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보다 낫네"…바닷마을 '은퇴 맥가이버'들의 두번째 출근[르포]


"배 만들고 엔진 다루고 집까지 짓던 손입니다. 못 박고 싱크대 고치고, 형광등 교체하는 것쯤은 '뚝딱' 해치웁니다" 지난 21일 오전 울산 동구 화정동. 동해 일산항 근처 바닷마을 골목길에는 파란 작업복을 입은 두 남성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허리에 공구가방을 찬 이항규(67)씨와 김창식(67)씨가 동네 순찰 중이었다. "저소득층과 노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인데, 보도 블럭이 튀어나오진 않았는지, 고장 난 가로등은 없는지 같은 것을 살펴보는 겁니다."

동갑내기 두 사람은 일상이 된 듯 마을을 살핀 뒤 가방 속 공구를 점검했다. 망치, 실리콘 총, 드릴, 나사, 낡은 샤워기 교체 부품까지 빈틈없이 준비돼 있었다. 이들이 향한 곳은 거동이 불편한 80대 독거노인의 집이었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라며 인사를 건넨 뒤 이들은 곧장 집 안 욕실로 들어갔다. 그러곤 '뚝딱' 하고 10여분만에 수건걸이와 안전바를 달았다. "아들보다 낫네"라는 노인의 칭찬에 두 사람은 환하게 웃으면서 "어르신 다음에도 불편한 거 있으면 꼭 불러주세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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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기술자들의 두번째 출근

마을마다 2명씩 총 8명의 지킴이가 활동 중이다. 이 중 막내는 예순, 큰형은 칠순이다. 환갑의 막내 방어동 지킴이 제갈태열 씨는 현역 때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했다. 그래서 커튼 달아주기 같은 일은 누구보다 손이 빠르다. "전기도 잘 다루고, 집 관련 일은 평생 해온 일이라 누구보다 자신 있습니다." 전하동 지킴이 이명열(68)씨는 가구공장을 운영했다. 유명 기업에서 25년간 선박가구도 제작했다. 그래서 나무 관련된 일은 누구보다 능숙하다. 못을 박고 문 도어록 교환, 경첩 교체 같은 일은 그가 손만 대면 금방 새것처럼 된다. 방어동 지킴이 강춘석(64)씨는 배관, 용접, 정비 일을 29년간 한 달인이다. 특히 건축배관기능사, 가스기능사, 보일러취급기능사, 전기용접기능사 등 기술 자격증만 4개를 가져 '맥가이버'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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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처리, 문고리 수리까지 OK


하루 평균 마을별 민원 접수는 10건 안팎. 형광등 교체부터 싱크대 누수, 문고리 수리, 부러진 의자 수리, 못 박기, 수건걸이 달기, 변기 수리 등 다양하다. 민원은 대부분 저소득층이나 노년층 요청이다. 방어동 주민 김모(72)씨는 "공구도 없고 손재주도 부족한데 마을지킴이들이 있어 생활이 한결 편해졌다"고 전했다.
은퇴 기술자 인력 풍부한 울산


마을지킴이 사업은 '해피생활민원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됐다. 그러다 이달부터 울산 동구청이 직접 시스템을 정비해 마을지킴이라는 이름으로 새출발했다. 이주향 울산 동구청 민간협력팀장은 "단순한 봉사를 넘어서 은퇴자의 전문 기술을 지역에 환원하는 새로운 사업이 마을지킴이"라면서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고 거기에 더해 은퇴자들의 일자리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사업이 되도록 행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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