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납품 31년"...갑질 피해자는 왜 감옥에 갔나

구영식 2025. 8. 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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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갑질'로 산산조각 난 송윤섭 전 대진유니텍 대표의 꿈①

[구영식 기자]

 한온시스템 공장 앞에 선 송윤섭 전 대진유니텍 대표. 아직도 공장 입구 간판에는 '대진정공'(대진유니텍)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다.
ⓒ 오마이뉴스 구영식
지난 6월 30일 오전 11시 15분, 송윤섭 전 대진유니텍 대표가 충남 아산시 둔포읍 산전리에 위치한 한 공장의 안내간판 앞에 섰다. 연일 체감온도 33도가 넘는 무더위가 지속되면서 전국에 폭염특보가 내려진 날이었다. 길다란 간판 맨위로 'Hanon SYSTEM'(한온시스템)'이라는 기업 이름이 선명했고, 그 아래 '대진유니텍'이라는 글자가 희미했지만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 그 희미한 글자만이 이곳이 한때 송 전 대표가 운영하던 자동차 부품공장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현재는 공장의 주인이 현대·기아차 1차 하청업체인 '한온시스템'으로 바뀌었다.
"이게 내가 만든 간판인데 지금은 '한온시스템'이라고 써 있잖아. 저걸 다 빼앗겼으니 환장하지. 쳐다만 봐도 미치고 팔짝 뛴다고."

공장을 운영할 당시 송 전 대표는 매일 아침 7시부터 충남 아산시와 천안시에서 운영하던 세 곳의 공장을 돌았다. 그렇게 돌아다니던 길을 스스로 '대진로'라고 이름 붙였을 정도로 사업에 큰 애정을 쏟았다. 그는 "2차 벤더(하청업체)로서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에 부품을 납품한다는 데 자부심을 많이 느꼈다"라며 "그때 내 꿈은 현대·기아차의 1차 벤더가 되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갑자기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상 공갈죄로 구속되면서 송 전 대표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가 평생 동안 일군 공장도, 재산도 현대·기아차의 1차 하청업체('한온시스템')가 가져갔다. 현대·기아차(갑)-한온시스템(을)-대진유니텍(병)으로 이어지는 자동차산업의 하청구조 속에서 '갑을' 질의 피해자였던 '병'이 왜 감옥에 간 것일까?

'현대차-한라공조-대진'으로 이어지는 하청구조의 시작
 대진유니텍에서 만든 회사 개요
ⓒ 송윤섭 제공
 송윤섭 전 대진유니텍 대표는 고향(충남 당진군)과 가까운 충남 천안시와 아산시에 둔포공장과 성환공장, 성거공장을 세웠다.
ⓒ 송윤섭 제공
충남 당진군 출신인 송 전 대표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생활을 시작했다. 19살에 금형공장에 들어가 10년 동안 성실하게 금형기술(똑같은 제품을 반복해서 생산하기 위한 틀을 만드는 것)을 쌓은 덕분에 30살이 되던 지난 1985년 4월 서울 영등포에다 '대진금형정공사'라는 공장(중소기업)을 차렸다. 연매출 700억 원대 '대진유니텍'의 시작이었다.
"1985년 4월 1일이야. 사업을 시작한 날인데 그 날짜를 어떻게 잊겠어? 영등포 당산동에 세웠는데 처음에 미국으로 수출하는 카 스테레오 '로드스타'(스피커, 앰프, 헤드유닛 등 다양한 카오디오 제품을 제조·판매하는 브랜드)에 금형을 납품하면서 사업이 잘 됐어."

