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SK하이닉스’도 꺾인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이 또 한 번 ‘공급 과잉’ 우려를 마주했다. 약 1년 만이다. 지난해 9월 모건스탠리 아태지부 리서치센터는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looms)’ 리포트를 내고 HBM 공급 과잉론에 불을 질렀다. 올해도 비슷한 내용의 리포트가 나왔다. 발행 주체만 골드만삭스로 달라졌다. 골드만삭스는 2026년 ‘HBM 성장 속도 제동(HBM speed bump in 2026)’ 리포트를 내고 인공지능(AI) 칩 시장의 구조적 문제로 인한 수요 증가폭 둔화와 삼성전자 진입으로 2026년 HBM 시장 공급 과잉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HBM 시장 패권을 쥔 SK하이닉스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1년 전 모건스탠리의 2025년 HBM 공급 과잉 우려는 기우로 그쳤다. 다만 반도체 업계는 이번 골드만삭스의 공급 과잉 논리와 SK하이닉스 투자의견 하향 조정은 ‘설득력 있는 편’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따져볼 대목이 있다고 강조한다. ① GPU 절대적 수요 증가 ② 주문형반도체(ASIC) 점유율 확보 실패 등 일부 변수가 배제된 시나리오기 때문이다.

“ ‘블랙웰 → 루빈’ 탑재 용량 동일”
골드만삭스는 2026년 HBM 공급(39억8200만GB)이 수요(37억6400만GB)를 5% 이상 앞설 것으로 봤다. 핵심 근거는 엔비디아 컴퓨터그래픽장치(GPU)의 구조적 변화다. 골드만삭스는 차세대 GPU 루빈 아키텍처(R100)와 현재 블랙웰 아키텍처(B300) HBM 용량이 같다는 점을 지적했다. R100과 B300의 HBM 용량은 288GB로 동일하다. 적용되는 HBM 수도 8개로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적용 제품만 HBM4와 HBM3E로 구분될 뿐이다. 그동안 GPU의 아키텍처 진화에 따라 HBM 탑재 용량과 개수가 늘어 수요가 자연 증가했다. 예를 들어 호퍼 아키텍처(H100·80GB)에서 B100(192GB)로 진화할 때는 용량 확대가 개수 증가로 이어져 GPU 수요가 동일해도 HBM 수요는 늘었다. 하지만 블랙웰 → 루빈 아키텍처 진화 국면에서는 자연 증가 효과를 누리지 못하는 구조다.
ASIC의 경쟁력 제고도 주목했다. 일반적으로 AI 칩 시장에서 ASIC는 추론에 특화된 주문형반도체를 의미한다. ASIC는 AI 칩 시장 주요 고객사인 빅테크의 ‘칩 내재화’ 트렌드와 맞물려 떠오르고 있다. 비싸고 구하기 힘든 엔비디아 GPU 의존도 탈피를 위해 빅테크가 우후죽순 뛰어들었다. 골드만삭스는 ASIC 시장이 빠르게 커질 것으로 본다. 구체적으로 2026년을 기점으로 ASIC용 HBM 수요가 2배 가까이 늘어난다고 예상했다. 반면 GPU용 HBM 수요는 구조적 문제 등을 근거로 증가폭이 둔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면서 이 같은 변화가 HBM 시장 패권을 쥔 SK하이닉스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SK하이닉스는 마이크론이나 삼성전자와 비교해 GPU용 HBM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는 “GPU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업체는 2026년 HBM 수요가 둔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삼성 진입’ 공급망 경쟁 심화
“SK는 어떤 시나리오든 악재”
공급 과잉을 점치는 또 다른 이유는 삼성전자의 엔비디아 공급망 진입 가능성이다. 골드만삭스는 2026년 삼성전자의 HBM 공급 물량(용량 기준)이 2025년과 비교해 60% 이상 증가를 예상했다. SK하이닉스(35%) 대비 증가폭이 크다. 결과적으로 전체 HBM 공급 물량 중 29.1%를 삼성전자가 차지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① ASIC용 HBM 물량을 늘리고 있다는 점 ② 엔비디아 GPU용 HBM 공급망 진입 가능성을 반영해 추정한 값으로 풀이된다. 골드만삭스는 엔비디아 역시 이를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HBM 가격 인상률이 GPU 가격 인상률을 앞지르는 만큼 구조적 비용 증가를 감안하면 엔비디아가 추가적인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유인은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공급망 변화가 SK하이닉스에 직격탄이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단순 공급 과잉이라서가 아니다. 삼성전자 진입 가능성만으로도 SK하이닉스 가격 협상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논리다. 