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자 속 아이가 성인이 돼 찾아왔어... 사는 동안 사진관 열어둬야지"

월간 옥이네 2025. 7. 31. 10:18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동네 사진관] 마을 사람들의 48년을 기록해온 애틋한 공간, 옥천 금구리 터줏대감 한일사진관

이제는 전 국민이 사진사이고 유튜버인 시대. 무겁고 투박한 전문가용 장비 없이도 스마트폰 하나로 사진을 쉽게 찍고 나눕니다. 수천 장의 사진이 손끝에서 탄생하는 이때, 오히려 인화지 위에 남은 장면은 더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누군가의 기억이자 역사가 조용히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충북 옥천 농촌잡지 <월간 옥이네> 7월호에는 동네 사진관, 사진 동아리, 그리고 사진으로 기억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모교 학생들의 졸업사진을 찍고, 취미나 봉사의 연장선에서 지역의 순간을 포착하는 사람들, 이제는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골목을 지키는 동네 사진관까지. 렌즈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얼굴들, 그 장면을 담는 이들의 마음을 따라가 봤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월간 옥이네> 종이잡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말>

[월간 옥이네]

 충북 옥천 한일사진관 외부
ⓒ 월간 옥이네
오일장이 열려 부산한 거리. 충북 옥천군 이원면 윤정리에서 온 길나은(82)씨는 오일장을 방문한 김에 미루던 증명사진을 찍을 참이다. 사진관을 찾아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던 차에 유리창 너머 벽면 가득한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가 사진관이구나!' 열린 유리문으로 들어온 길나은씨는 가쁜 숨을 몰아쉰다.

"증명사진 찍으러 왔는데, 3장만 뽑아줘요."
"사진 찍고 인화까지 15분이면 돼요."

조복현(77)씨는 능숙하게 카메라 앞으로 길나은씨를 안내한다. 오랜만에 찍는 사진에 낯간지러워하던 길나은씨도 차분한 조복현씨의 안내에 큰 숨을 몰아쉬곤 미소 짓는다. 번쩍 터지는 조명과 찰칵, 서텨음이 울리는 이곳은 옥천군 옥천읍 금구리의 한일사진관(옥천음 삼금로23)이다.

금구리 첫 가게를 개업하다

한일사진관 대표 조복현씨는 옥천실고 농과 재학시절 종종 작은아버지 사진관(제일사진관, 현 한밭식당 옆)을 지키며 사진을 배웠다. 고등학교 졸업 후, 농사와 사진을 놓고 진로를 고민하던 스무 살의 그는 자신이 50년간 사진과 동고동락하게 될 거라고는 알지 못했을 테다.

한일사진관이 문을 연 것이 1978년 6월이니, 벌써 48년이 흘렀다. 사진관이 자리한 금구리는 이제 다양한 상가가 밀집해 평소에도 붐비는 곳이지만, 1970년대까지는 민가와 논밭이 있던 자리였다. 조복현씨가 본격적으로 사진을 업으로 삼기 전, 1974년에 그가 찍은 흐릿한 흑백 사진에는 당시 옥천 읍내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내가 처음에 여기 올 적에는 이런 상가 건물이 하나도 없었어. 기와집, 슬레이트집 같은 거만 있었어. 사진관 건물도 처음엔 한옥이었지. 사진관 열고 1년 지나니까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된 거야."

사진관과 함께 나이 든 물건들
 충북 옥천 한일사진관 조복현씨
ⓒ 월간 옥이네
개업 날 구매한 스테이플러 같은 작은 소품부터 은색 빛의 카메라 가방 등 한일사진관의 오랜 역사만큼 사진관 곳곳에선 오랜 물건이 발견되곤 한다. 그의 손에 들어왔다가 떠난 카메라만 해도 수십 개. 필름 사진을 찍지 않게 되며 옛 카메라는 다수 처분했지만, 끝끝내 놓지 못한 카메라가 있다. 28mm 광각렌즈를 달고 옥천 곳곳을 누볐다는 펜탁스 MX가 그것이다.

"광각렌즈 없을 땐 마을 전경이나 단체 사진 찍기가 어려웠어. 28mm 렌즈가 나왔을 때 정말 좋았지. 그때 이 카메라 가지고 옥천을 무쟈게 다녔어. 몇십 년을 썼는데도 고장 한 번 안 났지. 요즘은 촬영할 때 안 쓰지만, 달에 한번은 꺼내 관리해 두고 있어. 그래야 기계에 녹이 안 슬어."

카메라 끈엔 빈 필름 통이 달려있다. 지금과 달리 제한된 수의 필름 한 롤(36장)로 사진을 찍어야 했던 시절에는 예비 필름이 필수였을 터. 바쁘게 옥천 곳곳을 누볐을 젊은 그의 모습이 상상되는 흔적이다.