처음엔 금형만 생산하다가 사출(금형에서 제품을 뽑아내는 공정)을 추가했고, 현대·기아차의 1차 하청업체인 한라공조와 갑을오토텍, 만도기계(위니아만도) 등에 공조(空調, '공기조화장치'의 약자로 실내의 온습도, 기류, 청정도를 조절하는 것) 제품 금형 등을 납품했다. '현대·기아차-한라공조-대진'으로 이어지는 하청구조의 시작이었다. 송 전 대표는 "(하청구조를 통한) 현대·기아차와의 거래가 1985년 10월부터 시작됐고, 2016년 4월에 끝났으니 31년 동안 현대·기아차와 거래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송 전 대표는 구로를 거쳐 경기도 화성시와 평택시로 공장을 옮기며 사업을 계속 확장했고, 나중에는 고향(충남 당진군)과 가까운 충남 천안시와 아산시에 둔포공장과 성환공장, 성거공장을 세웠다. 둔포공장에서는 김치냉장고 등 가전제품의 부품을, 성환공장에서는 자동차 부품 생산에 필요한 금형과 플라스틱 신소재를, 성거공장에서는 자동차용 공조시스템(공조장치) 생산에 필요한 쿨링팬, 케이스 등을 생산했다. 세 공장의 총면적은 대지 1만3600평, 건평 9000평이었고, 직원수만 305명에 달했다. 그러는 동안 회사명도 대진정공(1990년), 위니아에어테크(가전사업본부)/대진유니텍(차량·금형·소재사업본부, 2014년)으로 바뀌었다.

"천안에 내려오면서 제2의 전성기가 됐어. 대한민국 누구보다 잘 나갔지. (공장이 한온시스템에 넘어가기 전) 매출이 750억 원(2014년 기준) 정도였다고. 전체 매출액으로 보면 위니아만도>한라공조>갑을오토텍 순(나중에는 한라공조>갑을오토텍>대유위니아)이었어. 위니아만도가 김치냉장고를 만들면서 매출이 한라공조보다 컸지."

송 전 대표는 "회사를 키우기 위해 가족들과 한 차례도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혼자서도 해외여행을 간 적이 없다"라며 "그렇게 동분서주하며 기술개발을 통한 경쟁력 향상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 오늘날의 현대·기아차가 있게 했다"라고 말했다.

대진유니텍은 금형 제작, 플라스틱 신소재 개발과 생산, 사출 가공 자동차 부품 조립 등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원스톱라인을 구축했다. 그 덕분에 현대·기아차의 플라스틱 소재 생산공장 SQ인증 심사를 통과했다(2015년). 200여 개 업체가 신청해 7개 업체만이 SQ인증 심사를 통과했는데, 그 7개 업체에 대진유니텍이 선정된 것이다.

SQ(Supplier Quality Mark)인증제도는 현대·기아차가 2·3차 하청업체들 중에서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고 공급(납품)할 수 있는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품질을 심사하는 공급자 품질인증제도다. 송 전 대표는 "그때 2018년에는 매출이 2000억 원 이상 되는 중견기업을 꿈꾸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3대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와 한국타이어 컨소시엄이 한라공조를 인수하면서 그 꿈은 결국 좌절됐다.

사모펀드 '한앤컴퍼니'가 인수한 뒤 깨진 꿈
 현대·기아차 1차 하청업체인 한온시스템이 생산하는 제품들.
ⓒ 한온시스템 홈페이지
지난 1986년 한라그룹 계열사인 만도기계와 미국 자동차기업인 포드가 50 대 50의 합작으로 자동차 부품기업인 '한라공조'를 설립했다. 하지만 지난 1997년 외환위기(IMF 사태) 당시 한라그룹의 부도로 인해 한라그룹이 보유하고 있던 한라공조 지분이 모두 포드 계열사인 비스테온(Visteon)으로 넘어갔다.

지난 2013년에는 세계금융위기(2008년)로 어려워진 포드가 비스테온의 공조 부분을 분리해 한라공조와 합병한 뒤 사명을 '한라비스테온공조'로 바꾸었다. 그러다 비스테온이 한라비스테온공조의 매각을 추진했고, 국내 3대 사모펀드 중 하나인 한앤컴퍼니(1대 주주, 50.5%)와 한국타이어(2대 주주, 19.49%) 컨소시엄이 비스테온에서 보유하고 있던 한라비스테온공조 지분 69.99%를 36억 달러(약 3조9400억 원)에 인수했다(인수계약 체결 기준 2014년 12월). 한라그룹의 색채가 강한 '한라비스테온공조'라는 사명도 '한온시스템'으로 바꾸었다.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회사(한라비스테온공조)가 기업인수와 매각을 통해 수익을 추구하는 사모펀드에 인수된 직후부터 '매출 2000억 원 이상의 중견기업을 만들겠다'는 송 전 대표의 꿈은 깨지기 시작했다.

