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도로 위에서 사랑도 정체성도 길을 잃다
[김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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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아이다호>의 한 장면. |
| ⓒ 뉴라인시네마 |
길 위에 선 두 청춘, 그리고 끝내 닿지 못한 마음
기면증을 앓는 청년 마이크(리버 피닉스)는 늘 길 위에서 눈을 뜬다. 정확히 어딘지도 알 수 없는 대지 위에서 깨어나는 그의 모습은, 이미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선 존재처럼 보인다. 그는 엄마를 찾기 위해, 아니 어쩌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싶어서, 거리를 떠돌고 있다. 그런 마이크 곁에는 부잣집 아들이지만 거리의 삶을 택한 스콧(키아누 리브스)이 있다. 두 사람은 마치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조용히 손을 맞잡은 동반자처럼 보이지만, 둘의 관계는 애초부터 어긋나 있었다.
마이크는 스콧을 사랑한다. 말 그대로, 자신을 온전히 내맡길 만큼 진심이었다. 하지만 스콧은 그 마음을 애써 피하고, 결국은 자신이 원래 있던 상류사회의 삶으로 돌아가 버린다. 마이크는 혼자 남고, 카메라는 마지막 장면에서 고요히 쓰러진 그의 몸을 비춘다. 아무도 없는 도로 위, 마이크는 깨어날 수 있을까. 아니, 깨어날 이유가 남아 있을까. 그렇게 영화는 대답하지 않은 채 끝난다.
아이다호, 자유의 땅이 아닌 고독의 풍경
이 영화는 단지 개인의 방황만을 다루지 않는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품고 있는 이면, 말하자면 '자유의 땅' 뒤에 가려진 외로움과 공허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특히 제목이기도 한 '아이다호(Idaho)' 주는 그 상징성이 뚜렷하다. 미국 북서부의 한적한 시골 지역인 이곳은 영화 속에서 폐허 같은 도심과 황량한 벌판으로 등장한다. 도시지만 생기가 없고, 평야지만 자유롭지 않다. 그곳은 마치 '소속되지 못한 자들'을 위한 유배지처럼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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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아이다호>의 한 장면. |
| ⓒ 뉴라인시네마 |
리버 피닉스는 이 영화에서 단순히 '연기를 잘한 배우'로 남지 않는다. 그는 마이크 그 자체였다. 그가 화면 속에서 울 때, 떨릴 때, 쓰러질 때 관객은 그의 아픔을 함께 앓는다. 그가 표현한 고독과 갈망은 대사보다 침묵에서, 동작보다 눈빛에서 전해진다.
나는 그가 출연한 또 다른 영화, <샌프란시스코에서 하룻밤>도 좋아한다. 샌프란시스코의 밤거리에서 짧게 만난 두 청춘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에서도, 리버 피닉스는 섬세하고도 절제된 감정 연기로 기억에 남는다. 그런 그가 <아이다호>에서 보여준 절규는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안타깝게도 그는 <아이다호>를 찍은 지 불과 2년 뒤, 스물셋의 나이에 약물 과다로 생을 마감했다.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더욱 깊은 쓸쓸함으로 다가온다.
해피엔딩이 없는 로드무비, 그래서 더 절절한
<아이다호>는 결코 친절한 영화가 아니다. 명확한 메시지도, 안락한 결말도 없다. 우리는 주인공들과 함께 길을 떠나지만, 끝내 어떤 도착도 경험하지 못한다. 마이크는 잠들고, 스콧은 떠난다. 그 뒤에 남는 건 침묵뿐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 정직함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 된다. 누군가의 사랑은 끝내 닿지 않고, 누군가는 길 위에서 사라진다. 그것이 삶이다.
길 위에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 소속되지 못한 사람들, 혹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직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아이다호>는 말한다. "지금 너는 어디쯤 와 있니?"라고. 그리고 그 물음은 스크린 밖, 우리에게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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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아이다호> 포스터. |
| ⓒ 뉴라인시네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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