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인간, 공동진화의 시대
챗GPT→로봇 두뇌…디지털서 현실로
인공지능(AI) 기술 진화가 급격히 진행 중인 요즘이다. 믿기 힘들 만큼 빠른 발전 속도에 감탄과 탄식이 함께 터져 나온다.
이세돌 9단 완패로 세상이 떠들썩했던 ‘알파고 모먼트’가 2016년, 과거엔 상상도 못한 정교하고 자연스러운 답변을 척척 내놓으며 전 세계를 챗봇 신드롬에 빠뜨린 ‘챗GPT 모먼트’가 2022년의 일이다. 이후 몇 년간 AI는 진화를 거듭했다. 이제는 특정 분야를 넘어 일상과 산업 현장 곳곳에 AI가 침투하는 바야흐로 ‘AI 대전환’ 시대에 접어들었다.
급격한 혁신은 우려를 낳기 마련이다. 너무 높은 AI 수준에 기대를 넘어 두려움까지 함께 커지는 상황이다. 인간 역할이 대체되고 AI가 사실상 세상을 점령하는 디스토피아에 대한 걱정이다.
AI 트렌드 최전선에서 분투 중인 기업 관계자와 전문가의 생각은 다르다. AI가 진화하는 만큼 인류 역량도 그만큼 오르는 ‘공동진화(Co-revolution)’ 개념을 제시한다. 일상 속 친구로, 직장 내 동료로 AI를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한다면 인류는 전에 없던 삶의 질 향상을 누릴 수 있다는 의견이다. 최신 AI 기술과 도입 성공 사례를 통해 인류 진화를 이끄는 AI 대전환 트렌드를 조명해본다.

AI가 우리 삶에 깊숙이 침투했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체감하는 이는 적은 편이다. 근래 들어 AI 기술이 워낙 빠른 속도로 발전 중인 탓이다. AI와 인간이 ‘공동진화’하고 있는 요즘, AI 현 발전상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진화에서 뒤처지지 않을 수 있다.
매경이코노미는 지난 7월 24일과 29일 이틀에 걸쳐 창간 46주년 콘퍼런스를 열었다. 주제는 ‘AI와 인간, 공동진화의 시대’다. AI와 함께 진화 중인 인류의 최신 모습을 각계 전문가의 진단을 통해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술에 막연한 두려움을 갖는 대신 AI와 공존이라는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면, 인류 역시 더 빠른 속도로 진화할 수 있다는 통찰이 핵심이다. 스스로 판단해 직접 실행까지 옮기는 ‘에이전틱 AI’, 디지털을 넘어 물리 세계까지 영향을 미치는 ‘피지컬 AI’까지. 최신 AI 기술 동향을 한데 모아 분석했다.

삼성·LG 투자받은 스킬드AI ‘각광’
매경이코노미는 7월 29일, 서울 중구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에서 ‘AI와 인간, 공동진화의 시대’라는 주제로 창간 46주년 콘퍼런스를 열었다. 포티투마루와 공동 주최한 이번 행사에는 정·재·관계 인사 300여명이 모여 AI가 바꿔가는 일상과 기업 경영, 그리고 앞으로 필요한 AI 정부 정책에 대해 논의했다. 장대환 매경미디어그룹 회장,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비서관, 정진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최중경 한미협회장을 비롯해 매경이코노미가 매년 선정하는 ‘100대 CEO’ 기업 최고경영자와 AI 업계 관계자가 자리를 빛냈다.
콘퍼런스에서는 최신 AI 기술이 일상과 기업 경영을 어떻게 진화시키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는 생생한 발표가 이어졌다.
AI 기술 트렌드 최전선에는 ‘피지컬 AI’가 자리한다. 챗GPT로 대표되는 대규모언어모델(LLM)이 그야말로 ‘언어’를 생성해낸다면, 피지컬 AI는 로봇을 매개로 ‘동작’을 구현한다. 로봇이 상황에 따른 행동을 추론해 그 답변을 ‘몸으로’ 보여주는 식이다.
