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칼럼] 정당 안의 아스팔트

민주당의 경선은 싱겁게 끝났다. 박찬대 후보가 강선우의 낙마를 주장하고 그 직후 강선우가 자진 하차하자 ‘명심이 박찬대에게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으나, 결과는 강선우를 옹호한 정청래 후보의 당선으로 나타났다. 듣자 하니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박찬대 후보가 7:3의 비율로 정청래 후보를 압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일반 당원들이 포함된 전체 투표는 정청래 후보가 6:4의 비율로 박찬대 후보를 앞지른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를 두고 ‘명심을 누른 어심(김어준의 마음)’이라는 얘기가 나오나, 이번 선거는 ‘명심 대 어심의 대결’이라기보다는 ‘조직으로서 정당 대 네트워크로서 정당의 대결’에 가깝다. 즉 유튜브 정당이 전통적인 오프라인 정당을 접수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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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에 포획된 여야 정당 정치
국힘에선 극우 세력에 아첨 현상
혁신은커녕 퇴행 거듭 정치 위기
이제라도 당원과 접촉면 넓혀야
」
조직으로서 정당이 산업혁명과 산업사회의 산물이라면, 네트워크 정당은 정보혁명과 디지털 경제의 산물이다. 온라인 거래에 밀려 오프라인 상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현상이 정치의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할까.
이는 민주당만의 현상이 아니다. 유튜브 방송이 정당정치를 집어삼키는 현상은 국민의힘에서 나타나고 있다. ‘꽃보다 전한길’이라는 유튜브 계정(구독자 123만)을 운영하는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그는 또 다른 계정(‘전한길 TV’)의 구독자 10만 명을 당원으로 가입시켜 국민의힘을 접수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지난 7개월 동안 요란하게 해왔던 ‘윤 어게인 운동’을 이제 아스팔트 위에서 당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얘기다.
“당 대표든 최고위원이든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지키는 후보를 지지할 것이며, 그분과 거리를 둔다면 낙선 운동을 하겠다.” 그는 당대표 선거의 면접관이 되어 후보들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묻는 질의서를 보내겠노라고 공언했다.
여기에 김문수·장동혁 후보는 기꺼이 그의 제안에 호응했고, 안철수·조경태·주진우 후보는 그의 질의를 거부하고 나섰다. 이로써 ‘친윤-반윤’의 대립으로 짜였던 전당대회 구도가 졸지에 ‘친길-반길’의 수준으로까지 떨어져 버렸다.
최고위원 선거도 마찬가지다. 신동욱 의원은 “전한길 강사가 주장하시는 것 중에 맞는 것들도 많이 있다”며 그를 옹호한 반면, 박정훈 의원은 “전한길 품기는 정당 내 다양성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며 당 주류의 태도를 비판하고 나섰다.
지난 총선 때는 민주당의 당선인들이 당선증 들고 유튜버 김어준의 양옆에 늘어서 기념사진을 찍더니, 이번에는 국민의힘에서 대표와 최고위원의 후보들이 앞다투어 전한길이라는 유튜버에게 아첨하는 추태를 보인다.
현재의 분위기를 보면 전한길이 지지하는 후보가 대표로 선출될 것으로 보인다. 최고위원 선거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결국 반성과 혁신을 하겠다더니 아스팔트 정당으로 거듭나 다시 ‘윤 어게인’을 외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정청래 대표가 당선된 후 ‘협치보다 내란척결’이라며 제1야당을 무시하고 적대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계엄령은 계몽령’이라 외치던 이를 모시고 ‘윤 어게인’을 외치고 있으니, 결국 내란이 아직 진행 중이란 얘기가 아닌가.
대선에서 압승을 안겨준 ‘내란 척결’의 프레임이 대선 후에도 효력을 안 잃었으니, 민주당에겐 이보다 큰 경사가 없다. 국민의힘의 주류도 이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나,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당의 미래도, 보수의 미래도 아니고 오직 자기들의 기득권. 과거에 이런 일이 벌어지면 당원과 지지자들이 분노하고, 그에 맞추어 대대적인 정풍운동이 일어났을 것이다. 탄핵을 두 번 당한 정당에서 선거란 선거엔 줄줄이 패하고도 이상하게 변화의 조짐이 없다. 왜 그럴까?
그것은 당원과 지지자들의 정치적 학습을 그동안 당이 아니라 유튜브가 대신해왔기 때문이다. 정치의식 자체가 유튜브로 형성되다 보니, 당원과 지지자들의 적어도 과반이 그 운영자들의 극단적 사고에 거의 ‘세뇌’ 당한 상태다. 혁신의 진짜 걸림돌은 유튜버로 빚어진 당원과 지지자들의 이런 극우적 마인드. 당의 주류인 친윤세력은 거기에 슬쩍 편승해 그것을 자기들에 대한 변명과 자기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뿐이다.
계엄과 탄핵이라는 거대한 파국을 맞고도 깨지지 않은 단단한 머리가 내년 지방선거의 패배와 같은 자디잔 파국 따위로 깨질 것 같지도 않다. 그들에겐 자신들의 인지부조화를 해결할 막강한 무기(‘부정선거론’)가 있다.
이 수렁에서 벗어나려면 온·오프라인에서 당원·지지자들과의 정치적 접촉을 확대하고 일상화하여, 인내를 가지고 그들을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상황에선 설사 혁신세력이 당권을 잡아도 유지할 수가 없다. 모두가 짜증 나는 상황이다. 계파 간의 충돌을 일으키기보다 이제라도 당원과의 접촉면을 넓혀 나가는 것, 그것 외에 다른 수는 없어 보인다.
진중권 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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