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유쾌한 선언 "경력단절이 제 경력입니다"

향다 2025. 8. 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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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만드는 사람들] 한걸음랩 정윤주 활동가

세상의 변화에는 늘 공익활동가가 있습니다. '공익활동가주간'은 공익활동가들에 대한 존중과 지지를 바탕으로 사회적 인정 문화를 만들기 위한 전국 단위의 행사입니다. 2025년에는 6월 30일부터 7월 4일까지 일주일 동안 전국 곳곳에서 공익활동가를 응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연대의 장이 열렸습니다.

공익활동가 한 사람 한 사람을 조명하는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일과 삶 이야기를 기록하는 공모 프로젝트입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과 지리산이음이 함께 기획,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자말>

[향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한걸음랩 정윤주 활동가
ⓒ 향다
"경력단절이 제 경력입니다."

유쾌한 선언 같지만, 그 속엔 '나는 왜 당당할 수 없는가'에 대한 긴 질문과 다시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육아와 돌봄, 그리고 비가시적인 시간 속에서도 사람은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 그 당연한 진실이 사회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정윤주 활동가는 '한걸음랩'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균열을 만들고 있다.

한걸음랩은 경력보유 여성들이 모여 스스로의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고자 만든 비영리 임의단체 '한걸음시민랩'에서 출발했다. 지금은 콘텐츠와 웹서비스를 통해 경력공백을 가진 구직자들이 다시 일과 연결될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향후 소셜임팩트 기업으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그곳의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정윤주, 그녀가 바꾸고자 한 것은 단지 언어가 아니라, 존재를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 경력단절이 아닌 경력보유라는 말을 쓰고 계세요. 하고 있는 활동과 관련해 '보유'라는 말을 쓰는 이유가 있을까요?

"2022년, 한 비영리기업의 '경력단절 여성'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지금 같이 활동하는 멤버들을 거기서 만나기도 했고요. '이렇게 능력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경력에 공백이 있다는 이유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있지?' 하는 생각에 화가 났어요. 새벽에 회의를 해서라도 프로젝트를 마치는 책임감, 팀원들과 소통하는 과정, 그렇게 이뤄낸 일의 결과물 등 모든 것이 정말 직장 다닐 때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완성형이었어요. 그래서 '이걸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던 것 같아요.

두 번째로는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정부 일자리 지원센터에서 제공하는 사업 내용을 보면,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기술을 배우는 일을 지원해요. 또는 특별한 기술 없이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소개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어요. 이미 육아나 기타 사유로 공백이 생긴 여성들을 무언가 '부족한' 사람으로 취급한다는 느낌이었죠. 공백 이전에 내가 했던 일과도 관계가 없고, 내가 하고 싶었던 가치 있는 일도 아니었죠.

무엇보다 그 공백을 바라보는 나 스스로가 사회로 나갈 자신이 없는데, '언제까지 이력서를 써와라', '어느 기업에 지원해라' 하는 식의 취업 상담이 굉장히 버거웠어요. 그래서 이미 충분한 능력이 있는, 경력을 보유한 여성이라는 의미에서 경력단절보다는 '경력보유'라는 말을 쓰고 있어요. 시간은 단절되지 않아요. 오롯이 살았던 그 시간이 있었고, 저의 경우엔 여전히 진행되고 있죠."

- 기존의 경력보유여성들을 면밀히 살펴보니, 개인적으로는 취업의 의지는 있으나 그 공백기에 대한 자신감이 없고, 시스템적으로도 그 공백기를 문제로 여기는 것처럼 보였군요. 사회적인 인식이나 분위기도 한몫했겠고요.

"맞아요. 취업을 위한 중간 과정 없이, 단지 취업률이라는 숫자나 성과에만 급급한 느낌이었어요. 저희가 실제 데이터로 확인하기도 했어요. 2022년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했던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취업지원서비스 중 가장 도움이 된 서비스가 '도움이 된 서비스 없음'이었고, 경력단절 이후 첫 일자리 구직 경로로는 '친척', '친구', '동료'라고 답한 비중이 42.6%였어요.

지인을 통해 취업하는 경우가 많은 것 자체가 이 사람의 공백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증거라고 생각해요. 이 사람의 역량을 그 지인은 알고 있기 때문에 추천을 해주고, 그 소개가 취업으로 이어지는 거죠. 자격증이나 쉬었던 기간보다는 '이 사람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게 저희가 지금 하는 일인 것 같아요.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어떤 능력, 그 힘을 찾아보자는 거죠. '당신은 이미 충분히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다'라는 걸 이야기해 주고 싶었어요.