기존 로봇이 인간이 입력한 명령을 그대로 수행하는 데 그쳤다면, 최근 연구는 로봇이 스스로 판단한 후 알아서 일을 처리하는 ‘로봇 지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로봇의 두뇌 역할을 하는 AI를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RFM)’이라고 한다.
이번 콘퍼런스에서도 RFM을 향한 관심이 뜨거웠다. 최근 가장 각광받는 곳은 미국 스타트업 ‘스킬드AI(Skild AI)’다. 2023년 창업 후 불과 2년 만에 기업가치 6조원을 인정받아 현재 유니콘 반열에 오른 회사다. 엔비디아·제프 베이조스·소프트뱅크 등 세계적인 투자자는 물론, 올해 6월에는 삼성전자와 LG CNS로부터 동시에 전략적 투자를 받으며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번 콘퍼런스에는 스킬드AI 공동창업자인 아비나브 굽타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실시간 영상 중계 방식으로 RFM 현주소와 앞으로 발전 방향을 소개했다.
스킬드AI가 개발 중인 RFM 핵심 경쟁력은 ‘범용성’이다. 저마다 형태와 목적이 제각각인 여러 로봇에 하나의 두뇌 모델을 적용하는 식이다. 가정용·산업용 로봇 할 것 없이, 또 네발 로봇, 두발 로봇, 집게 로봇을 막론하고 그 어떤 로봇에도 탑재 가능한 두뇌다. 챗GPT에 질문을 하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답을 내놓는 것과 비슷하다.
아비나브 굽타 COO는 “집 안은 물론 식료품점, 공장, 건설 현장 등 다양한 공간을 누비는 로봇에 모두 동일한 모델이 적용돼야 작업 효율성을 높이고 개발 비용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모든 AI가 그렇듯, RFM 개발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역시 ‘학습’이다. 챗GPT 같은 대형언어모델은 그나마 학습이 수월한 편이다. 기존 언어로 된 디지털 콘텐츠가 워낙 많은 데다, 변수도 적다.
피지컬 AI는 다르다. 학습할 동작 데이터가 절대 부족하고,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현실 세계에서는 학습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스킬드AI는 ‘호기심 기반 학습’이라는 신개념 기술로 학습 한계를 극복한다. 로봇 스스로 ‘무엇이 새롭고 흥미로운가’를 판단해 찾아 직접 현실 세계를 탐험하고 시행착오를 겪도록 하는 ‘인공적 호기심’이다. 새로운 상황이나 예측 불가능한 결과에 흥미를 느끼고,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동작을 시도하도록 설계했다.
덕분에 스킬드AI가 개발 중인 로봇은 돌발 상황에 강하다. 이족 보행 로봇을 발로 걷어차도 스스로 뒷걸음질쳐 중심을 잡고 넘어지지 않는다. 사족 로봇은 갑작스러운 장애물 등장에도 순간 움찔할 뿐 유유히 갈 길을 간다.
피지컬 AI는 특히 제조업 강국인 한국에서 더 절실한 기술이다. 인구 구조 변화로 노동 인구가 부족해졌고 인건비 상승으로 가격 경쟁력은 떨어지는 중이다. 로봇과 공존을 통해 한국 제조업이 다시 한번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상 AI·에이전틱 AI 화두로
생성형 AI 발전을 보여준 세션도 눈길을 끈다. 권한슬 스튜디오프리윌루전 대표가 연사로 나선 ‘파괴적 혁신 AI 영상’이다. 스튜디오프리윌루전은 국내 최초 AI 영상을 전문 제작하는 스튜디오다. 순수 AI로만 제작한 영화로 국제 AI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최근엔 언어를 넘어 영상이나 이미지를 학습해 결과를 생성하는 ‘영상언어모델(VLM)’ 기술 진보가 뚜렷하다. ‘지브리풍 프로필 사진’ 같은 단순 이미지 외에도 광고 영상, 나아가 중·장편 영화까지 AI가 만들어낼 정도로 품질이 향상했다.