송 전 대표는 "이익을 증대시켜 한앤컴퍼니가 원하는 금액에 한온시스템을 매각하기 위해 하청업체들에 수금대금 강제 감액, 부품단가 강제 인하, 10년 전부터 생산 중인 차종의 금형과 다른 업체에서 생산 중인 금형까지 생산성 향상을 위한 약 30억 원 상당의 수리비를 무상으로 부담할 것 등 끝없이 부당한 요구를 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정리한 '현대·기아차와 1차 하청업체의 협작에 풍비박살난 하청업체 대진유니텍'이라는 글에서 자신이 겪었던 현실을 '고발'했다.

"사출협력업체가 6개인데 3개로 줄이겠다고 (압박)하고, 납품대금 2억7000만 원을 삭감해 달라고 요구한 것에 대해 난색을 표하자 2015년 7월부터 금형 제작을 발주하지 않았다. 이런 갑질 등을 참고 견딜 수가 없어서 5000만 원을 깎아주었으나 이에 그치지 않고 곧바로 5억 원을 추가로 감액하라는 부당한 요구를 계속했다. 대금 감액 요구에 응하는 업체에는 발주를 유지하고, 그렇지 않은 업체에는 발주를 축소했다."

특히 송 전 대표는 지난 2016년 4월 6일 한온시스템의 요구에 따라 '품질 조기 안정화 확약서'에 서명했다. "당사는 귀사에 품질문제를 반복·지속적으로 발생시켜 피해를 준 점을 인정하고 대표이사 주관하에 품질개선 활동을 전개하여 조기개선 및 안정화"시키라는 지시였다. 특히 이 확약서에는 '4가지 확약사항'이 들어 있는데, 네 번째 확약사항에는 "당사는 금일 이후부터 가장 기초적인 품질문제인 파렴치한 품질문제를 발생시킨 귀사의 어떤한 조치에도 이의 없음을 확약드린다"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1년 전인 지난 2015년 대진유니텍이 원청업체인 현대·기아차의 SQ인증제도를 통과했다는 사실이 무색해지는 내용이다. 그런 점에서 이 확약서는 '갑질'을 받아들이라는 압박이나 다름없었다. 송 전 대표도 이 확약서를 "기업 포기각서"라고 표현했다.

회장 면담 다음날 열린 이사회... 30분 만에 '1300억 인수안' 통과
 지난 2016년 4월 22일 한온시스템과 대진유니텍이 체결한 사업양수도 계약서(대진유니텍의 성환공장).
ⓒ 송윤섭 제공
한온시스템의 '갑질'에 경영위기를 느낀 송 전 대표는 한온시스템 구매본부장을 통하거나 한앤컴퍼니 본사에 직접 방문하는 방식으로 윤여을 한앤컴퍼니 회장 겸 한온시스템 회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면담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하청업체가 할 수 있는 최후수단인 '공급 중단'(납품과 제품 생산의 중단)을 한온시스템에 통보했다.

이러한 대진유니텍의 공급 중단 사실을 원청업체인 현대·기아차가 알게 됐고, 다급해진 윤여을 회장과 현대차 구매팀장이 천안에 내려와 송 전 대표를 만났다(2016년 4월 20일). 송 전 대표는 "현대·기아차는 2차, 3차 하청업체가 공급 중단을 실행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당 기업을 고사시키는 일을 불문율로 실행하고 있다"라고 주장하며 "이 때문에 더 이상 사업을 지속할 수 없다고 직감해 차라리 대진유니텍을 한온시스템이 인수하거나 자회사로 삼아 이익을 나누자고 요청했다"라고 설명했다.

