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명장 허형식 장군 순국 83주기에 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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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3일은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장 겸 총참모장 허형식 장군 순국 83주기 일이다.
이후 허형식은 항일 최전선에서 맹렬히 투쟁하다가 약관 28세 때,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참모장 및 제3군장에 오른 만주 제일의 항일 명장 파르티잔이 되었다.
귀국 후 오대산 월정사에 입산, 장군의 전기를 기필, 마침내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 <허형식 장군> '을 발간하였다. 허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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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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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형식 장군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참모장 및 제3군장 허형식 장군 |
| ⓒ 민족출판사(동북삼성) |
그리하여 1915년 왕산 유족들은 괴나리봇짐을 싸서 북만주로 이주하였다. 이후 허형식은 항일 최전선에서 맹렬히 투쟁하다가 약관 28세 때,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참모장 및 제3군장에 오른 만주 제일의 항일 명장 파르티잔이 되었다.
1940년대 초 일제의 항일 세력 토벌이 극심해지자 대부분 항일 빨치산들은 국경을 넘어 러시아로 피신하였다. 하지만 허 장군은 동북의 인민들을 그대로 둔 채, 또 다른 외세에 의존하여 자신의 목숨을 구차하게 구걸치 않고자 북 만주의 동포들을 끝까지 지키며 항일 활동을 전개했다.
그런 가운데 1942년 8월 3일 새벽, 헤이룽장 성 경안현 청송령 골짜기에서 일제 토벌대의 기습 공격을 받자 당신의 부하는 살리고, 자신은 장렬히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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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생비 희생비에 들꽃을 바치다 |
| ⓒ 박도 |
필자는 1999년 여름 중국 대륙 항일 유적지를 답사 하던 중, 하얼빈 동북열사기념관에서 허형식 장군의 거룩한 행적을 알게 된 후, 크게 감동 받아 그 이듬해인 2000년 여름, 홀로 북 만주를 헤맨 끝에 장군의 희생지를 찾아 그 기념비에 들꽃을 바친 바 있다.
귀국 후 오대산 월정사에 입산, 장군의 전기를 기필, 마침내 '만주 제일의 항일 파르티잔 <허형식 장군>'을 발간하였다. 이후 고향의 뜻있는 후배들이 허형식장군기념사업회를 구성하여 해마다 장군 기일이면 장군의 생가 터 앞 왕산공원에서 추모제를 거행하다가 올해는 왕산기념관에서 추모제를 거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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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육사 허형식 장군은 이육사 시인 어머니 허길 여사의 사촌 오빠다. |
| ⓒ 이육사 후손 |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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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 중국 북만주 광야 |
| ⓒ 박도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박도 페북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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