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중계 국무회의가 재밌다니... 살다살다 별일이다

이진수 2025. 7. 30.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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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기] 이재명 대통령의 '파격 라이브 국무회의'의 효능감... 장관들에게 필요한 세 가지

산재 예방을 집중적으로 다룬 29일 국무회의가 화제입니다. 오마이뉴스는 21년 경력 전직 국회 보좌관 이진수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관전기를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싣습니다. <편집자말>

[이진수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과 중대재해 근절대책 토론을 하며 김병환 금융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오늘(7월 29일) 부로 내 최애 프로그램은 '국무회의 생중계'다. 진짜 재미있다. 이런 박진감 있는 드라마가 없다. 유튜브로 1시간 넘게 본 것 같다. 국무회의가 재미지다니 살다살다 별일이다.

1. 대통령 앞에서 대충 말하기 없기

고위공직자 가급(1급 공무원 상당 직위)쯤 되면 누가 차관까지 갈지 대충 보인다. 누가 갈까? 장관의 말에 깔린 의중을 정확하게 읽고 미리 대답을 준비하는 이가 간다. 회의 때 물어봤든, 현장 시찰하면서 나온 말이든, 무심코 지나가며 한 말이든, 흘려들으면 안 된다. 최종 결정권자의 고민과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단서다. 참모는 그걸 잘 잡아내야 한다.

7월 29일은 산업재해가 주제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곳곳에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노동부, 법무부, 산업부, 중기부, 법제처, 전부 답해야 한다. 아직 초임이라 그런지 질문에 비해 답들이 무디다. 질문마다 듣고자 하는 답이 있는데, 엉뚱한 소리 하는 장관도 꽤 있다. 대통령이 고민하는 지점이 어딘지 장관은 늘 공명(共鳴)하고 있어야 한다. 요 며칠 동안 이미 대통령은 산재 문제에 집중하고 있었지 않은가.

2. 국무회의는 본방 사수

국회의원, 정부 관료, 부처 공무원, 법조인, 기업주, 노동자, 기자... 누구랄 것 없이 전부 국무회의를 봐야겠다. 29일 산재 안건만 해도, 만약 국회 보좌진들이 봤다면 산안법·중처법 등 법률 제·개정할 것이 한눈에 쫙 보이겠다. 공무원들한테는 부처 소관 시행령이나 규칙 개정할 것들을 딱딱 짚어줬다. 기업들은 기획전략실 다시 살려야겠다. 국무회의 지켜보면 정부가 하는 생각이 다 읽힌다. 무엇이 정책 현안이 될지 다 나온다. 눈 밝은 이들은 앞으로 2년간 무엇이 국정 의제가 될지 대충 감 잡겠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중대재해 근절대책 토론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3. '일잘러 정치인'의 전망

장관들이 밤새워 공부하게 생겼다. 핵심을 정확히 짚고 문제점과 대안을 짧게 요약해 말하면, 귀 밝은 대통령이 금방 알아챌 것이다. 똘똘한 장관이 얼마나 예쁘겠는가?

좋은 정치인에는 두 종류가 있다. 잘 싸우는 사람, 일 잘하는 사람. 지금 우리 정치엔 잘 싸우는 사람은 있어도 '일잘러'가 부족하다. 약점이다. 일 잘하는 사람은 문제의 핵심을 빨리 파악하고, 그 문제를 둘러싼 대립 구도가 무엇인지 세밀히 이해한 위에, 실현 가능한 대안을 얼른 찾아내는 사람이다. 이재명 정부 5년 동안 이런 일 잘하는 정치인의 전망이 무척 밝겠다. 부럽다.

첫 공개 국무회의 주제가 산재라는 게 무척 고맙다. 노동자의 생명을 돌보는 정치. 농담처럼 'PD(민중민주)적 문제의식을 가진 대중정당'이란 말을 하곤 했다. 그 비슷한 정치를 오늘 봤다.

4. 세 가지 위험 요소를 극복하려면... 결국 국민에게 좋은 일

물론 이런 공개 국무회의에도 위험 요소는 있을 것으로 본다. 위험을 줄이려면 장관들이 국무회의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져야 할 건데 그러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조심할 것'이다. 아마 부처 공무원들이 장관에게 현안에 대해 엄청 자세하게 보고한 다음 달달 외우기를 바랄 것이다. 그런데 그것 대부분이 지금까지의 방어논리를 조금 더 발전시킨 수준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 대통령은 그 정도 수준으로 답하면 아마 추가 질문 공세를 퍼부을 것이다. 문제를 '관리'하는 게 아니라, '해결'하라는 요구를 하니까. 그러니 장관은 보고를 받고 그 보고가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지, 그동안 해오던 대응방식의 문제나 한계는 없는지, 있다면 새로운 해결책은 무엇인지 등을 놓고 공무원들과 함께 밤을 새워 고민해야 한다. 즉, 절대 참모들이 주는 매끈한 보고서를 그대로 들고 덜렁덜렁 회의에 들어가면 안 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중대재해 근절대책 토론을 하며 정성호 법무부 장관과 논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둘째는 '한 걸음 더 들어갈 것'이다. 자기네 현안이 아닌 사안이라도 대통령이 중요하게 보는 거라면 자기 부처에서 협력할 게 없는지, 관련해 할 수 있는 게 없는지 빈틈없이 챙겨야 할 듯하다. 공무원들이 워낙 부처 칸막이 의식이 있어서 자기들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절대 입 밖에 안 꺼내는 경향이 있다. 그것까지 다 꺼내놓고 준비하게 해야 한다. 안 그랬다가는 대통령한테 들키고 나서 부랴부랴 챙기는 소동이 벌어질 각오해야 한다.

셋째는 '시야를 넓히는 것'이다. 본연의 업무도 아니고, 연관 부서도 아니지만 대통령 관심 사안에 대해 국무위원으로서 자기 생각은 무엇인지 항상 현황을 파악하고, 자기 견해를 정리하고 들어가야 할 것 같다. 회의 때 그냥 앉아 먼 산 보듯 하는 장관은 자기 부처 현안을 보고해도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위험 요소를 사전 해소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이 만기친람하다 숲에서 길을 잃었다는 식으로, 공무원 사회를 강제력으로 추동하려다 비현실적 국정 목표에 대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는 식으로 공격받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두면 안 된다.

29일 국무회의로 인해 지금쯤 공무원들 발칵 뒤집어졌을 것 같다. 특히 기획조정실 쪽이.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과 완전히 차원이 다른, 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몰려올 듯하다. 아무려나 국민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진수씨는 제정구·김부겸 의원 등의 보좌관을 지냈으며 책 <세상을 움직이는 글쓰기 - 정치 글 쉽게 쓰는 법> <보좌의 정치학>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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