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자녀 등하원 때 만난 30대 일본 아빠의 깜짝 놀랄 정체
주 4.5일제 도입에 대한 사회적 관심사가 커져가는 요즘, 세계 각국의 노동시간과 휴가제도, 직장문화 등 고유한 '워크 라이프 밸런스'(Work-Life Balance)를 소개합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글로벌 흐름 속에서 다양한 나라들의 독특한 제도와 사회적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한국형 워라밸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도움이 될 만한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합니다. <편집자말>
[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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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 4일 일본 도쿄 신주쿠 비즈니스 및 쇼핑 지구에서 사람들이 길을 걷고 있다. |
| ⓒ EPA 연합뉴스 |
H에 의하면 이전에 비해 휴가를 신청할 때 상사의 눈치를 보는 일도 줄었다고 한다. "상사들 인사 평가에 부하 직원들의 육아 휴직이나 휴가 사용이 반영된다고 들었다. 덕분에 적극적으로 육아 휴직을 쓰라고 말하는 상사들도 생겨났다"며 입사 초기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고 했다.
올해부터 동경도는 도청 직원에 한해 선택적 주 4일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4주 동안 155시간 근무 시간을 채우면 금요일은 쉴 수 있게 한 것이다. 고이케 유리코 동경 도지사는 "주 4일제는 국가 기관이 선행함에 따라 민간으로 확대될 것을 기대하며 도입하는 정책"이라며 "육아나 출산 때문에, 특히 여성들이 커리어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솔선해서 직원들의 유연한 근로방식을 검토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일본의 국가 기관들도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하고 있다. 이바라키현과 치바현은 작년부터 희망하는 사람에 한해 주 4일 근무제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미야기현은 내년부터 전 공무원을 대상으로 해당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국가 기관이 솔선해 유연한 노동 제도에 관해 고민하는 배경에는 노동자에게 가혹하기로 유명했던 일본 사회의 어두운 과거가 숨어있다. 1960년에서 90년대까지 일본 경제 고도 성장기를 지탱한 것은 자신과 가정을 희생하며 회사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일본의 노동자들이었다.
이 시기에 새로 등장한 어휘가 있다. 바로 '과로사'라는 말이다. '과로로 인한 죽음'을 뜻하는 과로사(karoshi)'는 일본에서 생겨나 전 세계에 퍼진 단어다.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옥스퍼드 사전은 '과로사'를 '과로 또는 업무 관련 탈진으로 인한 사망'으로 소개하며 일본 노동자들의 과도한 노동 스트레스를 반영한 표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1970년대 처음 등장한 과로사 문제는 1990년대 들어 노동자들의 심장질환, 뇌출혈, 우울증, 자살 등의 사례가 연이으며 사회 문제로 부각됐다. 2015년 세계적인 광고 마케팅 업체인 덴쓰의 직원이 과로로 인한 우울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자 국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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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 21일 일본 도쿄의 총리 공관에서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회동 후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2020년 환경상으로 재직 중 육아 휴직을 사용하겠다고 발표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
| ⓒ 로이터=연합뉴스 |
남성 육아 휴직도 정부 차원에서 장려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육아 휴직을 신청한 노동자는 6개월 동안 월급의 67%, 이후 최대 1년까지 월급의 50%를 받을 수 있게 되어있다. 일본 정부는 2025년까지 남성 근로자의 50%가 육아 휴직을 이용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남성의 육아 휴직 사용률을 높이기 위해 공공 기관이 솔선하고 있다. 오카야마현은 올해부터 현내의 직장에 근무 중인 남성 직원이 육아휴직을 하면 1명당 15만 엔(140만 원)씩 회사 측에 장려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공직자의 의식도 바뀌고 있다. 2020년에는 장관급 각료 중 처음으로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이 육아 휴직을 사용했다. 그는 "육아 휴직 제도가 있어도 조직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사용하기가 어렵다"며 남성의 육아휴직을 장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해 화제를 모았다.
예상 못 한 변수가 노동 환경 변화를 촉진하기도 했다. 2020년 일어난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를 도입한 회사들이 급속히 늘었다. 의무성이 짙었던 회식이나 술자리도 줄어 많은 노동자들이 새로운 근무 환경을 경험하게 됐다. 일부 기업은 코로나 종식 후에도 재택 및 원격 근무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IT 기업인 라쿠텐도 그중 하나다. 라쿠텐 트래블에서 근무 중인 20대 여성 K는 일주일에 하루 본인이 원하는 요일에 원격 근무를 하고 있다.