지인을 통해서 취업하는 경우가 많다는 건, 이 사람의 공백 그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증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사람이 가진 역량을 그 지인은 알고 있기 때문에 추천해주고 그 소개가 취업으로 연결된 거니까요. 어떤 자격증이나 일을 쉰 기간이 아니라 '어떤 능력이 있는지'에 포커싱을 두는 게 저희가 지금 하는 일인 것 같아요. '당신은 이미 모든 걸 충분히 가진 사람이다'라는 것을 얘기해주고 싶었어요."

"직함은 없습니다만, 소속은 정윤주입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한걸음랩 정윤주 활동가
ⓒ 향다
- 육아든 돌봄이든, 어떤 이유에서 생긴 공백이 결코 부끄럽거나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었다는 말씀이네요.

"맞아요. 사회가 나를 뭔가 '하자 있는 사람'처럼 보는 것 같아서 화가 나요. 어찌 보면 저는 지금도 경력보유 여성인 상태거든요. 임의단체에 소속돼 있을 뿐, 월급을 받거나 4대보험을 내고 있지 않으니까요.

저는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케이스인데, 육아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온전히 저의 선택이었고, 그 시간 동안 저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성장했다고 느껴요. 이 육아의 경험으로 저는 육아하기 전의 저보다 더 일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성장을 증빙하거나 숫자로 치환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 시간이 별것 아닌 시간으로 치부되는 데 분노해요.

그래서 어디서 저를 소개할 자리가 있으면 '경력단절이 제 경력입니다. 당당한 경력보유 여성 정윤주입니다'라고 말하죠. 컨퍼런스나 워크숍 신청서에 소속과 직함을 쓰는 란이 있잖아요. 그때 소속이 없으면 제 이름을 써요."

'소속: 정윤주 (나는 나에게 소속돼 있다).'
'직함: 없음.'

'나는 나에게 소속돼 있다.' 그 문장은 웃음처럼 가볍게 흘러갔지만, 사실 오랜 시간 자신을 의심하고 움츠려 있던 나날을 지나 마침내 도달한 자리였다. 이름 하나로 자신을 소개하는 그 단순한 행위 안에는 틀에 순응하지 않고, 새로운 틀을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이 결국 그녀를 움직이게 했다.

-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어떤 문제를 볼 때, 문제를 인식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하거나 행동으로 옮기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윤주님은 그걸 해결하고자 움직였잖아요.

"하하. 저는 해보고 싶은 건 꼭 다 해야 하는 성격인 것 같아요. 대학 시절에도 그랬고요. 학교 강의실에 앉아 있는 것보다 외부에서 활동에 더 많이 참여했어요. 해외 캠프도 가고, 봉사단 꾸려서 봉사 활동도 하고, 축제나 행사 기획에도 참여했어요.

기억에 남는 일이, 그때 역사 워크 캠프로 독일에 갔는데, 독일 사람들이 자기 역사를 얼마나 반성하고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지 직접 봤어요. 현지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피부로 느꼈죠.

새로운 관심사가 생기고 '재미있어 보인다, 궁금하다' 싶으면 그곳에 나를 내던졌던 것 같아요. 결국 '이건 나와 맞다, 안 맞다. 나는 이걸 진짜 좋아하는구나, 아니구나'를 깨닫게 한 경험이 된 거죠."

- 어떤 경험의 결과가 부정적이면 그 선택을 후회하게 되지 않나요? 돌아가서 다른 선택을 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하요.

"저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거나, 그간 했던 선택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거의 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아이들을 키우느라 느꼈던 그 '늪에 빠진' 기분조차도 지금의 저에게는 엄청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그 감정을 너무 잘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그 모든 시기가 지금의 저를 만든 거예요.

그리고 제 선택을 해석하는 방식에서도 자율성을 잃지 않으려고 해요. 아이들에게 '너희를 키우느라 하고 싶은 걸 못 했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온전히 아이들을 키우고 싶었던 제 선택이었고, 아이들이 독립하기 전에 나 스스로 독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다시 일을 시작한 거니까요."

- 선택에 대한 온전한 책임감이 느껴져요. 선택을 망설이거나 새로운 도전 앞에서 두려울 때는 없으세요?

"물론 있죠. 그런데 저는 결국 '컴포트존(익숙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상태나 환경)'을 깨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한걸음랩을 운영하면서 많은 컴포트존을 깼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가 출시한 <한걸음 로드북> 마지막 부분에 '도전 과제' 쓰는 란이 있어요. 그때 많은 분이 '3년 안에 자격증 따기, 기술, 능력 취득하기'와 같은 말을 쓰셨어요. 그런데 저는 내가 어딘가에 합격하고 발탁되고, 어떤 관문을 통과해야만 능력을 인정받는 그 구조 자체가 깨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준비가 덜 됐다거나 가진 게 없다는 이유로 움츠러들지 말고, '두렵긴 한데 일단 해볼게!'라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사실 매번 두려워요. 제 내면의 비판자가 있는데 목소리가 굉장히 크거든요. 그런데 한 번 그 두려움을 깨고 나가니까, 어느 순간 사명감 비슷한 게 생기더라고요. '할 수 있구나! 이게 되는 거구나! 남들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 경력보유 여성들을 다 이 늪에서 빼내자!' 이런 생각이요.

