 관점을 달리하면 시작이고 잉태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2025년 여름, 한국 영화계가 지난 시대 일본 영화감독 소마이 신지를 조명하고 있다. 일단의 영화팬 사이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아온 <태풍클럽>이 1년 만에 재개봉하고, 또 다른 대표작 <여름정원>과 <이사>도 30여 년의 세월을 건너 최근 개봉했다. 특히 뒤 두 작품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게이조 공동선언 이후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뤄지기 전에 제작된 작품으로, 이번이 한국에서 첫 정식개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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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사 스틸컷 |
| ⓒ 찬란 |
<이사>는 열두 살 소녀 렌코(타바타 토모코 분)의 성장기다. 아름답고 발전적이며 선형적 전개를 이루는 통상적 성장드라마와 달리, 렌코의 성장이란 그리 편안하지만은 않다. 도리어 재앙이고 재난에 가깝다. 한바탕 산불이 덮치고 지나간 뒤의 자리와도 같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성장이라 적는다. 앞의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또 쥐불놀이가 태우고 난 논밭이 더욱 건강하고 풍요로운 내일을 기대하게 하듯이.
영화는 렌코네 집의 식사자리로부터 출발한다. 식탁을 가운데 두고 렌코와 부모가 앉아 밥을 먹는다. 화목한 일상이라 해야 좋을 이 장면은 그러나 다분히 상징적으로 러닝타임 동안 이들이 겪을 불행과 갈등을 짐작케 한다. 이 장면에서 쓰인 식탁은 도대체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독특한 생김이다. 좁고 긴 삼각형으로, 좁은 선을 카메라 저편에 두고 꼭지점 쪽을 이편에 두었다. 어머니는 카메라 쪽에서 왼편에 앉았고, 아버지는 오른편, 렌코가 좁은 선 쪽에 앉았다. 좁고 뾰족한 삼각형 식탁이 그 자체로 불안한 감상을 자아내는 가운데, 별 말 없이 이뤄지는 이들의 식사가 또한 가족의 화합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임을 알도록 한다.
일례로, 식사 중 아버지 우루시바 켄이치(나카이 키이치 분)가 가운데 놓인 소스를 집는 순간이 있다. 이때 맞은편에 앉은 어머니 우루시바 나즈나(사쿠라다 준코 분)도 소스를 집으려 드는데, 약간의 차이로 켄이치가 먼저 소스를 차지한다. 흥미로운 건 그 다음인데 켄이치가 뿌리고 난 소스를 다시 제 자리에 두지 않고 편히 제 앞에다 놓는 것이다. 나즈나 입장에선 집기 불편한 상황, 영화는 이를 통해 켄이치의 무심함과 배려 없음을, 또 이미 많은 것을 놓아버린 이들의 관계를 효과적으로 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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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사 스틸컷 |
| ⓒ 찬란 |
관객은 켄이치와 나즈나의 관계, 또 별거에 이른 둘을 바라보는 렌코의 마음을 차츰 알아간다. 학교를 땡땡이치고 이삿짐 실은 트럭에 올라탄 렌코가 아버지가 살 집에 도착하여 보이는 행동부터가 그러하다. 렌코는 방에 막 놓인 장롱을 두고, 여기 장롱과 (아마도 제가 어머니와 살고 있는) 집 장롱이 연결돼 있었으면 좋겠다고 농담처럼 말한다. 여기 장롱의 문을 열고 저기 장롱의 문으로 나올 수 있다면, 그건 어린애 특유의 동화적 상상이기도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거리가 멀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기도 하다는 것을 관객은 조금씩 알게 되는 것이다.
<이사>는 렌코의 절박한 투쟁기다. 점점 멀어져만 가는 부모의 관계 속에서 제 자리를 위태롭게 느끼는 아이의 마음이 영화 내내 부각된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렌코는 그 또래 아이들 마냥 해맑거나 천진할 수 없다. 이기적이고 철없을 수 없다. 어른과 다름없이 조숙하다. 흔히 이런 류의 영화, 불행하고 위태로운 환경의 아이들은 비슷한 경향을 드러낸다. 너무 빨리 어른스러워진다.
조숙은 성장이 아니다. 그건 차라리 방어기제에 가깝다. 두터운 외피를 갑주처럼 두르는 일이다. 판단할 수 없는 걸 판단하고 감내할 수 없는 걸 감내하려 힘을 다해 쌓아 올린 벽이다. 오늘의 생존과 내일의 생장을 바꾸는 것이다. 성벽 바깥, 찬란한 미래를. 영화 속 어른스러운 렌코의 모습이 꼭 그러하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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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사 포스터 |
| ⓒ 찬란 |
흔히 오른 방향은 나아감이고, 왼 방향은 물러섬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이슬람을 제하고 대부분의 문화권이 글자를 가로쓰기해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읽어나가는 때문이다. 세로쓰기의 경우 좌철(책 왼쪽을 묶음)이 아닌 우철이 원칙이고, 일본은 우철해 세로읽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는 하지만, 가로쓰기의 경우엔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읽어나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로부터 사람들은 흔히 왼편이 시작이고 오른편으로 나아감을 자연스레 여긴다. 영상 문법 또한 이를 기준으로 짜이게 마련인데, 영화 속 렌코가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달릴 때 우리는 어딘지 퇴행적이며 도망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소마이 신지가 대부분의 달리기를 이처럼 연출한 데 분명한 의도가 있다 봐야하는 이유다.
영화 내내 도망치던 렌코, 그러나 아이는 마침내 현실과 마주할 밖에 없다. 아이뿐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모든 재난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는 일이다. 렌코도 마침내 그 사실을 깨닫는다. 영화 후반부 축제신, 또 이어진 긴 방황과 초현실적 전환, 그리고 반복되는 소녀의 외침은 <이사>를 특별하게 하는 요소다. 렌코가 끝내 부모의 갈라섬이 어찌할 수 없는 현실임을 깨달은 이후, 아이는 그대로 내달려 어느 농촌마을의 축제 현장에 도착한다. 축제는 우리네 쥐불놀이처럼 짚단을 큰 불로 태우는데, 그 불길을 영화는 인상적으로 포착하는 것이다.
태우는 큰 불길은 그 자체로 소모이며 파괴이고 재앙이지만, 타는 짚단이며 논밭을 넘어 내년의 수확이란 순환의 삶 전체로 볼 때는 재생이고 진정이며 풍요로움의 발자국을 이루는 일이다. 렌코에게 닥친 부모의 불화 또한 그와 같아서, 애써 외면하고 도망치며 어떻게든 엮어보려는 헛된 수고 끝에 아이는 마침내 감내하고 감당하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저 바다 앞에서 부모와 제가 올라탄 배가 활활 불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연신 "오메데토(おめでとう, 축하해)"라고 외치는 렌코의 모습이야말로, 저 자신의 오늘을 불태우고 다가올 내일을 인정키로 하는 아이의 전환을 상징하는 명장면이다.
그래서 <이사>는 참혹한 성장영화다. 저의 오늘을, 이제까지의 대처를, 희망과 기대를 모조리 불사르고서야 간신히 얻어내는 내일의 기약이고 희망이다. 그것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부모의 이혼일 수 있고, 또 다른 부정적 무엇일 수 있겠으나, 렌코가 더는 도망치지 않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점에서의 성장이기도 하다. 어쩌면 변한 것은 그저 마음가짐일 뿐, 모조리 불타 재만 남는 것이 아닌가 걱정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어떤 식물은 불 가운데 놓여야만 씨앗을 터뜨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다. 산불이 숲을 더 강건하게 하듯, 때로는 재난이 인간을 나아지게 한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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