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서 마주한 가장 깊은 고요
[문운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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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주문 절 어귀에 서 있는 첫 관문으로, 중생이 성불의 길로 들어서는 출발점을 상징한다. 기둥 하나씩으로 문을 지탱하는 구조에서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홍하문이라고도 불린다 |
| ⓒ 문운주 |
해인사 비림은 일주문에서 봉황문 사이 숲길을 따라 자리한 비석 군이다. 해인사의 오랜 역사를 담은 석비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공간이다. 글자는 희미하지만, 묵직한 존재감으로 해인사의 긴 역사를 전하고 있다. 봉황문을 지나자 사찰의 중심 경내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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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인사 측면에서 본 대적광전,명부전 등 전각모습 |
| ⓒ 문운주 |
그 뒤로는 대적광전이 본전으로 웅장하게 서 있다. 화엄종의 중심 법당답게 비로자나불이 봉안되어 있다. 내부는 고요하고 정숙하다. 왼편 언덕에는 독성각이 조용히 놓여 있다. 홀로 수행했던 이들의 외로움과 고요함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경내 뒤편의 경사진 언덕을 따라 오르다 보면, 학사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당나라에서 돌아와 한림학사를 지낸 최치원이 은거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주변은 조용하고 단정하며, 학문과 수행이 겹쳐진 듯한 깊은 기운이 감돈다.
최치원은 평소 짚고 다니던 전나무 지팡이를 이곳에 꽂아두고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그 지팡이에서 움이 돋아 나무로 자라난 것을 기이하게 여긴 사람들은, 그가 신선이 되었다고 믿게 되었다. 이 전나무는 2019년 태풍으로 부러졌지만, 좌대와 의자로 만들어져 지금도 학사대 주변에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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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인사 장경판전, 고려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15세기에 건축된 조선 전기의 서고이다. 대한민국의 국보, 1995년 12월 6일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제19차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
| ⓒ 문운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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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만대장경 장경판전(국보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내부 모습, 주변 조형물에서 촬영 |
| ⓒ 문운주 |
몽골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롭던 시절, 고려의 승려들과 백성들은 칼이 아니라 경전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했다. 고종 23년, 1236년에 시작된 대장경 조판 사업은 무려 16년이라는 세월 끝에 완성되었다. 그 결과물은 총 8만1258매, 약 5200만 자에 달했다.
숫자로는 쉽게 와닿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성과 믿음, 간절함은 판면마다 조용히 전해지는 듯했다. 한 자 한 자 새기며 나라의 안녕을 기원한 마음, 그것이 곧 고려가 선택한 저항이었다.
이 경판은 원래 남해에서 판각해 강화도에 보관했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으로 인해 조선 태조 7년, 지금의 해인사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 여정 또한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이 경판들이 8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뒤틀림 하나 없이 잘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장경판전은 자연의 흐름을 그대로 활용한 구조물이다. 기계 장치 하나 없이 바람과 습도를 조절한다는 점에서, 선조들의 지혜가 얼마나 깊었는지 새삼 놀라움이 앞선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은 단지 오래된 경전이 아니다. 종교와 철학, 기술과 역사, 그리고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이 하나로 깃든 살아 있는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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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련암 가야산 암자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해 조용하고 탁 트인 풍경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주변을 둘러싼 노송과 기암들은 마치 자연이 만든 병풍처럼 장엄하다.성철스님이 마지막까지 머문 곳. |
| ⓒ 문운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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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련암 불면암 바위 |
| ⓒ 문운주 |
마지막 굽이를 돌자, 숲 속에 조용히 자리한 백련암이 모습을 드러낸다. 작지만 긴 시간의 수행과 고요함이 배어 있는 곳.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성철 스님의 법어 앞에선 누구나 걸음을 멈추게 된다.
가야산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백련암은, 노송과 기암에 둘러싸여 자연이 빚은 도량처럼 느껴진다. 성철 스님이 말년을 보낸 이곳엔, 말없이 전해지는 침묵과 수행의 기운이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스님의 삶은 설명보다 실천이었고, 말보다 존재 자체로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 정신은 지금도 암자 곳곳에 배어, 찾는 이의 마음을 조용히 감싼다. 산길을 내려올 즈음, 오히려 내면은 더 맑고 평온해졌다. 해인사에서 마주한 가장 깊은 고요, 그것은 바로 백련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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