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로 27살 청년 농부의 800평 꿈이 떠내려갔다

최미향 2025. 8. 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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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생애봄날 눈이부시게', 수해로 터전 잃은 청년에게 호우피해성금 200만 원 전달

[최미향 기자]

 사단법인 내생애봄날 눈이부시게 회원들이 호우피해성금을 전달하고 있다.
ⓒ 인지면사무소
7월의 마지막 날, 서산은 숨이 막혔다. 기온은 35도를 넘나들었고, 축축한 땀은 마르기 전에 다시 배어들었다. 폭염 속, 서산시 인지면행정복지센터 한쪽에서 조용한 기부식이 열렸다.
사단법인 '내생애봄날 눈이부시게'가 수해로 삶의 터전을 잃은 청년에게 호우피해성금 200만 원을 전달하는 자리였다. 그 주인공은 올해 27살, 서산시 인지면 화수리에서 원예 하우스를 운영해 온 청년 농부 최우찬 씨다.
▲ 27살 청년 농부 최우찬 씨 하우스 안에서 수해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김은혜
"하우스 하나, 흙 한 줌까지도 제 손으로 시작했어요."

우찬 씨는 서산에 있는 중앙고등학교 원예과를 졸업하고, 농수산대학교 조경학과를 거쳐 원대한 꿈을 안고 고향 땅에 뿌리를 내렸다. 그는 800평 규모의 하우스를 시작하면서 빚 4억을 안고 농사라는 세계에 뛰어들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고, 누구 탓도 하지 않았다. 농부가 되겠다고, 두 팔 걷어붙인 것은 오직 '청춘'이었다.

하지만 창업 첫해, 수해로 200대 넘게 퍼온 흙 절반이 물에 쓸려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둘째 해엔 전기설비에 수백만 원대 손실이 발생했다. 지난해는 1억 원을 더 빌려 시설을 보완하고 새로운 묘목을 심었다. 하지만 7월 17일 새벽 기록적인 폭우를 겪으며 우찬 씨의 모든 꿈이 송두리째 떠내려가 버렸다.
 폭우로 침수된 서산시 인지면 화수리의 원예하우스 내부. 흙탕물이 가득한 바닥 위로 수십 개의 화분이 넘어지고 쓰러진 채 방치돼 있어 수해 피해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 인지면사무소
"묘목이 전부 물에 잠겼어요. 하우스 안으로 거센 물살이 밀려 들어와 버렸거든요. 원예 재배작물은 너무 한정적이고 보험이 안되는 작물이 많아 보험을 들고 싶어도 못 듭니다. 이번엔 진짜..."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수해가 앗아간 건 작물이 아니라 청년의 내일이었다. 애써 삼킨 눈물 때문에 우찬씨가 고개를 숙였다.
 서산시여성단체협의회 한규옥 회장과 회원 21명이 구슬땀을 흘렸다.
ⓒ 인지면사무소
공무원도, 이웃도, 모두가 함께였다
피해 사실을 접한 한석화 서산시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식을 알리자, 이를 본 서산시여성단체협의회 한규옥 회장과 회원 21명이 새벽 4시 30분부터 현장으로 달려와 복구에 힘을 보탰다.
 서산시청 기획예산담당과 직원 15명이 구슬땀을 흘렸다.
ⓒ 인지면사무소
또한, 서산시 인지면 박한일 면장은 서산시청 기획예산담당과 직원 15명을 현장에 연결해 신속한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했으며, 사단법인 '내생애봄날 눈이부시게'의 기부 소식을 듣고, 우찬씨와 단체를 연결해 실질적인 지원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도왔다.
"크게 꿈을 안고 시작했을 텐데,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잖아요. 장비대라도 지원해드리고 싶었어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혼자였다면 버텨내기가 힘들 테지만 이제 (우찬 씨는) 혼자가 아닙니다. 힘내세요."
 한때 빼곡히 들어섰던 묘목은 자취를 감추고, 이제는 텅 빈 하우스만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인지면사무소
지금까지 앉지도, 쉬지도 못하는 우찬씨

봉사자들이 하우스 내외부를 정리하는 사이, 우찬씨는 홀로 고통을 삼키며 복구에 힘을 쏟았다.

폭염 속 수해 복구 작업 중 생긴 염증이 엉덩이 5곳으로 번져, 고름이 차올랐다. 출장을 다녀오는 사이 증세는 악화됐지만, 그는 병원에 가지 못한 채 상처 위에 임시로 거즈를 붙인 채, 묵묵히 버티고 있었다.

"상태가 너무 심해져서 결국 어제야 처음 병원을 찾았어요. 땀 때문에 덧났는지... 복구하다 너무 심해졌어요. 아버지랑 같이 일해야 하는데 제가 다쳐버렸어요."
 사진 속 하천 제방은 집중호우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 김은혜
그 땅을 떠나지 못한 이유

"하천이 좁고 얕아도 원래는 물이 들어와도 빠져나가는데 이번엔 물이 나가지 못했어요. 기록적인 1년에 내릴 비의 약 35%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비였거든요. 그래서 그냥… 다 떠내려갔어요."

그는 하우스를 휩쓸고 간 터에 눈길을 둔 채 덧붙였다.

"제일 절실한 건 금전적인 도움이에요.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정부의 지원이 시작된다는 소식에, 모든 걸 잃었다던 우찬 씨도 '아직 끝은 아니다'라는 마음으로 다시 일어설 채비를 하고 있다.

김은혜 대표(사단법인 내생애봄날 눈이부시게)는 "적은 금액이지만 정말 꼭 필요한 분에게 전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한일 면장님) 연결해주셔서 감사해요. 연대가 삶을 바꾸기도 한다는 걸 믿어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에 박한일 면장도 "15개 읍면동 중에서 우리 인지면을 선택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단법인 이름도 참 예쁘네요. 하반기에 하천공사 들어가면 내년엔 걱정 안 하셔도 될 거예요"라고 전했다.
 모든 것이 떠내려간 자리, 남은 것은 진흙과 쓰러진 화분뿐이었다. 여린 새싹이 자라던 자리엔 이제 흙탕물과 쓰레기, 엉켜버린 풀잎들만이 수해의 상처를 말없이 증명하고 있다.
ⓒ 인지면사무소
폭우에 무너졌지만, 우찬 씨는 무너지지 않았다

기부금 200만 원은 어쩌면 큰 돈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은 손길이 우찬 씨의 무너진 원예단지 위에 다시 새순처럼 움트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는 여전히 염증으로 앉지도 못하고, 빨리 걷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구겠다는 마음 하나로 버텨내고 있다.

"제가 진짜 열심히 다시 해볼게요. 더 이상 떠내려가지 않게… 저부터 단단해질게요."

뜨거운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었다. 그 태양 속에서 누군가의 모든 걸 잃은 자리에서 다시 무언가를 붙잡기 위해 희망이라는 단어를 붙잡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투데이와 충남도청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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