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서점 직원이었는데요, 퇴사 후 생긴 증상 [변방에서 안방으로 : 일하는 사람책]

최문희 2025. 7. 2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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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동아서점 대표가 쓴 에세이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당신에게 말을 건다>를 읽고

일하는 사람의 기록을 담은 책을 소개한다. 송곳이 되어 준 작가의 경험과 필자의 지금을 들여다보아 변방에서 안방으로 자리를 넓혀 먹고사는 오늘의 온도를 1℃ 올리고자 한다. <기자말>

[최문희 기자]

서점에 가면 조금 더 힘내서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계산하고 들고 온 책은 고작 한두 권일지라도 한두 달은 발전적으로 살아낼 것 같은 희망. 서점엔 그 기대감으로 들떠 페이지를 넘기는 독자가 있다. 수천 페이지로 이뤄진 책에 둘러싸여 일하는 사람이 있다. 서점은 책을 고르고 나르고 파는 서점원들의 땀내 나는 작업장이기도 하다.

세련된 북큐레이션, 말끔한 서가로 이뤄진 서점 뒤편엔 꽤 컴컴한 창고가 있다. 대다수 서점 창고엔 밴딩기(책을 묶는 포장 기계)와 끌차, 노끈으로 묶인 책들이 공장 벨트라인에 놓인 부품들처럼 도열돼 있다. 그렇게 옮겨지는 책은 정말 무겁고 손이 베이기 쉽다(!). 한때 대형서점에서 일했던 나는 퇴사 이후 책방을 들를 때마다 매대 위에 놓인 책을 무심결에 각 세워 정리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내가 왜 이러나, 하고 고개를 들면 책보다 일하는 서점원의 노곤한 얼굴이 눈에 들어와 곤혹스러웠다. 퇴사한 이후 들른 서점엔 늘 낭만보다 노동의 흔적이 보였다. 북클럽 회원 유치, 날마다 들어오는 신간 정리, POP(Point of Purchase 매장 광고)와 매대별 매출 현황 파악까지. 그렇게 서점원이었던 한 사람은 책이 있는 공간을 애증하게 되었다. 어쩌나, 땀내 나는 이야기 곳간으로 보이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업력 약 70년, 소문으로만 듣던 마성의 서점
 1956년 개점해 2025년 현재까지 명맥을 잇고 있는 속초 동아서점 입구 모습. 속초시 수복로 108에 위치한다.
ⓒ 최문희
그래서 서점을 싫어하고도 좋아한다. 양가적 감정이 균형추를 맞춘 날이 있었으니, '이 서점, 격하게 사랑스러워!' 하고 벅차오른 속초에서의 여름을 기억한다. 때마침 설악산 공룡능선을 완주한 다음 날, 살짝 들뜬 몸과 정신으로 무장한 채 찾았다. 소문으로만 듣던 마성의 동아서점을.

서점 문을 열자마자 훅 끼치는 온기. 나는 벙찌고 말았다. 여름인데 왜 봄처럼 따뜻할까. 엎어지면 코 닿는 데 독립서점이 가득한 곳에 사는데도 난생 처음 느끼는 환희였다. 넋 잃고 온기를 느끼다가 단단히 넋 차리고 일하는 서점원 두 사람이 희미하게 보였다. 어느새 나는 동아서점의 옛 모습이 찍힌 엽서를 고르기 시작했다.

1956년에 서적 판매를 겸했던 문구사로 개업한 속초 동아서점. 할아버지 김종록과 아들 김일수, 그의 아내 최선희가 명맥을 이었고, 그 뒤를 이어 김영건, 이수현 부부가 꾸리는 이곳. 업력 70년째를 앞둔 서점의 역사가 담긴 독립출판물을 발견하고 마음이 쏠렸다. 그 옆으로 여느 대형서점보다 탁월하게 구색이 갖춰진 잡지 코너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코 박고 색색의 표지를 눈에 담았다.

