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똥로용' 문화로 인도네시아가 1등 먹은 것
2025년 7월 15일부터 22일까지 학교 동문 여럿이 인도네시아의 두 섬을 다녀왔습니다. 섬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몇 차례 소개하려고 합니다. <기자말>
[문진수 기자]
덴파사르 응우라라이 국제공항은 발리(Bali)로 들어가는 입구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인도네시아를 재침략한 네덜란드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독립 영웅 응우라라이(I Gusti Ngurah Rai)를 기념해 공항 이름을 지었다. 해마다 2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공항을 통해 발리섬으로 들어온다. 대부분이 여행객들이다. 외국인 방문객 1위는 호주인이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물가가 싸서 은퇴한 호주 시니어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라고 한다.
국제나눔지수 1위 국가, 인도네시아
공항 출국장은 다양한 나라의 언어로 쓴 손팻말을 들고 방문객을 기다리는 현지인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여행지 안내를 맡은 젊은이가 유창한 한국어로 인사말을 건넨다. 첫 방문지는 발리섬의 문화와 예술 중심지인 우붓(Ubud)이다. 어렵사리 공항을 빠져나와 도로로 접어들었다. 모든 차량이 좌측으로 움직인다. 영국의 영향을 직접 받은 것도 아닌데 좌측통행인 이유가 뭘까. 네덜란드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17세기 초 동인도회사가 만들어진 때부터 독립을 선언(1945년 8월)할 때까지 무려 3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다. 지금 네덜란드는 우측통행을 하지만 20세기 이전에는 좌측으로 통행하는 나라였다. 우리나라 국가 철도와 지하철 1호선처럼 식민 잔재가 남겨진 셈이다(섬나라는 좌측으로 통행한다고 믿는 이가 많은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좁은 도로 위를 마치 곡예를 하듯이 달린다. 언뜻 봐도 오토바이가 자동차보다 훨씬 많다. 차간 간격이 좁아 무척 위험해 보이는데, 운전자들의 얼굴은 평안하다. 끼어들기를 하거나 앞차를 가로질러도 화를 내는 이가 없다. 낯선 장면이다. 어둠이 짙게 깔린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달려 숙소에 당도하자 먼저 섬에 상륙한 일행이 반가운 얼굴로 맞이해준다.
처음 발리섬 투어 제안을 받았을 때,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관광 목적의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비행기가 환경 오염의 일등 공신이라는 사실을 알고부터 국외 여행을 자제해야 한다는 자각이 작용한 탓이다. 그럼에도 인도네시아행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300개가 넘는 인종으로 구성된 나라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포용적인 국가가 되었을까?'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 싶어서였다.
국제나눔지수(world giving index)라는 통계가 있다. 영국자선재단(CAF)이 각 나라에서 무작위로 추출한 100명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 점수를 매겨 산출한 지수인데, 인도네시아는 2017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질문은 이러하다. ①낯선 사람을 도운 적이 있는가? ②기부나 후원을 한 적이 있는가? ③나눔이나 봉사를 한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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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나눔지수 상위 10개 국가 World Giving Index 2024 |
| ⓒ Charity Aid Foundation |
회원제로 운영되는 계 모임 아리산(arisan)은 친구나 지인들끼리 십시일반 돈을 모아 정해진 순서나 추첨에 따라 돈을 타가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어려운 상황을 겪는 회원이 있으면 먼저 곗돈을 타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형편이 나빠져 곗돈을 내기 힘든 회원을 위해 흔쾌히 대납(代納)하기도 한다. 배려와 나눔, 상부상조의 공동체 정신이 흐르고 있다.
다양한 얼굴을 한 발리
닭 우는 소리에 아침 일찍 눈을 떴다.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창밖이 환하다. 발리섬은 남위 8.4∼8.9도 사이에 있다. 적도 바로 아래다. 적도에 가까울수록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 밤과 낮이 연중 내내 12시간 단위로 교차한다는 뜻이다. 숙소 마당 모퉁이에 자리한 신당(神堂)에서 향이 피어오른다. 발리섬의 아침은 신을 경배하는 의식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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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붓 숙소 앞에 놓인 차루(Caru) 나쁜 신에게 바치는 차루는 집 앞 바닥에 둔다. |
| ⓒ 설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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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숭이 숲 입구에 있는 반얀트리(banyan-tree) 열대지방에 서식하는 활엽수종으로 30미터 높이까지 자란다고 함 |
| ⓒ 설지원 |
문화인류학자 정정훈은 '발리인에게 세속적 일상은 삶의 중심이 아니며 의례가 삶을 지배한다'라고 말한다. 발리인들은 성인식, 결혼식, 장례식 등 관혼상제를 치르는 일에 정성을 다한다. 자신들이 모시는 신이 인간계에 강림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의례라고 믿는다. 매일 발리 전역에서 사원 건립일을 축하하는 오달란(Odalan) 행사가 치러진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국가 휘장, 일명 가루다 판차실라(Garuda Pancasila)에는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다양성 속의 통일'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다. 헌법(제36조)에도 같은 문구가 명시되어 있다. 나와 다른 믿음, 가치, 신앙을 지닌 이를 인정하고 함께 걸어가는 것. 이는 인도네시아의 국가 이념이며 핵심 가치다.
이 공존의 지혜가 1만7000개 이상의 섬으로 구성된 이 나라를 가장 포용적인 국가로 만든 원동력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네시아는 우리보다 훨씬 길고 혹독한 식민 지배의 역사를 가졌음에도 하나의 조국, 하나의 민족이라는 가치를 잃지 않았다. 우리는 단일민족이면서도 남과 북이 이념으로 갈라져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이 차이는 어디서 발원(發源)하는 것일까.
다음 목적지로 떠나기 전, 숙소 주인장에게 간단한 인사말을 배웠다. 인도네시아 표준어와 발리어가 의미와 맥락을 헤아리기 힘들 만큼 차이가 컸다. 섬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서 지역어를 모르면 의사소통이 어렵단다. 공항에서 만난 안내인은 한국어가 힘들다고 하고, 일행들은 인도네시아어의 다양성에 난색을 지었다. 현지인 중에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들이 많았다.
2만 개가 넘는 사원(寺院),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신들, 이웃과 상부상조하며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환경. 신들의 고장 발리는 다양한 얼굴을 가진 곳이다. 이 멋진 섬도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으로 숨이 막혔고 도심 곳곳에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넘쳐났다. 발리의 신들은 현세의 인간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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