그런 맥락에서 '공백러들의 이야기: 공백력'이라는 팟캐스트도 시작했어요. 능력 넘치는 경력보유 여성들을 널리 알리고, 우리가 공백기 동안 쌓은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정윤주 활동가의 '깨부수기'는 자기 극복에 머물지 않았다. 누구나 한 번쯤 늪에 빠졌다고 느끼는 그 시기를 함께 건너갈 수 있는 구조로 만드는 일에 닿아 있었다. 공백의 시간 속에서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하는 장치, 그 믿음을 이어가기 위한 실험들이 '한걸음랩'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여러분, 나대세요!"
 시작이 두려운 당신을 위한 하루 5분 한걸음 로드북
ⓒ 본인 제공
- 그런 철학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조직 안에서 실현되고 있는지도 궁금해요. 한걸음랩에서는 어떤 활동들을 해왔고, 지금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우선 처음 시작은 경력보유 여성들을 위한 온라인 워크숍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육아 중인 많은 여성들에게는 워크숍이 진행되는 하루 종일 시간을 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죠.

그래서 각자가 편한 시간과 장소에서 하루 5분이라도 셀프 워크북을 할 수 있도록 바꾼 것이 '한걸음 로드북'이라는 첫 번째 아이템이었어요. 펀딩도 받고, 많은 분으로부터 좋은 피드백도 받았어요.

현재 준비 중인 시제품은 '툴킷'이에요. 이 툴킷은 타인이 나의 강점이나 키워드를 발견하게 돕는 도구예요. 기존의 강점 검사지들은 시험지 같잖아요. 나는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데, 꼭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요.

저희가 지금 테스트 중인 툴킷은 대화를 통해 강점을 찾는 도구예요. 툴킷을 하는 동안 서로 의외의 키워드를 발견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거죠. 나아가 실물로 진행하는 툴킷과는 달리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웹서비스도 기획하고 있어요."

- 한걸음랩, 그리고 정윤주 활동가가 활동하면서 꼭 지켜내고자 하는 키워드가 있다면요?

"저희의 핵심 키워드는 '전환'이에요. 경력보유 여성에 대한 사회적 관점, 우리가 살아온 시간과 노력이 숫자나 결과로 치환되지 않고 폄하되거나 평가절하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온전히 인정받고 존중받는 일이 너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제 경력보유 여성 스스로도 '내가 정말 대단한 일을 해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전환점은 물론 '이 사람이 이렇게 대단한데 내가 왜 그동안 몰랐지?'하는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이 필요해요. 그런 전환을 가능하게 만드는 제품과 서비스가 저희 한걸음랩의 존재 이유에요."

- 한걸음랩이 앞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방향이나 지향점 있을까요?

"저는 단순히 의미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것에 그치고 싶지 않아요. 그보다는, 한걸음랩이 가진 가치를 확장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더 관심을 두고 있어요. 그래서 저를 포함한 더 많은 여성을 버티게 하는 하나의 구조가 되기를 바라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재야의 능력 있는 여성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나대자! 나서자!'"

'나대자! 나서자!' 이 말은 조용히 반복되어온 공백의 시간을 깨우는 선언이자, 스스로를 향한 주문이기도 했다. 단절이 아닌 지속의 리듬으로 존재하기 위해 그녀는 영향력을 확장하기보다 지금의 나를 유지하고, 지켜내고, 반복해서 상기한다.

공백도 자원이 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그녀는 활동과 존재 사이에서 지속가능한 균형을 감각적으로 조율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정윤주는 오늘도 한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그 발걸음에 공명한 경력보유 여성들 또한, 각자의 방식으로 한걸음씩 담담히 나아가는 중이다.

글쓴이 : 향다
삶의 전환기를 지나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들이 건네는 말 한 조각, 스쳐 지나가는 표정 하나에도 따뜻한 향기를 담아 기록하고자 합니다.
 '2025 공익활동가 주간'은 공익활동가들에 대한 존중과 지지를 바탕으로 사회적 인정 문화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6월 30일부터 7월 4일까지 열렸다.
ⓒ 공익활동가주간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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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변화를만드는사람들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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