지역 협업 매대, 서점 중앙부에 위치한 그림책 큐레이션 수준에 한번 더 놀랐고,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눈길을 사로잡는 '굿즈' 전시물과 도서 추천 문구에 문득문득 멈춰 섰다. 널찍한 창가에 앉아 책 읽는 어린이들을 보고선 국내 국립공원 제1경이라는 설악산 신선대에서의 아침보다 더 큰 감탄을 뱉고 말았다. 어린이들이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먹으며 책을 펼치는 모습은 그 어떤 인테리어보다 소중한 발견으로 다가왔다.

서울로 돌아와 속초 동아서점의 대표 김영건이 쓴 <당신에게 말을 건다>,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를 읽기 시작했다. 순전히 서점에 먼저 반해서 읽은 책들이자 아름다운 서점 너머 그 안에서 일하는 이들의 실제 노동이 궁금해 펼친 책들이다.

두 책의 정체성은 퍽 잘 나눠진다. <당신에게 말을 건다>(2017년 2월 출간)는 2015년 새 단장하기까지 분투이자 서점 식구의 업무 일지라 할 수 있다. 후속작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2022년 6월 출간)엔 서점 주인장이 읽는 책과 취향이 오롯이 담겼다. 두 책 모두 필자가 동아서점에 처음 갔을 때 느낀 봄의 온기와 닮은 바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에 스민 땀과 빛깔부터 느낀 대로 풀어보겠다.

서점원의 취향을 가득 담은 책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 어크로스
동아서점 대표 김영건은 자신이 쓴 책 중간중간 스스로를 '서점원'이라 부른다. 서점원 김영건은 20대 후반 고향 속초로 돌아와 가게 일을 이어받은 뒤 하루 12시간 주6일을 일하는 사람이다. 이제 30대 후반에 다다른 그의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에는 37권 양서가 소개돼 있다. 소설 <마션>부터 만화 <익명의 독서중독자들>까지. 다양한 독자들이 밀물과 썰물처럼 오간 서점에서의 일과와 책 이야기가 파도처럼 펼쳐진다.

그는 자신이 쓴 서평을 '독서생활문'이라고 부른다. "고리타분하게도 저는 제가 읽은 책들이 진정으로 삶에 유용하다고 믿"어온 마음의 내력을 우리에게 내보인다. 자신이 진열한 책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인간이 되자고 가만히 다짐하는 사람과 만"나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수줍음 많고 미사여구를 그다지 쓰지 않는 듯한 서점원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배시시 웃게 된다. 때때로 블랙 컨슈머(악성 민원 소비자)가 북상하는 일상을 견디면서도 '가족이 유일한 세상'이라는 저자를 가만히 응원하게 된다.

이 책에는 서점이라는 일터에서 겪은 곤궁, 가족에 대한 사랑, 서점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한 신념이 저자가 애정하는 책 사이사이 묻어 난다. 책 정보와 논평으로 구성된 서평의 틀에 갇히지 않아 신선하고 읽고 나면 취향에 맞는 책 제목을 메모하게 된다. 그림책과 건강 에세이 등 전 연령층을 독자 대상으로 삼아 다양하게 책을 추천한 점에서 서점인의 안목이 드러난다.

이쯤에서 질문, 속초 동아서점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궁금해진다. 독일 소설가 유디트 헤르만이었다. <레티파크>, <단지 유령일 뿐>, <여름 별장, 그 후>가 대표작이다. "어둠 속에서 막막하고 무기력할 땐, 막막하고 무기력한 세계가 어딘가 또 있다는 사실이 의외로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저자는 이 아름다운 소설들을 예찬한다. 삶이 막막한 청년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묘한 고독의 문장들을 건넨다.

그가 서점을 꾸리며 겪은 사연들이 꽤 재밌다. 나훈아의 <고향역> 악보가 실린 가요책을 찾는 중년, 교도소에 수감된 아들에게 줄 책을 선물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해온 부모 등 갖가지 상황에 부닥친 서점원의 당혹스러움에 웃음이 나고, 진지한 책 처방엔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떤 에피소드는 책 소개가 거의 없음에도 서점원이 소개하는 책이 어떤 내용인지 가늠이 가 사서 읽고 싶어진다.