K는 "원격 근무날에는 출사 준비가 필요 없고 이동 시간이 단축돼 일 전체의 효율성이 올랐다"라고 했다. "동료들도 각자의 사정에 맞춰서 원격 근무를 하면서 팀 전체 분위기도 좋아졌다"며 현재의 근무 형태에 매우 만족한다고 말했다.
코로나를 겪으며 젊은 세대의 노동관도 변화했다. 설문조사 기관 시부야109랩이 작년 1월 대학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7.9%가 "직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묻는 질문에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워라밸'이라 답했다. 또한 이들은 직업의 안정성보다는 일의 가치와 보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생직장을 선호하던 기존 세대와 달리 이직에 거리낌 없는 세대이기도 하다.
일본의 명문 사립대를 졸업하고 외국계 컨설턴트 회사에서 근무하는 20대 남성 M도 이직을 준비 중이다. 그는 지금의 회사에서 3년 동안 경험을 쌓고 다른 직종으로 옮길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래들 사이에서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없어진 지 오래다. 이직 동기가 분명하고 목표 의식이 있으면 이전 직장에서의 경력이 짧다 해도 문제 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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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년 동경 시내에서 열린 과로사 반대 시위 모습 |
| ⓒ 위키피디아 |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본 근로자들은 자신의 사정에 맞춰서가 아닌 남들도 쉴 때 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대형 연휴인 골든위크(4월 말~5월 초 일주일 정도의 연휴), 오봉 야스미(8월 13일~16일 전후의 여름휴가), 연말연시 등에는 일본 전체가 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기 일본 전역의 숙소, 항공, 교통 등의 가격은 폭등하고 관광지에는 사람들로 넘친다. 때문에 오히려 대형 연휴가 되어도 집에서 보내거나 근처에서 휴가를 보낸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실제로 휴가와 관련해 근래 일본 미디어들이 자주 소개하는 단어 중 하나가 '스테이케이션(staycation)'이라는 말이다. '머무르다(Stay)'와 '휴가(Vacation)'의 합성어인 이 용어는 '멀리 떠나지 않고 자신의 집이나 근처 호텔 등에서 휴가를 즐기는 방식'을 말한다. 한국의 호캉스와 유사한 개념이라 하겠다.
'글램핑(glamping)'을 즐긴다는 사람들도 많다. 글램핑은 세련된 것을 뜻하는 '글래머러스(glamorous)'와 캠핑(camping)의 합성어로 '텐트나 샤워 시설 등이 잘 갖춰진 시설에서 편하게 즐기는 캠핑'을 말한다. 특히 젊은 층과 가족 단위에게 환영받는 휴가 형태다.
해외로 눈을 돌리는 일본인들도 있다. 이들이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는 단연 한국이다. 2024년 한 해 만해도 약 320만 명의 일본인이 한국을 찾았다. 특히 20대 30대 젊은이들 중심으로 한국의 인기는 압도적이다. 이들은 한국 드라마 촬영지를 방문하고 한국 음식과 문화를 즐긴다.
한국의 인기가 높아지며 일본 국내에서 이색적인 이벤트가 생겨나기도 했다. 한국식 놀이나 한류 체험을 제공하는 호텔이나 리조트 등이 생겨난 것이다. 해당 숙박 시설들은 객실을 한국식 인테리어로 꾸미고 김밥이나 잡채 등의 한국 식사를 룸서비스로 제공한다. 투숙객들은 한국풍 디자인의 잠옷을 입고 객실에서 K-POP과 한국 드라마 등을 즐긴다.
해당 서비스를 사용한 적이 있다는 50대 여성 T는 "한국에 갈 수 없을 때 국내에서 한국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며 이번 여름휴가에는 실제로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 말했다. 그는 "예전보다 일본 내에서도 한국 음식과 문화를 접할 기회가 늘어나 기쁘게 생각한다. 앞으로도 한일 양국의 교류가 더 활발해져서 서로의 문화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며 "한국 음식 정말로 맛있어요!"라는 한국어와 함께 환한 웃음을 지었다.
시대에 맞춰 변화하고 있는 일본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 그러나 여전히 한계도 존재하는 가운데 일본의 노동자들이 눈치 보는 일 없이 건강한 워라밸을 실천할 수 있을까. '과로사의 나라'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일본 노동자들의 내일을 주목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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