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머리에 사람 몸통, 발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신
2025년 7월 15일부터 22일까지 학교 동문 여럿이 인도네시아의 두 섬을 다녀왔습니다. 섬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몇 차례 소개하려고 합니다. <기자말>
[문진수 기자]
아궁산(Gunung Agung)은 인도네시아 발리 섬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해발 3142미터로, 길리 섬에서도 산 정상이 가깝게 보일 정도로 섬 동쪽에 우뚝 솟아 있다. 1963년 이후로는 분화한 기록이 없지만, 지표면 아래에 마그마가 끓고 있는 활화산이다. 발리 사람들이 신령이 깃든 영산으로 추앙하는 곳이기도 하다. '아궁'은 발리어로 숭고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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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사키사원 입구에 서 있는 문 찬디 벤타르라고 부르며, 지붕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
| ⓒ 설지원 |
사원 입구에 두 개의 돌기둥이 좌우대칭으로 서 있다. 찬디 벤타르(Candi Bentar)라 부르는 건축물로, 발리의 힌두 사원 입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이다. 거울처럼 마주 보고 서 있는 두 개의 기둥은 선과 악, 내면과 외면, 신성과 일상이라는 이원성 사이의 조화를 상징한다고 한다. 힌두교의 철학은 빛과 어둠, 창조와 파괴, 물질과 정신처럼 이원론적 관점에 서 있지만, 동시에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조화를 이룬다는 세계관을 견지한다.
지붕을 달아 두 기둥을 연결하지 않고 개방형으로 설계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입구는 두 개의 기둥으로 읽힐 수도, 하나의 조형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분리되어 있으나 거울처럼 상대를 반사하고 서 있는 단일체. 대척점에 선 정(正)과 반(反)이 포개져 새로운 긍정(合)으로 발전하는 원리. 종교적 가치관을 건축물에 담아낸 혜안이 놀랍다.
이 관문은 외부 세계에서 신성한 공간으로 들어서는 입구다. 사원에 들어서려면 의복을 단정히 해야 한다. 발리의 전통 의상 사롱을 입는 게 관행이다. 사롱은 허리에 둘러 입는 길고 헐렁한 천을 말한다. 사원 입구에서 직원들이 방문객들에게 일일이 사롱을 입혀준다. 신에게 바치는 제물, 차낭을 파는 여인들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든다.
수많은 아바타를 가진 흰두교의 신들
입구 앞 광장에 힌두의 신들을 조각한 석상이 보인다. 발리 힌두교에는 수많은 신들이 존재하며 저마다 고유한 영역을 관장한다. 창조의 신 브라흐마(Brahma), 번영의 신 비슈누(Vishnu), 파괴의 신 시바(Shiva)가 대표적인 신들이다. 힌두교의 삼주신(Trimurti)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독립적인 존재이면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삼위일체다. 하나의 신을 셋으로 의인화해서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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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주신 중 하나인 시바를 태운 소를 형상화한 석상 발리의 신들은 바하나라고 부르는 운송수단을 가지고 있다. |
| ⓒ 설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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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신, 가네샤 |
| ⓒ 손경미 |
해발 1000미터에 들어선 사원의 지형은 평지가 아니다. 산 중턱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사원을 탐방하려면 야트막한 오르막길을 걸어가야 한다. 물과 과일, 기념품을 파는 가게와 상점들이 줄지어 서 있다. 사원 곳곳에 주변을 어슬렁거리거나 누워서 자는 개들이 많이 보인다. 인도네시아의 무슬림들은 개를 불결한 동물로 여기지만, 발리 힌두교도들은 고양이보다 개를 선호한다.
사원 곳곳에 신에게 바치는 공물 차루(Caru)가 놓여 있어서 먹거리를 고민할 이유가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생긴 모양새와는 달리 개들은 순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발리를 여행하다 보면 도심이든 시골이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개를 볼 수 있다. 발리 사람들은 기르는 개에게 밥과 잠자리를 제공하지만 가두지 않는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일부로 보는 듯하다.
사원이 시작되는 중앙 돌계단은 사진 찍기 명소다. 약간의 비용을 지불하고 사진사에게 촬영을 의뢰하면 물에 비친 그림자처럼 초현실적인 반영 사진을 만들어준다. 카메라 앞에 거울을 대어 피사체를 반사하는 원리다. 계단 위에 사원 입구에서 본 두 개의 기둥이 서 있어 멋진 장면을 연출한다. 관광객들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기념 사진을 찍는다.
신과 인간, 자연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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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원 제단에 놓인 차낭사리(Canang sari) 차낭은 바구니, 사리는 본질을 뜻한다. |
| ⓒ 설지원 |
뒤를 돌아보니 사원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원주민 길잡이가 사제에게 예배를 볼 수 있겠는지 묻자, 고개를 끄덕이며 손목에 검정, 빨강, 흰색의 삼색 실을 묶어준다. 실은 삼주 신을 상징한다. 트리 다투(Tri Datu)라고 부르는데,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악령을 물리치게 해 주는 부적처럼 인식된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자, 머리에 성수를 뿌려준다.
이어 손바닥에 물을 부어주며 마시라고 한다.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신성한 기운을 받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물의 원천이 어딜까 궁금했으나 사제가 주는 신성한 물을 감히 거절할 수 없어서 순순히 받아 마셨다. 발리 힌두교에서 물은 중요한 종교적 매개물로 여겨진다. 발리인들은 신성한 물에 머리를 적시고 몸을 담그면 몸과 마음이 깨끗이 정화된다고 믿는다.
기도는 세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합장한 손을 머리 위, 수평, 가슴 아래를 향하게 하고 기도문을 외운다. 위는 하늘, 수평은 인간, 아래는 땅을 가리킨다. 트리 히타 카라나(Tri Hita Karana). 신과 인간, 자연의 조화를 뜻하는 발리 힌두교의 핵심 가치를 나타내는 동작이다. 가톨릭 신자가 기도할 때 십자가 모양의 성호를 긋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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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원에서 기도하는 발리 힌두교인들 예배를 보려면 흰 옷을 입어야 한다. |
| ⓒ 설지원 |
힌두교는 창시자가 없고 유일신을 섬기지 않는다. 발리 힌두교는 현세적이고, 정령(Hyang)을 섬기며, 박제화된 교리를 따르기보다 인간과 자연, 신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토착 신앙과 기성 종교의 다양한 요소들을 융합해 자신들만의 독특한 체계를 만들어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 발리에 가면 발리인들의 생각과 삶을 존중하면 된다.
언젠가 이곳을 방문할 기회가 생기게 되면, 힌두의 여러 신들 가운데 특별히 마음이 끌리는 신에게 소원을 빌어 보시기 바란다. 멀리 외국에서 온 낯선 이방인의 정성에 감동해 은총을 내려줄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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