동아서점 서점원의 머릿속에는 '시그니처 북'이 있다. 단골이 고른 책을 바탕으로 그 사람을 상징하는 책을 업데이트하는 것. 손님이 책방에 오면 요리사의 가장 유명한 메뉴인 '시그니처 디쉬(Signature dish)'를 꺼내듯이 손님의 취향이 스민 '시그니처 북'을 정비한다. 건강책을 좋아하는 단골이 오면 그의 머리 위에 '건강과 근육'이, 영화 잡지를 좋아하는 손님의 머리 위엔 '씨네21'라는 글자가 떠오른다는 것. 어쩌면 발견이란 오랜 기다림과 가만한 관찰에서 비롯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서점원의 장비와 땀
 <당신에게 말을 건다>
ⓒ 알마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가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 고유의 취향이 드러나는 이야기라면, 전작 <당신에게 말을 건다>는 서점 재건을 위해 밤낮을 새운 사람들의 땀내 나는 이야기다. 온 가족이 "책을 진열하고, 진열했던 책을 교체하고, 교체한 책을 반품하고, 흐트러진 책을 다시 정비"하는 노동이 여름날 모래알처럼 반짝여 독자의 눈을 밝힌다.

서점이 밴딩기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 신간을 일정량 제공 받는 배본(配本)을 택하는 대신, 각종 일간지에 추천된 신간과 출판사 SNS 계정을 탐색하며 신간을 자체 주문하는 일, 판매율이 저조한 독립 출판물을 매장 한가운데 진열하는 파격적인 행보, 절해의 고도에 떨어진 듯한 어두운 밤 한가운데 아버지와 수만 권 책을 반품하고 꽂으며 어느새 울창해진 서가를 덤덤하게 바라본 일.

그의 노동 일지를 따라가다 보면 고요했다고 여긴 서점이 동적인 삶의 현장임을 발견하게 된다.

세간이 주목하지 않은 책들을 발굴하고자 애쓴 흔적이 스민 두 책을 읽으며 진하게 느낀 것이 있다. 저자 김영건이, 동아서점을 이루는 가족이, 인터넷 서점에 밀려 매출난에 허덕이던 시절 이전부터 서점 문을 열어왔다는 것. 하릴 없는 반복적인 노동이 한 독자에게 그만 신성하게 다가와 버렸다는 것. 그리하여 책을 대하는 독자의 마음을 다시 고쳐 매줬다는 것.

저자의 문장에서 서점을 부흥하겠다는 열정이나 욕망은 뚜렷이 보이진 않는다. "고작 책 한 권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면 세상의 그 무엇도 아무것도 아닐 거"라며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하는 그의 일에는 대대손손 가업을 일으키고자 하는 마음 또한 투철해 보이진 않는다. 다만, 끝없이 펼쳐지는 책의 파도를 넘나들며 읽고, 옮기고, 꽂고, 건네며 독자를 환대해 온 하루가 보인다.

매일 서점을 쓸고 닦고 정비했던 어머니와 아버지 노동의 자리 곁에서. 그는 또 다른 자기만의 노동을 오늘 일궈 나갈 것이다. 그 꾸준한 성실 앞에서 독자의 태도가 어떠해야 할지 배운다.

"동아서점은 동아서점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만들어졌다. 먹고 살기 위해서. 서점이라는 가게를 운영하며 문화 사업을 하고 있다든가, 예술적인 영감을 전달하고 있다는 식의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동아서점은 맞은편의 떡볶이 가게나 옆 블록의 세탁소와 조금도 다를 게 없다. 우리가 당당하게 내걸 수 있는 기치가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우리 가족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하루 일을 마친 뒤에 지친 몸을 누일 안식처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 <오래된 서점 오래가는 디자인> (동아서점과 달실 지음)

조약돌 위에 조약돌 하나를 포개듯이. 저자가 걸어온 발자취가 이곳에 쌓이고 있다. 동아서점의 슬로건은 지역을 대표하는 서점, 가업을 잇는 기업의 정신을 표방하지 않는다. 다만, 서점에 오면 조금 더 힘내서 살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바라보기. 그러기 위해 서점의 불을 밝혀두기.

당신 마음의 서가가 불안을 걷어낼 때까지 담담히 이야기를 꽂고 채우는 서점인들의 노동 위에서, 나는 서점이 예전만큼 밉지 않게 되었다. 속초에는 내가 살면서 본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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