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공포물이 보고싶다①] 돌아오지 않는 ‘20년 전’ 전성기

이예주 2025. 7. 29.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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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영화 시장은 '여고괴담'(1998)과 '폰'(2002)이 각각 2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2003년 '장화, 홍련'이 관객 수 314만명을 기록하며 한국 공포영화 흥행 신기록을 세웠고, 178만명을 모은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 여우계단'(2003)과 169만명을 동원한 '알포인트'(2004), 110만명이 관람한 '령'(2004) 등이 줄줄이 개봉하며 한국 공포영화의 르네상스를 일궈냈다. 이 여파로 후발주자인 '분홍신'(2005), '궁녀'(2007), '고死: 피의 중간고사'(2008) 또한 150만 안팎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한국 공포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 공포영화 시장은 조금씩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고死: 두 번째 이야기: 교생실습'(2010), '고양이: 죽음을 보는 두 개의 눈'(2011),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2011)가 있는데, 세 작품 모두 각각 85만, 67만, 79만을 모으는 데에 그쳤다. 공포영화에 대한 수요만 볼 뿐, 전작의 클리셰들을 답습하며 우후죽순으로 쏟아진 까닭이다. 다만 2017년 개봉한 '곤지암'이 267만 관객을 기록하며 역대 한국 공포영화 흥행 2위를 차지했고, 같은해 개봉한 '장산범' 또한 120만 관객을 동원해 호러영화에 대한 관객의 호기심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팬데믹 이후 콘텐츠 유통 플랫폼과 소비 방식이 다변화되며 극장을 찾는 관객 수가 줄어든 가운데, 2020년대에는 현실과 맞닿은 공포를 재해석하거나, 장르적 쾌감을 강화한 방식의 한국 공포물이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예컨대, 칸 영화제에도 진출한 ‘잠’(2023)은 몽유병이라는 익숙한 증상을 심리극과 부부 서사로 풀어낸 독특함으로, ‘노이즈’(2025)는 층간소음이라는 사회적 스트레스를 시각과 청각을 강조한, 서스펜스로 전환하며 관객의 공감을 얻었다.

의미있는 도전도 있었다. 한국·태국 합작 영화 ‘랑종’은 태국의 샤머니즘이라는 지역 고유의 문화 요소를 강렬한 이미지와 결합해 독특한 공포감을 구현했다. ‘셔터’로 아시아 공포 팬들의 인정을 받은 태국 감독 반종 피산다나쿤이 연출을, ‘추격자’, ‘곡성’의 나홍진 감독이 제작을 맡아 두 장르 장인의 협업으로 개봉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그 결과 ‘랑종’은 당시 개봉 나흘 만에 40만 관객을 동원하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 중 최단기간 손익분기점 돌파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신드롬을 일으킨 ‘파묘’는 오컬트 공포라는 특유의 장르적 색채를 앞세워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공포영화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듯 완성도 높은 공포영화들이 잇따라 선택받으며, 극장가에는 여전히 공포 장르를 원하는 관객층의 수요가 유효하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공이 공포 장르 전반의 안정적인 흥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비교적 제작 규모가 컸던 ‘클로젯’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선산’은 하정우, 연상호라는 신뢰도 높은 이름에도 불구하고 혹평을 얻었다.

‘곤지암’처럼 실존하는 지역과 폐쇄 공간을 내세워 후광을 노렸던 ‘치악산’(2023)과 ‘늘봄가든’(2024) 역시 40만 관객도 모으지 못하며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공포영화는 장르와 소재의 흥미만으로는 관객을 끌어들이기 어렵고, 잘 만들지 못하면 냉정하게 외면당하는 장르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이로 인해 공포영화의 스크린 점유율도 줄어든 상황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고死: 두 번째 이야기: 교생실습'과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의 개봉 첫날 각각 279개와 268개의 스크린을 확보했으며 '곤지암'의 경우 개봉 첫날 무려 808개의 스크린에서 관객을 만났다. 그러나 '치악산'은 개봉 첫날 217개, '공포특급'은 개봉 첫날 164개의 스크린을 확보하는 데에 그쳤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업계 전반의 불황과 맞물려 자연스럽게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극장 관객 수 감소로 대부분 작품이 100만 관객 조차 넘기는 일이 이례적인 현상이 됐고, 공포영화 역시 위축될 수 밖에 없는 흐름이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 환경 변화로 인해 영화의 경쟁력이 더욱 중요해진 상황"이라며 "확실한 신뢰가 있는 IP 영화의 흥행이 계속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흥행 전망이 불확실한 공포영화의 존재감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화제성과 제작 편수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다만 OTT 플랫폼의 확산과 저예산 제작 구조를 기반으로, 공포영화는 여전히 신인 감독이나 독립 제작사에게 진입이 용이한 장르로 기능하고 있다. 공포영화는 극장 배급망 내에서는 위축되고 있지만, 산업 전체에서는 여전히 활발히 순환되고 있는 독특한 장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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