AI로 만든 영상은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배우나 스태프는 필요 없다. 컴퓨터그래픽(CG) 작업도 AI가 대신 해낸다. 영상부터 효과음과 OST까지, AI에 프롬프트(명령어)를 입력하면 AI가 알아서 뽑아낸다. 이날 권 대표가 보여준 영상은 그가 순수 AI로만 제작한 중편 SF 영화의 한 장면. 실사와 구분이 어려운 배우들 액션 장면을 비롯해, 폭발과 레이저빔이 난무하는 화려한 대규모 우주 전쟁 모두 AI가 만들었다. 권 대표는 “통상 SF 영화 하나를 제작하려면 수백억원 예산이 필요하지만, AI 필름 메이킹 기술을 활용하면 90%도 안 되는 비용으로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동환 포티투마루 대표는 최근 급속도로 발전한 ‘에이전틱 AI’ 실사용 사례를 소개했다. 이제는 AI가 스스로 계획을 수립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수준까지 다가섰다. 말 그대로 ‘전문 비서’ 역할을 수행한다.
현장에서는 여행 계획을 짜는 실시간 에이전틱 AI 영상이 공개돼 관심을 모았다. 여행에 함께 갈 구성원만 입력했는데 여행 구성원과 어울리는 장소와 액티비티를 추천해준다. 항공사 사이트에 들어가 비행기표를 직접 찾는가 하면, 숙박 사이트에서 다양한 상품을 비교, 결제까지 진행한다. 김 대표는 “해외에서는 기업 조직 구성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인력 충원 시 ‘AI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라’ ‘AI보다 더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소개하라’ 같은 사항을 요구할 정도”라며 “조직 효율과 생산성을 위해 AI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고 말했다.

암 정복 등 인류 난제 해결 가능
AI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다지만, 아직은 그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중론이다. 다만 이를 극복해낸다면 그동안 인류가 풀지 못한 여러 난제를 AI가 해결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날 전문가 대담에는 이인아 서울대 뇌인지과학과 교수와 정지우 작가, 신재민 트릴리온랩스 대표가 참석해 AI 한계와 전망을 두루 짚었다.
뇌 개발과 활용법을 제시한 ‘퍼펙트 게스’ 저자이자 미국 유타대에서 신경과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 교수는 AI를 인간의 뇌와 비교해 그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가장 큰 차이는 유연성 여부다. AI는 데이터 패턴 학습에 최적화돼 보편적인 행동을 모방할 수 있지만 즉각적인 대처는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어 “반면 인간 뇌는 그 자리에서 바로 학습하고 행동을 바꿀 수 있는 유연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베스트셀러 ‘분노사회’의 저자이자 문화평론가 정지우 작가는 AI 저작권 관련 오해와 이견을 풀어내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AI로 생성한 콘텐츠 저작권이 명령어를 입력한 이용자에게 있는지 여부는 회색지대에 놓여있다. 정 작가는 “한국저작권위원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AI가 만든 제작물을 인간이 수정할 경우 저작권이 발생한다. 이때 인간이 수정한 해당 부분에만 저작권이 발생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며 “어디까지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는지 애매한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AI와 관련돼 현존하는 여러 문제를 극복해내면, 그간 인류가 풀지 못한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왔다. 한국어 특화 LLM을 개발한 신재민 트릴리온랩스 대표는 “분야를 막론하고, 전 세계 모든 AI 회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건 결국 슈퍼인텔리전스(초지능)”라며 “인간을 뛰어넘는 AI를 개발하면 암 치료나 신종 바이러스 백신, 제조업 혁신 등 그동안 풀지 못한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1호 (2025.08.06~08.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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