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영화가 식상하다고? 이렇게 보면 다릅니다
[김성호 평론가]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더없이 새로웠던 게 이제는 말만 들어도 식상해졌다. 좀비물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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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즈 스틸컷 |
|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좀비라고 영원할 수는 없다. 좀비물은 철학 또한 그러했듯 순식간에 식상해졌다. 조지 로메로는 좀비물의 아버지라 불리지만, 그 아버지조차 첫 작품을 뛰어넘는 다음을 마련하지 못했다. 하물며 아류들이야. 좀비물은 그대로 침몰하고 사라질 무엇처럼 보였다. 한때의 유행이 끝나면 다음 것이 일어날 것이라고, 누구도 철 지난 괴수를 돌아보려 들지 않았다. 좀비의 등장만으로도 영화의 격이 떨어진다 여기는 이들이 생겨날 정도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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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즈 스틸컷 |
|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좀비물 마니아들 사이에선 훨씬 높은 지위를 가진 < 28일 후 >는 어떤가. 대니 보일이 기획에 참여한 < 28주 후 >, 또 직접 연출한 < 28년 후 >의 반응, 또 향후 이어질 < 28일 후: 뼈의 사원 >, < 28년 후: 파트3 >에 쏟아지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첫 파격이 지속되지 못하리란 우려도 상당하다. 달리는 좀비, 물어 전염시키는 좀비의 파격은 그 이상의 충격을 더하지 못한 채 좀비의 기본형으로 자리하게 된 셈이다.
그런데도 일부 창작자들은 좀비물을 새롭게 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어떻게 하면 좀비라는 존재가 계속 관객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그로부터 인간 본연의 모습을 깨워낼 수 있을지 고민한다.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아드레날린 라이드' 섹션에 포함된 <매즈> 또한 그와 같은 고민으로부터 등장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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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즈 스틸컷 |
|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매즈>는 이중에서도 좀비물에 대한 깊은 고민을 엿보게 하는 작품이다. 프랑스 감독 다비드 모로의 영화로, 좀비물과 아포칼립스물의 결합을 연출적으로 새롭게 다뤄냈다. 영화는 주인공 로맹이 마약상을 찾아 파티에서 할 마약을 구입하는 장면으로 출발한다. 약에 취해 자동차를 몰아가는 그의 모습을 비추는 카메라가 저 멀리 길 위에 환영처럼 제목 'MADS'를 떠올리는 순간부터 그 참신함을 기대하게 한다.
영화는 로맹(루실 기욤 분)이 길 위에서 다친 듯 보이는 여자를 만나면서 곧장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간다. 다짜고짜 로맹의 차 위에 올라탄 여자가 내리려 들지 않자 로맹은 몹시 당황한다. 처음엔 충격을 받아 허둥지둥하는 듯 보이던 여자가 알고 보니 혀가 잘려 있단 사실을 알게 된 로맹은 더욱 혼란에 빠진다. 급작스레 닥친 심각한 상황에 경찰에 신고할까 고민하지만 제가 약을 했단 사실을 깨닫고는 이내 포기하고 만다. 그로부터 이어진 소동 속에서 여자는 자살하고 로맹은 시체를 싣고 집으로 돌아온다.
로맹은 프랑스 어느 부촌에 사는 십 대 후반 소년이다. 아버지는 일로 멀리 출장을 갔고, 그를 틈 타 마약을 하고 파티를 즐기려던 게 로맹의 계획이다. 그러나 몰래 타고 나간 아빠의 애마에 시체를 싣고 왔으니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온몸에 피칠갑을 한 로맹이 일단 샤워부터 하고 차고로 돌아왔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시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차고 문은 꽁꽁 닫힌 채이니 제 몸을 칼로 찔러 죽은 여자가 죽지 않고 살았다는 것인가. 로맹은 충격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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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 |
|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매즈>는 말 그대로 미친 상황의 연속이다. 신나는 밤일 줄 알았던 로맹의 하루가 웬 여자의 등장부터 통제할 수 없이 미쳐 돌아가는 가운데, 영화는 2014년 <버드맨>이 그러했듯 끊김 없는 원테이크처럼 보이는 촬영으로 그 뒤를 쫓는다. <버드맨>이 주인공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 분)의 망상과 현실의 경계를 뒤따르며 관객을 혼란케 했듯, <매즈> 또한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또 어디까지가 비현실인지를 종잡을 수 없도록 한다. 관객은 로맹이 마주한 최악의 날을 실시간으로 뒤따르며 대재앙, 즉 아포칼립스의 시작점을 함께 체감한다.
영화는 로맹을 시작으로 그가 사 온 마약을 건넨 애인 아나이스로 옮겨가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 절묘한 교차로부터 영화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그녀가 이내 로맹처럼 충격과 공포 속에 무방비로 던져지기까지의 시간을 비춘다. 그저 길 가에 있던 여성으로부터 온 도시가 광기와 폭력에 점령되는 모습이 단 한 사람의 시선에 담겨 그려진다. 일인칭 실시간 연출의 한계보다도 그것이 갖는 장점, 즉 직접 체험을 하는 듯한 현실감을 <매즈>는 극대화하고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에게 쫓기고, 또 좀비화된 존재들에게 쫓기는 상황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없는 개인의 무력함과 공포감이 <매즈>를 움직이는 주된 동력이다. 그저 살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리지만, 체제가 붕괴하는 상황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 수 없는 혼돈이 관객에게까지 미쳐온다. <매즈>는 그 형식과 연출의 참신함에 더하여 적절한 배우의 출중한 여기로써 관객을 잠식한다. 좀비가 더는 새로운 존재가 아니고, 단지 달리고 전염시킨다는 사실만으로 파격을 더 할 수 없는 세상에서 영화를 나아지게 할 방법을 고심한 결과다. 나는 그것이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다.
<매즈>는 화면 가운데 좀비와 인간의 사투를 얼마 내보이지 않는다. 체제와 질서가 붕괴하는 대재앙을 통상의 블록버스터며 좀비물이 비추던 방식으로 연출하지도 않는다. 철저히 주인공을 뒤따르는 카메라는 재앙 속 도시의 지극히 일부만 보이지만 그로부터 세상이 얼마만큼 많은 재난과 마주하고 있는지 알도록 한다. 로맹과 아나이스 단 두 명으로 내보인 재난이 도시 속 인구수만큼 더 많이 존재할 것을 자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저 통계 위 숫자가 아닌, 쫓기고 내달리면서도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없는 공포가 관객마저 차츰 전염시켜 간다. <매즈>는 그로부터 이 시대 좀비물이 존재할 수 있는 위치를 새로이 모색한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영화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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