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게 정말 우연일까? 양자역학의 세계로 '풍덩'
[김신 기자]
내 이름은 김신이다. 50년 넘게 살면서 또 다른 '김신'을 마주한 일이 한 번 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지만, 흔한 이름이 아닌 게 포인트다. 다른 김신과 악수하며 서로 신기해서 한참을 웃었었다. 이런 우연과 함께 드라마 <도깨비>가 인기를 누릴 때에는 공유 아니냐며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 그보다 한참 전에는 드라마 <미래의 선택>에서 배우 이동건이 극 중에서 김신으로 나와 명함을 돌리기가 두렵기도 했다(왜 하필 다 잘생긴 배우인 건지...).
그렇다면 이런 우연한 일치들이 정말 우연이었을까? 최근 읽은 폴 핼펀의 신간 <우연의 의미를 찾아서>(2025년 7월 출간)는 바로 이런 질문에서 시작한다. 이 책은 일상의 사소한 우연부터 양자역학적 현상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인과관계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을 면밀히 탐구한다. 과연 세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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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표지 |
| ⓒ 위즈덤하우스 |
폴 핼펀은 또 다른 우연의 사례로 빛의 속도에 관한 논쟁을 든다. 고대 그리스부터 빛의 속도가 유한한지 무한한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고, 이는 19세기에야 비로소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아르망 이폴리트 피조와 장 베르나르 레옹 푸코의 실험은 빛의 속도가 유한하다는 것을 명백히 밝혀냈고, 이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발전하여 현대 물리학의 초석이 되었다(본문 9~10쪽). 과학의 발전이란 이렇게 우연한 발견과 인과관계의 복잡한 얽힘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양자역학에서의 '얽힘(entanglement)' 현상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유령처럼 작용하는 원격작용'이라고 부르며 회의적으로 바라보았지만, 현대의 실험들은 이 현상이 실제로 존재함을 입증했다(국소 실재론, 본문 17~18쪽). 얽힘은 빛의 속도라는 인과적 한계를 뛰어넘어, 두 입자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즉각적으로 연결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양자적 우연은 우리 일상에서 마주하는 우연한 일치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저자는 스위스 심리학자 카를 융이 제시한 '공시성(synchronicity)' 개념도 소개한다. 공시성은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 없는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를 뜻하는데, 융은 이를 심리학 뿐 아니라 물리학적 관점에서도 접근했다(본문 19~20쪽). 융과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의 협력은 심리적 현상과 양자역학 사이에 숨겨진 연결고리를 찾고자 한 놀라운 시도였다.
<우연의 의미를 찾아서>는 이처럼 복잡한 과학적, 철학적 개념들을 풍부한 역사적 일화와 흥미로운 비유로 풀어낸다. 가령, 양자 컴퓨터가 카페인 분자를 모형화하는 방식이나 초전도 자기부상열차에 담긴 양자 결맞음 현상처럼,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예시를 통해 난해한 물리 법칙을 설명하는 저자의 능력은 감탄을 자아낸다.
내 곁의 작은 우연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책
번역도 훌륭하다. 요즘 주목 받고 있는 과학커뮤니케이터 항성(강성주)이 역자다. 유튜브는 물론이고 지상파와 종편을 넘나들기에 그저 유명인사인가 싶었는데, 독자가 단숨에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내공이 만만치 않다.
책을 덮으면서 다시 내 이름을 떠올렸다. 이름이라는 징표가 나를 다른 이와 연결짓듯, 세상 곳곳에 퍼져 있는 우연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숨겨진 실로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우연의 의미를 찾아서>는 우연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기지 않고, 그 이면의 의미를 깊이 있게 성찰하게 한다. 우리가 우연히 마주치는 모든 일들은 어쩌면 우주의 더 큰 이야기 속에서 의미 있는 사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 곁에서 일어나는 작은 우연들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이유다.
복잡하고 기이해 보이는 현대 물리학의 심오한 진실 속에서, 당신의 삶에 숨겨진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를 발견하고 싶다면, 항성이 역자 후기에 남긴 다음의 말을 곱씹어 봐도 좋겠다.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순수한 과학적 설명을 넘어서는 의미의 영역과 만나게 된다. 공시성 개념은 그 경계를 넘나드는 여정에서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나침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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