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이 질책했다지만... 이대론 여자들의 죽음 막을 수 없다 [이슬기의 뉴스 비틀기]
[이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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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5일 오전 대전 교제살인 사건 피의자 A(20대)씨가 입원 중이던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경찰에 체포돼 대전서부경찰서로 들어서고 있다 |
| ⓒ 연합뉴스 |
최근 잇따라 일어난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의 양상이다. 피해자들이 과거 경찰에 신고했던 전력들이 드러나면서 이들 범죄를 막지 못하는 법 제도의 미비, 검경의 안일한 대응 등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언론 보도들에는 '피해자가 처벌 불원 의사를 밝히지 않았더라면', '지급된 스마트워치를 몸에 지니고 있었더라면' 같은 가정도 뒤따른다.
그러나 이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거나 부수적인 것들에 골몰하는 일이다. 애초에 가해자가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으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남자가 무수히 많은 여자를 죽이는 '구조'에 관한 질문이 선행돼야 한다. '왜 남자는 여자를 죽이지?'라는 질문에서부터야 우리는 이 참극에 관한 실마리를 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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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 ⓒ 이희훈 |
그러나 한국에서 '젠더 기반 폭력'이자 '여성혐오 범죄'는 늘 논쟁거리가 된다. 가해자를 악마화하는 한편, '정신질환자의 소행'이라는 라벨을 붙이며 타자화하고, 여성혐오 범죄라는 호명에는 '프레임'이라는 백래시가 쏟아진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두고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정신 나간 사람이 사람을 죽였는데, 그걸 '여자라서 죽었다'고 치환하는 것 자체가 '젠더 갈등' 프레임을 만드는 것"(2021년 MBC 백분토론 출연 당시)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나마도 강남역 살인사건이나 경남 진주 편의점 폭행 사건처럼 '모르는 여자'를 향한 공격에는 '여성혐오'를 붙이다가도, '아는 여자'를 죽이면 그건 또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는 설명이 붙는다. 2022년 9월, 서울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흉기를 휘둘러 역무원 동기를 살해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발생 당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번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성과 여성의 이중 프레임으로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부가 설명이 이어졌다. 김 전 장관은 그해 7월에 일어난 인하대 성폭력 사망 사건에도 "여성 폭력이 아니다"라고 했다가 입장을 바꾼 적이 있다.
그러나 일련의 아는 여자에 대한 남자들의 폭력이, '남자에 의한 여성종속'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이 또한 여성혐오 범죄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이 쓴 논문 '젠더폭력과 혐오범죄: 여성에 대한 폭력은 혐오범죄인가? 논쟁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혐오 범죄란 "개인 피해자에 대한 증오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닌, 피해자가 속한 그룹에 대한 적대감에 의해 저질러지는 범죄"다.
스토킹 살인, 교제 살인의 주된 동력은 '나를 거절한 여자에 대한 분노'이며, 이렇게 행사되는 폭력은 허 조사관의 지적처럼 남성 지배를 유지·지속시키려는 목적을 갖는다. 이러한 생각이 구조적으로 공고한 이상, 피해자는 바로 그 여성이 아니어도 다른 여성으로 충분히 대체 가능하다. 이것을 우리는 여성혐오 범죄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편견을 부수려면
책 <판도라의 딸들, 여성혐오의 역사>의 부제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편견'이다. 책을 쓴 북아일랜드의 남성 저널리스트 잭 홀런드는 여성혐오는 사회에서 받아들인 상식의 일부로 여겨지며, 거의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한다. 숨 쉬듯이 너무 당연해서, 인지조차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연쇄살인의 피해자가 유대인이거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다면 국가적으로 '인종 테러'라는 호명이 뒤따랐을 테지만, 여성 연쇄 살인범들이 저지르는 행동은 심리학자들의 영역이 된다. 이는 인종, 종교, 계급과 달리 여성은 여성 혐오자들조차 피할 수 없는, 제외할 수 없는 '타자'로서 모든 영역에 걸쳐 얽혀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을 젠더 기반 폭력이자 여성혐오 범죄로 인식하고 호명하는 순간, 해법은 달라진다. 현재 '교제 폭력',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은 법적 정의가 없다. 스토킹처벌법과 가정폭력처벌법에 포섭되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에 대한 지원 체계가 미비하고, 현장에서 경찰들이 대응할 때도 어느 법령을 적용해야 하는지 혼선을 빚는다. 공식 통계도 없어 실태를 파악할 수도 없다.
'여성혐오 범죄'라는 인식과 호명을 통해서만 교제 폭력이 사람의 탈을 쓴 악마에 의한 일탈적 범죄라는 시선도, '매 맞는 여성'을 필연적으로 여기는 현장 경찰의 안일한 대응도, 여자를 죽이는 남자의 등장도 '구조적으로'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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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이 교제폭력 범죄 관련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
| ⓒ 연합뉴스 |
그러나 사후적인 관심, 범죄 피해만 부각시키는 방법으로는 계속되는 여자들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은 젠더 기반 폭력이자 여성혐오 범죄라는 명확한 관점과 이에 입각한 시스템 구축이 뒤따라야 한다.
여성 폭력을 막을 확고한 비전을 가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지명이야말로, 폭력 근절에의 의지를 보여주는 첫 번째 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혐오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그것이 선행되지 않는 한, 모든 것은 대책이 아닌 방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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