면담이 이루어진 뒤 한온시스템의 대진유니텍 인수는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2016년 4월 20일 송 전 대표를 면담한 윤여을 회장은 다음날(4월 21일) 오전 9시 이사회(전화회의)를 열었고, 5명의 이시가 참석한 '대진유니텍과의 합의서 및 사업양수계약 승인의 건'을 심의했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당시 이사회 녹취록에 따르면, 이인영 당시 한온시스템 대표집행임원은 "대진유니텍은 약 30년 동안 당사와 거래해온 협력업체였는데 최근 재정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업하기 곤란해지자 당사에 납품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라며 "대체 거래선을 찾을 수 없었던 당사 또한 대진유니텍이 납품하는 품목이 포함된 H백 일부를 생산할 수 없게 되어 그 결과로 저희 고객인 자동차회사(현대·기아차-기자주) 공장의 가동 또한 일부 정지되었다"라고 설명했다.

"당사는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고자 대진유니텍과 긴밀하게 협상한 결과, 현재 경영상 어려움을 겪는 대진유니텍의 사업 중 자동차 부품 생산 관련 부분을 당사가 인수함으로써 당사의 생산, 나아가 저희 고객사의 생산이 차질 없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는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한앤컴퍼니는 이날 이사회를 통해 "사업양수의 대가"로 800억 원, "분쟁해소 합의금"으로 500억 원 등 총 1300억 원에 대진유니텍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한앤시스템 이사회 의사록에 따르면, 대진유니텍 인수 결정은 30분 만에 참석자 만장일치로 이루어졌다. 이틀 뒤에 계약이 체결됐고, 1300억 원의 인수대금 중 800억 원(실제로는 원천징수 세금 100억 원을 제외한 700억 원)도 먼저 받았다(4월 23일). 하지만 송 전 대표는 이렇게 속전속결로 진행된 대진유니텍 인수가 나중에 하청업체의 공갈협박사건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국내 1위 사모펀드 한앤컴퍼니, 한온시스템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에 매각
 국내 최대 규모 사모펀드 '한앤컴퍼니' 홈페이지 시작 화면. 한앤컴퍼니는 현재 한온시스템의 2대 주주다.
ⓒ 한앤컴퍼니 홈페이지
한편 한앤컴퍼니는 모건스탠리PE의 아시아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지낸 한상원 대표가 지난 2010년 5월에 설립한 사모펀드(PEF) 운용사다. 한상원 대표는 방상훈 <조선일보> 회장의 사위다. 설립 이후 소니코리아 대표를 지낸 윤여을 회장이 합류했다. 지난 2023년 금감원 통계기준 펀드 약정액이 13조 605억 원으로 한국 PEF 운용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한앤컴퍼니는 바이아웃(Buyout) 투자, 즉 경영권을 인수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뒤 차익을 얻고 지분을 매각하는 투자방식에 집중해 왔다. 그동안 코웨이홀딩스, 웅진식품, 대한시멘트, 한남시멘트, 코아비스, 앤써치마케팅, 한진해운(벌트전용선 사업부문), 한라비스테온공조(현 한온시스템), 쌍용양회(현 쌍용C&E), SK해운, SK케미칼(바이오에너지 사업, 현 SK에코프라임), 대한항공 기내식.기내면세품 사업(현 대한항공씨앤디서비스), SKC 산업소재사업부(현 SK마이크로웍스), 루트로닉, 남양유업, SK엔펄스 파인세라믹스 사업부(현 솔믹스), 사이노슈어, SK플라즈마, SK스페셜티, SK앤펄스 CMP패드 사업부(현 엔펄스) 등을 인수하거나 지분투자해 왔다.

한앤컴퍼니는 지난 2024년 10월(매각계약 체결 기준) 한온시스템의 보유지분 약 23%(1조2277억원)을 한국타이어테크놀로지에 매각하며 2대주주로 물러났다.
 과거에 운영하던 공장 앞에 선 송윤섭 전 대진유니텍 대표. 대진유니텍은 현대·기아차 2차 하청업체였다.
ⓒ 오마이뉴스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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