골드만삭스는 삼성전자의 엔비디아 공급망 관련 시나리오를 SK하이닉스 입장에서 3가지로 풀었다. ① 삼성전자의 엔비디아 납품이 1~2분기 정도 지연되는 기본 시나리오(Base case) ② 삼성전자가 올해 HBM4(연말 양산)까지 통과하는 비관 시나리오(Bear case) ③ 삼성전자가 HBM3E와 HBM4 모두에서 주요 고객사 인증 지연이 지속되는 낙관 시나리오(Bull case)다. 골드만삭스는 ③의 경우에도 SK하이닉스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전자의 GPU용 HBM 납품 여부와 관련 없이 삼성전자의 공급망 진입 가능성만으로도 엔비디아가 HBM 가격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골드만삭스는 “엔비디아가 공급망 확대 가능성을 활용해 HBM 가격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것”이라며 “가격 결정력은 점차 고객사(엔비디아·ASIC) 쪽으로 이동 중이라 공급 업체(SK하이닉스·삼성전자·마이크론) 입장에서는 하방 리스크가 크다”고 설명했다.

BofA “공급 부족 계속 이어질 것”
일각에선 과도한 우려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골드만삭스 전망을 두고 핵심 변수를 배제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이들은 GPU 수요 증가 가능성을 함께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골드만삭스는 블랙웰과 루빈 아키텍처 GPU 수요가 동일하다는 가정 아래 블랙웰 → 루빈 아키텍처 진화 국면에서는 자연 증가 효과가 없어 공급 과잉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반도체 업계는 루빈 아키텍처가 블랙웰과 비교해 보다 추론 성능에 집중된 만큼 블랙웰 이상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본다. GPU 자체의 수요가 늘면 자연 증가 효과가 없더라도 HBM 수요가 큰 폭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HBM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는 현상이 지속될 수 있고 SK하이닉스의 가격 협상력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또 ASIC 부문이 생각보다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도 배제된 요소다. ASIC은 GPU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HBM 탑재 용량이 적다. 이 때문에 ASIC이 GPU 점유율을 뺏어가는 건 HBM 시장 전체 입장에선 수요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ASIC 진영에서 일종의 ‘항복 시그널’이 나올 만큼 ASIC 진영은 의미 있는 점유율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도체 업계 전설이자 AI 칩 스타트업 텐스토렌트(Tenstorrent) 최고경영자인 짐 켈러는 지난해 말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AI 칩 시장이 워낙 큰 만큼 작은 점유율로도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니치 마켓 공략에 머물 수 있음을 인정한 셈이다.
비슷한 이유로 2026년 HBM 공급 부족을 점치는 시각도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최근 보고서에서 신규 GPU와 ASIC 출시로 HBM 공급 부족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BofA는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기존 36만원에서 40만원으로 상향했다. BofA는 “HBM 가격 인하가 있더라도 소폭에 그칠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증권사 역시 공급 과잉은 과도한 우려라는 쪽이다. 채민숙·황준태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 6월 ‘2026년 HBM 수급 점검’ 보고서에서 HBM 수요가 공급을 소폭 앞설 것으로 봤다. 이들은 “HBM 시장 다운사이드 리스크는 삼성전자의 HBM 공급 증가”라면서 “다만 삼성전자의 최근 투자 기조가 양산 확대보다는 연구개발(R&D) 강화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업사이드 요인(공급 부족)이 더욱 크다”고 의견을 밝힌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0호 (2025.07.30~08.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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