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태는 비 때문이다? 사람이 물길을 바꿨다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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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일 경기도 가평군 수해 현장에서 산사태로 토사물이 쌓여 있다. |
| ⓒ 연합뉴스 |
이처럼 상반된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묻고 있다. "누구 말이 맞는 것인가요?" "비 때문인가요, 벌목 때문인가요?"
필자는 이 질문에, 과학자의 입장에서 답하고자 한다. 수문학과 구조공학의 관점에서 현장의 관찰을 해석하고, 단지 주장을 넘어서, 실제 실험과 공공적 검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리고 산림청도 이제는 임도와 사방댐을 만들어야 한다는 기존 입장만 반복하는 데 머물지 말고, 기후위기 탓만 하기보다는 체계적인 분석과 공개 검증을 통해 시민들과 반대자의 의견에 책임 있게 대응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국민을 안심시키고, 재난 대응의 신뢰를 높이는 길일 것이다.
지반이 약해졌다고요? 그 설명이 가장 약하다
산사태가 발생하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말이 있다. "지반이 약해졌다." 하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이렇게 반박해 왔다. 산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무너지는 것은 정책이고, 설계이며, 지형이다. 최근 현장을 확인한 기사들은 산불이 난 곳보다, 벌목하고 조림한 지역에서 산사태가 집중적으로 발생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구조적 원인을 제대로 짚은 매우 중요한 관찰이다.
기후 때문이 아니다, 구조 때문이다
기후변화의 영향은 분명하지만, 모든 재난을 기후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기후에 취약한 구조를 외면하는 것이다. 왜 같은 양의 비가 내려도 어떤 지역은 산이 무너지고, 어떤 지역은 무너지지 않을까? 그 차이는 비 자체가 아니라 비가 지나가는 길, 즉 지형을 바꾼 결과에 있다. 특히 산불 이후 벌목하고, 임도를 내고, 뿌리가 약한 나무를 조림하면서 산의 구조가 망가졌다면, 그것은 이미 재난의 씨앗을 뿌린 셈이다.
유출계수 증가가 불러온 수문학적 경고
산에 나무가 있으면 빗물이 스며들고 천천히 흘러간다. 하지만 벌목된 산에서는 뿌리와 낙엽층이 사라져 물이 머무르지 못한다. 이로 인해 유출계수(runoff coefficient), 즉 내린 비 중 하류로 흘러내리는 비율이 급격히 증가한다. 같은 비가 내려도, 벌목된 산에서는 2배 이상의 물이 더 빠르게 쏟아져 내린다. 이로 인해 하류에는 더 큰 홍수가, 중간 경사면에는 산사태가 발생한다. 이 현상은 수문학적으로 명확한 인과 관계이며, 구조적 실패의 결과다.
임도는 물길을 끊고, 재난을 잇는다
현장을 확인한 기자는 산사태가 발생한 곳의 공통점 중 하나로 임도의 존재를 지목했다. 이는 나 역시 오래전부터 경고해 온 사실이다. 임도는 산림을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지지만, 실제로는 물길을 가로막고, 땅을 잘라낸다. 도로 아래쪽은 무거운 빗물의 압력을 그대로 받게 되고, 도로 위쪽은 배수로가 없어 물이 넘치면 그대로 산비탈을 파내려간다. 이로 인해 산사태 발생 가능성이 수직적으로 증가한다.
또한 임도는 중장비의 접근로가 되면서 더 많은 벌목을 가능하게 하고, 더 깊숙이 산을 훼손하는 길이 되기도 한다. 산을 가르며 만든 임도 하나가 결국 수문 구조를 망가뜨리고, 뿌리 구조를 끊고, 산을 허무는 도화선이 되는 것이다.
벌목이 건조화와 산불을 부른다
벌목은 단순히 수분 저장 능력을 잃게 할 뿐 아니라, 산을 건조하게 만든다. 건조해진 산은 산불에 취약해지고, 다시 그 산을 벌목하고 조림하면, 뿌리 약한 나무들이 들어서고, 비를 머금지 못한 채 재난이 반복된다. 이렇게 벌목은 건조화 → 산불 → 조림 → 유출계수 증가 → 산사태로 이어지는 재난의 순환고리를 만든다. 우리는 이 연결고리를 직시해야 한다.
불나고, 길 내고, 무너진다
산은 말을 하지 않지만,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불이 나고 → 임도를 만들고 → 산이 무너진다.
나무를 자르고 → 산이 마르고 → 불이 나고 → 비가 오면 또 산이 무너진다.
이 고리는 계속 돌고 있다. 마치 재난을 위한 순환 구조처럼. 이제는 이 순환을 끊어야 한다. 더 이상 "자연이 문제다"가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만든 구조다.
산을 불쏘시개 관점에서만 본 결과
지금까지 산림청은 산을 자원창고나 불쏘시개 관점으로만 보아왔다. 그래서 나무만 자르고, 팔고, 다시 심는 식의 단편적인 산림정책이 반복됐다. 하지만 산은 그 자체로 물의 저장고이자, 생명의 순환계다. 물이 스며들고, 생물이 살아 숨쉬며, 기후와 사람을 이어주는 생태적 허브다. 산을 불쏘시개가 아니라 물순환의 조절자로 보지 못한 것이 지금의 실패다. 이제는 물과 생태계, 기후와 사람을 함께 아우르는 통합적 관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현장 실험을 제안합니다
이제는 단지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넘어서, 국민이 함께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공공 실험'을 제안한다. 벌목한 지역과 자연림, 임도가 있는 산과 없는 산을 선정해 같은 강우 조건에서 유출계수와 산사태 발생 가능성을 측정하자. 과학자, 기자, 행정기관, 지역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현장 기반의 모의수문 실험을 통해 산사태의 진짜 원인을 구조적으로 밝히고, 정책 전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과학이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이자, 재난을 예방하는 책임 있는 시민의 자세다.
과학자의 눈, 시민의 책임
이 글은 단순히 한두 기자의 주장에 맞장구를 치는 것이 아니다. 과학자의 눈으로 현장의 구조를 읽고, 시민의 책임으로 진실에 응답하는 글이다. 홍석환 교수, 최병성 기자를 비롯한 현장 기자들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산을 올라 확인하며, 우리가 외면하던 연결고리를 드러냈다. 그 노력은 언론인의 일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 모두의 과제를 대신 짊어진 용기이기도 하다.
나는 두려움보다 더 큰 책임감을 선택했다. 누군가는 기록하고, 물어야 한다. 왜 산이 무너졌는지. 그리고 누가 물길을 바꿨는지를.
* 이 기사는 카드뉴스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link24.kr/Aaq9nV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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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 명의 기자나 특정 기관을 지지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산이 무너졌을 때, 우리는 구조를 먼저 의심해야 합니다. 저는 과학자의 입장에서 수년간 현장에서 관찰하고, 수문학적 데이터를 통해 벌목과 임도, 조림이 재난을 어떻게 유발하는지를 분석해왔습니다. 최근 여러 언론이 이 문제를 다시 꺼내 들었고, 저는 그 현장 기록에 과학의 언어로 응답하고자 이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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