여전히 반질반질한 카메라를 한쪽으로 밀어둔 조복현씨는 "이런 거 본 적 있으려나" 읊조리며 연필 두 자루를 꺼내 놓는다. 모나미 볼펜 몸통으로 만든 연필깍지가 눈에 띄지만 흔한 연필.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니 날카롭게 깎인 연필심이 족히 2cm는 넘어 보인다.

"흑백 사진 찍을 적에는 컴퓨터가 아니라 이 연필로 잡티를 지웠어. 섬세하게 작업해야 해서 연필 끝을 뾰족하게 깎아야 하니까 연필심이 길어졌지. 내가 직접 면도칼로 깎아 둔 거야."

한번 심이 부러지면 2~3cm씩 줄어들기에 연필깍지가 꼭 필요했단다. 연필깍지 또한 라이터로 입구를 녹여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한창 흑백 사진 작업을 하던 시기에 깎아두고, 쓸모를 잃어 찬장에 들어간 연필 두 자루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찬장 한 편을 지키고 있다.

"나야 나이 먹은 사람이니까 알지. 지금 사진업 하는 사람들은 사진 작업에 연필을 어디다 쓰냐고 할 거야."

5인승 차량에 올라탄 스무 명
 충북 옥천 한일사진관 조복현씨
ⓒ 월간 옥이네
"한창 일이 많을 때는 부르는 데가 많았지. 마을·학교 행사도 다니고, 환갑잔치 같은 개인 대소사에도 사진 찍으러 다녔어. 1980년대엔 카메라가 흔하지 않아서 카메라 대여도 했거든. 카메라 50~60대가 있었는데, 학생들 수학여행 땐 없어서 못 빌려줄 정도였지."

각종 행사 촬영과 더불어 카메라 대여부터 사진 현상과 인화까지. 사진에 관해서는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일이 없었다.

"한때는 삼양초등학교만 빼놓고 옥천 학교 졸업식을 다 다녔어. 초등학교만 하는 게 아니라 유치원,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사진 촬영을 11월 한 달 동안 다 하려니 연말에는 맨날 바빴지."

유치원 졸업사진의 경우 카메라 장비뿐만 아니라 가운과 학사모도 챙겨야 했다. 이에 1980년대 말 조복현씨는 업무를 위해 자가용을 구매했다. 서민 자동차로 인기를 끌었던 프라이드 1세대가 그의 첫 차. 여기에 얽힌 웃지 못할 일화도 있다.

"한번은 유치원 졸업사진을 찍는데, 단체 사진은 학교에서 찍고 독사진 찍으러 우리 사진관으로 와야 하는 거야. 그때 유치원생이 20명쯤 됐어. 자가용이 많지 않을 때고, 일정이 바쁘니까 내 차에 20명 넘는 사람이 한꺼번에 탔었지."

"선생님이 몇몇을 껴안고, 뒷자석에 몇몇은 서고 앉은 채로 20여 분을 달렸다"던 그의 차. 불편하다고 칭얼거리는 소리에 사진관으로 가던 중 과일을 사 손에 하나씩 들려주기도 했단다. 지금은 상상 못할 풍경이다.

반세기가 흐르는 동안 수많은 것이 변했지만, 조복현씨는 한결같이 사진관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린다. 오랜 세월은 옛 인연과의 예상치 못한 만남을 성사하기도 했다.

"5년 전에 한 커플이 찾아왔어. 벽에 걸려있는 유치원 졸업사진의 주인공이었지. 자기 사진이 여기 걸려있으니까 남자친구랑 같이 보러 온 거야. 저렇게 조그맣던 아기가 성인이 돼서 찾아온 게 신기하지."

빛바랜 어린아이의 독사진을 바라보다 옛 카메라를 정돈하는 그의 손길이 조심스럽다. 그 느릿한 손길에서 "살아있는 동안은 사진관 문을 열어 둘 것"이라는 그의 다짐이 들리는 듯하다.
 충북 옥천 한일사진관의 물건들
ⓒ 월간 옥이네
 충북 옥천 한일사진관의 물건들
ⓒ 월간 옥이네
 충북 옥천 한일사진관의 물건들
ⓒ 월간 옥이네
 충북 옥천 한일사진관 조복현씨가 촬영한 1974년 금구교 풍경
ⓒ 월간 옥이네
월간옥이네 통권 97호(2025년 7월호)
글·사진 이혜빈

▶이 기사가 실린 월간 옥이네 구입하기(https://smartstore.naver.com/monthlyoki)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