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서 마시는 사발 커피, 이런 게 제대로 쉬는 거지
[김성일 기자]
누구나 바라는 진정한 휴식의 조건은 무엇일까. 좀 더 쉽게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휴식을 방해하는 것들은 무엇인지를. 그 방해자를 제거하거나 힘을 살짝 빼주면 휴식의 조건에 훨씬 가까이 갈 수 있다.
내게는 그 첫 번째가 스마트폰, 두 번째는 대도시라는 공간이었다는 것을 이번에 느꼈다. 스마트폰은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초강력 매체가 되고 말았다. 한시라도 내 곁에 없으면 불안할 정도다. 우리 모두 그만큼 의존적인 일상에 무의식적으로 노출됐다는 의미다.
대도시의 삶은 어떤가. 편리함의 결정체인 아파트는 한국인의 최애 거주 공간이다. 집을 나서면 발길에 부딪히는 게 사람이고 자동차다. 자연스레 휙휙 돌아가는 세상을 쫓아가느라 분주해진다. 그곳은 편리한 익명성으로 안온하지만 내가 누구인지, 뭘 하며 사는지 자주 깜빡하며 하루를 보낸다.
최고의 여름 여행지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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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덕사 강릉의 사찰 현덕사의 단아한 모습 |
| ⓒ 김성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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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억지로라도 쉬어가라 현덕사 주지 현종스님이 권하는 휴식 |
| ⓒ 김성일 |
사찰에 들어서며 나는 '스마트폰 멀리하기'를 선택했다. 강원도에 머무는 동안 뉴스를 보지 않고 SNS 접속은 최소화했다. 종종 울려대던 단톡방은 아예 '조용한 채팅방'으로 숨겨뒀다. 책을 읽다가 무료해지면 주변 숲길을 산책했다.
처음엔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차츰 멍 때리기와 찐 휴식 모드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안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는 것을. 사실은 쫓아가느라 나만 바빴던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조용한 쉼에 빠져들면 세상의 중심이 외부가 아니라 '바로 나'라는 걸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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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템플스테이 사찰음식 의외로 입맛이 돌며 음식과 먹는 일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
| ⓒ 김성일 |
스님은 강릉이 커피로 유명해지기 전부터 '커피 축제'를 제안할 만큼 발상이 남다른 분이었다. 현덕사는 2023년에 템스 최우수등급을 받았는데, 전국에서 2100여 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젊은 세대에게도 인기다.
절을 둘러보다 대웅전 내에서 애견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고인이 되신 분들의 사진과 나란히 있었다. 알고 보니 창건 초기부터 반려동물 '천도재'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천도재는 죽은 이의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해 치르는 불교 의식이다.
지금에야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인구가 1500만여 명에 이를 정도가 됐지만 초기엔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사람이 아니라 동식물 천도재 발상을 어찌했을까. 출발은 소박하다. 어린 시절 무심코 죽인 제비가 생각나 '망(亡) 합천 제비 영가(靈駕)'라는 위패를 만들어 천도재를 올렸다는 것이다. 생명 있는 모든 존재는 귀하고 세상의 모든 존재는 서로가 의지하는 관계라는 생각이 바탕이다. 생명 존중과 생태 환경 운동의 실천이 멀리 있지 않다.
멈춤이 주는 선물
사찰에 머무는 동안 문득 20여 년 전의 일이 생각났다. 한창 바쁘게 일하던 현역 시절, 연말이면 송년회 명목의 술자리가 잦았다. '낮에는 일로, 밤에는 술로' 거의 영혼을 불사르던(?) 때였다.
어느 해 1월, 친한 선배 한 분이 1달 금주기간을 선언했다. 연말에 정신없이 달렸으니 지친 심신에 휴식을 준다는 의미였다. 불교 친화적이었던 그 선배는 스님들이 겨울철에 외부 출입을 삼가고 수행에 정진하는 일종의 '동안거'라며 웃었다.
나도 호기롭게 금주금연에 도전했다. 공주에 위치한 사찰의 템스에도 참여했다. 특정한 신앙은 없어도 사찰이 주는 조용하고 절제된 분위기가 좋았다. 세상의 속도를 잠시 잊고 쉬어가면서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이 퍽 마음에 와닿았다. 큰 기대를 한 건 아닌데 두 달 후엔 완전 금연의 성공 스토리를 썼다.
올여름엔 디지털 디톡스라고 할까. 외부와의 접속을 최소화한 시간은 내게 일종의 '하안거' 같았다. 분주한 도시의 일상에서는 꿈꾸기 어려운 말할 수 없는 충만감이 느껴졌다.
템스 후 경포 해변으로 옮긴 후에도 나는 사찰 모드를 유지했다. 서울 귀가 후 지금까지 일주일 넘게 스마트폰 사용을 최소화하고 있다.
진정한 쉼이 이렇듯 별것 아닌데 막상 일상으로 복귀하면 만사가 여의치 않다. 도시라는 공간에서는 온갖 것들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된다. 버스나 엘리베이터를 타면 무심코 보이는 모니터에 광고와 뉴스가 뜬다. 도서관의 전자 신문열람대에도 숨 가쁘게 새로운 소식이 이어진다.
당분간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견뎌보고자 한다. 나의 휴가와 휴식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억지로라도 쉬어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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