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택시에 살인범이 탄다면? 장르적 매력 터지는 단편
[김성호 평론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만이 가진 특별한 위상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며 전주국제영화제와 함께 한국 3대영화제라 불리는 BIFAN에게 다른 어느 곳과도 차별화되는 선명한 특징이 있다는 뜻이다. 영화제를 찾은 관객이 만나기를 고대하는 것, '나 BIFAN 가는 사람이야'라는 말이 의미를 지니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나는 여전히 믿고 있다.
답은 개성에 있다. 다른 어떤 영화제보다도 BIFAN은 개성에 높은 점수를 준다. 때로는 개성이 완성도며 대중성과 괴리된다 해도, 개성에 대한 지지 만큼은 거둘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건 그대로 BIFAN의 정체성이 된다. 과거보다, BIFAN 상영작이 너무 섬뜩하다거나 심지어는 역겨워 보는 도중에 많은 사람을 나가게 한다거나 하는 전설적인 사례들이 있던 때보다는 많이 순화되었다지만 여전히 BIFAN에는 남다른 색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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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범 잡은 택시기사 스틸컷 |
|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어디 그뿐이랴. BIFAN이 매력적인 건 그저 장르적 매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술의 지고지순한 목적에 다다르려는 일군의 작품을 넘어, 선명하고 분명한 재미를 추구하는 장르영화의 매력을 전면에 드러낸 작품들을 널리 소개하는 모습에 있다. 이 가운데는 기존엔 흔히 발견할 수 없는 형식과 시선, 연출법, 연기 등에 이르기까지 저만의 매력을 발하는 영화들이 자리한다.
특히 중편이나 단편의 경우, 약간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하며 아직 여물지는 않았대도 나름의 매력을 시험하고 다듬는 시도를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부천이 아니라면 만나지 못할 영화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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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범 잡은 택시기사 스틸컷 |
|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주연은 택시기사 승범이다. 회사에 고용된 사납택시 기사로, 오늘 근무시간이 끝나가는 모양이지만 어찌저찌하다 차를 가로막은 웬 사내를 마지막으로 태우게 된다. 일진이 사나운지 이 승객은 도저히 정상은 아닌 모양인데, 친구와 통화하며 제가 누구를 죽였다는 이야기를 취해 나불거리기에 이른 것이다. 이를 그대로 들은 그가 파출소에 차를 세우려다 겁이 나서 차마 그리하지 못하는 과정이 이 영화 <살인범 잡은 택시기사>의 도입을 장식한다.
30분의 결코 짧지 않은 러닝타임 동안 <살인범을 잡은 택시기사>는 다양한 승부수를 준비한다. 도입에서 예기치 않은 승객과의 긴장감 있는 동승이 그러하고, 이후엔 승범이 직접 살인범을 찾아서 그를 태운 곳으로 향하는 이야기가 그러하며, 이로부터 생겨난 또 다른 소동이 또한 그러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마침내 제가 겪었던 일을 이번엔 살인범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반복하는 드문 설정으로 이어지는데, 이것이 전과 같지 않은 결론에 봉착하는 것이 이 영화 <살인범 잡은 택시기사>의 재미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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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범 잡은 택시기사 스틸컷 |
|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엑스라지는 흔한 영화의 규격을 넘어서는 기발한 단편들을 소개하는 창이다. 영화제 측은 '짧지만 한계 없는 가능성의 상찬'이라 이 섹션을 소개하는데, 장편 영화가 포착하지 못하는 폭넓은 이야기와 세계관을 담은 단편 영화만의 매력으로 가득한 작품들을 만나는 섹션이란 이야기다.
<살인범 잡은 택시기사>도 채 2%가 되지 않는 작품만이 살아남는 치열한 경험을 거쳐 엑스라지 섹션에 든 작품이다. 영화제 측은 이 영화의 수준급 만듦새에 더해 반복이 주는 특별한 감상을 스릴러와 드라마 사이를 오가며 활용한 아이디어에 높은 점수를 준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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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 |
|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심지어 기사와 승객이 전에 본 적 없는 낯선 사이란 점도 재료가 될 수 있다. 좁은 공간에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두 사람 사이에 유대감이 싹틀 수도, 전에도 본 적 없고 앞으로도 볼 일 없는 사이란 점에서 익명성이 강조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중 어느 지점을 증폭하고 다른 지점을 축소하느냐에 따라 영화가 나아갈 수 있는 방향도 여러갈래로 나누어질 수 있겠다.
또한 택시기사가 살인범을 비롯해 범죄자 승객을 검거했다는 이야기, 보이스피싱을 당하는 승객을 구해냈다는 이야기, 자살을 하려는 이를 막아세웠다는 이야기 등 다양한 뉴스를 확인할 수 있다. 반면 택시기사가 승객에게 강도행각을 벌이거나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뉴스도 숱하게 마주한다. 택시가 가진 특별한 공간성과 관계성을 영화가 만지작거리곤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살인범 잡은 택시기사>는 30분의 러닝타임 동안 두 명의 택시기사, 두 명의 승객을 연달아 보여주며 같은 듯 보이지만 다른 관계성을 드러낸다.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분위기가 관객에게 흥미로운 감상을 일으킨다. 어찌 보면 단순한 착상과 전개일 수 있겠으나 이 영화를 두고 호평을 내어놓는 이가 많은 건 익숙함 가운데서 낯선 감상을 끌어내는 영화적 선택 때문일 테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영화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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