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캠프 참가한 아이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한 말
[변택주 기자]
지난 25일 청주의 한 초등학교 여름 독서 캠프에서 아이들과 <생각이 깊어지는 우리말 공부>와 <한글 꽃을 피운 소녀 의병>을 펼치며 놀다 왔다.
3학년에서 6학년을 묶어 <생각이 깊어지는 우리말 공부>를 바탕에 두고 이름과 어울림 놀이를 하고, 1학년과 2학년은 <한글 꽃을 피운 소녀 의병>을 바탕에 두고 소리시늉말과 짓시늉말을 익히며 놀았다. 소리와 짓을 묶어 놓은 놀라운 한글이 우리말을 이어오도록 했기에 할 수 있는 놀이였다.
두 반 다 문을 열면서 나는 말놀이에 앞서 몸을 풀자고 했다. A4용지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을 크게 쓰고 공처럼 성글고 둥글게 뭉치라고 했다. 그리고 탁자를 가운데 두고 둘로 갈라서서 종이 뭉치를 맞은 쪽으로 가볍게 던지고 떨어진 뭉치를 주워 그치라고 할 때까지 던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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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가 듣고 싶은 얘기를 남에게 하기 가슴에 사랑 싹 틔우는 일이다 |
| ⓒ 변택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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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이 나를 살린다 우리는 서로를 여는 열쇠이다 |
| ⓒ 변택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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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고운 동무, 낙서야 놀이야? 나도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쓰고 그림을 그렸더니 제 것 다 해놓고 달려나와 어울린다. |
| ⓒ 변택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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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듣고 싶은 말은? 남이 듣고 싶은 말을 하려면 내가 듣고 싶은 말부터 알아야 |
| ⓒ 변택주 |
나도 어려서 마당을 쓸려고 빗자루를 들었는데 엄마가 마당 쓸라고 하면 빗자루를 던지고 싶었는데 너도 그렇구나. 엄마도 너 힘들 줄 뻔히 알면서도 세상이 하도 빠르게 바뀌니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쫓아가기 어려워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어쩔 수 없이 그러지 않겠느냐고 혼잣말처럼 건네면서 답답함을 속 시원히 풀어주지 못해 속이 상했다. 이 아이가 듣고 싶은 말은 "공부해"가 아니라 "사랑해"인데 내가 그 말 한 마디 제대로 해주지 못하는 어른이라서.
이제 몸과 마음이 풀려 말놀이할 멍석이 제대로 깔렸다. 물으면 너나없이 손을 들고 다른 아이를 시키면 아쉬운 낯빛을 숨기지 않았다. 거의 맞출 만큼 쉬운 문제를 틀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활짝 웃는다. 그런데 딱 한 아이, 저도 손을 들었는데 남을 시키거나 제 말이 틀리면 금세 낯빛이 어두워졌다. 이 아이가 듣고 싶은 말은 '잘한다'였다. '잘한다'와 '사랑해'란 말이 듣고 싶다는 이 아이들에게 내가 들려주고 싶은 말은 "잘하지 못해도 괜찮아. 서툴러도 좋아. 공부 잘 하지 않아도 되어. 너는 그대로 고와"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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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름에는 누군지 알려주는 '이르다'와 뜻하는 곳에 다다르다는 뜻을 가진 '이르다'가 담겼다 |
| ⓒ 변택주 |
"큰 바위 얼굴 얘기 들어봤지? 큰 바위 얼굴을 닮고 싶어 하며 힘껏 살던 아이가 어느덧 큰 바위 얼굴이 되듯이, 제 이름에 담긴 뜻을 잘 새기고 이름에 걸맞게 살려고 힘쓰다 보면 저도 모르게 이름대로 될 수 있어. 내가 본보기 가운데 하나야. 택주는 연못을 가리키는 '택'과 두루 할 '주'가 모여 빚은 이름이야. 그런데 나라 곳곳에 꼬마평화도서관을 몇십 군데 열고 책도 열 권이 넘게 지었어.
그러나 속내를 털어놓으면 나는 이름처럼 살겠다고 뜻을 세우지 않았어. 그래도 바람직하게 살려고 애쓰다가 일흔 가까이 되어서 이름에 담긴 뜻을 곱씹어보면서, 꼬마평화도서관을 열고 책 펴내는 일이 평화 연못을 파는 일이 아닐까 싶더라고. 그런데 너희는 벌써 이름에 담긴 뜻을 잘 새기고 그대로 살려고 힘쓰면 나보다 훨씬 이름에 가깝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이날 내가 만난 이 아이들은 다 천재다. 뭘 물을 때마다 손을 번쩍번쩍 드는 아이도, 답을 알면서도 숫기가 없어 서슴서슴하는 아이도, 답은 몰라도 해맑게 웃을 줄 아는 아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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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느슨한 스포츠(유루스포츠) 럭비선수와 휠체어장애인이 겨루는 애벌레 럭비, 아이와 럭비선수가 겨루는 구멍 탁구 |
| ⓒ 변택주 |
작은 반 아이 하나가 손을 번쩍 들더니 "공평해요"라고 말한다. 이 소리에 '그래,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가 가랑이가 찢어지는 일이 없도록 황새는 뱁새 걸음에 맞춰야 하지. 그렇고말고' 하며 고개를 끄떡였다. 이렇게 아이들은 잘 아는 공평과 평등, 어른들은 곧잘 까먹는다. 아니, 까먹는지 지우는지 알 수 없다.
살랑살랑, 반짝반짝을 몸으로 그릴 줄 알고, 꿈틀꿈틀 춤출 줄 아는 아이들이다. 안다는 말은 머리로 헤아리는 것을 일컫지 않고, 몸에 새기는 것을 가리킨다. 헤엄칠 줄 알고 운전할 줄 아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은 고맙게도 머리에 앞서 몸으로 살 줄 안다.
아이들은 서툰 그대로 옹글며, 서툴러야 새롭다. '고마워' 할 줄 아는 이 아이들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 매이지 않고 그대로 자라야 얽힌 매듭을 풀고, 걸어 닫은 문을 열 줄 아는 어른이 된다. 이 아이들이 허우대만 멀쩡하고 속이 텅 빈 어른들과는 달리 '고마워' 할 줄 아는 참다운 어른이 되어 어울려 서로 살릴 때, 싸움이 잦아들고 지구도 숨통 트일 테다. 그러니 제발, 아이들을 풀어줘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글쓴이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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