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총 7번 공격한 왜군, 이걸 다 막아낸 장군
조선은 읍성의 나라였다. 어지간한 고을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성이 있었다. 하지만 식민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대부분 훼철되어 사라져 버렸다. 읍성은 조상의 애환이 담긴 곳이다. 그 안에서 행정과 군사, 문화와 예술이 펼쳐졌으며 백성은 삶을 이어갔다. 지방 고유문화가 꽃을 피웠고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는 읍성을 찾아 우리 도시의 시원을 되짚어 보고, 각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음미해 보고자 한다. <기자말>
[이영천 기자]
산 아래로 흐르는 강이 유유하다. 양쪽에서 꼬리를 물고 쉼 없이 내달리는 자동차만 분주하다. 멀리 북한산과 관악산이 눈앞인 듯 다가드니, 한양을 도성 삼으며 이 산을 외사산(外四山)의 하나로 세운 이유를 능히 알 듯하다.
여기 한강을 '행호'라 불렀다.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의 '행호관어도(杏湖觀漁圖)' 속 풍광은 연초록 나뭇잎이 돋아나는 5월이다. 이때면 한강을 타고 오르내리는 웅어가 제철이다. 이 물고기가 진상되어 임금 수라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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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호관어도(杏湖觀漁圖)_겸재 정선 5월을 맞은 행주나루와 덕양산, 한강의 풍광이 평화롭기 그지 없다. 뒤 왼쪽에 삼각의 고봉산과 멀리 오른쪽에 북한산이 표현되어 있다. |
| ⓒ 고양시청 |
한강을 길 삼은 조운선이 있어, 강 하류의 나루터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마포나루에 버금갔다. 석빙고를 둘 정도로 물산과 장시가 번성했다. 행주나루를 중심으로 큰 장시가 늘 왁자지껄했다. 객주는 물론 기생집에 서원까지 갖춘 어엿한 도회풍의 항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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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양산과 행주나루 덕양산 정상에 행주대첩비 등이 보인다. 그 위쪽 한강 변 마을이 행주나루(행주외동)다. 멀리에서 행주대교와 일산대교가 한강을 건넌다. |
| ⓒ 고양시청 |
더구나 묵직한 시간의 무게가 이 낮은 토성을 깎고 깎아내려, 이제는 흔적만 어렴풋할 뿐이다. 그래도 무척 당당하다. 바람 앞 등불 같던 나라를 구해낸 결연함이 서려 있어서다.
벽제관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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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석현(숫돌고개) 벽제관 전투가 벌어졌던 숫돌고개. 벽제관(고양동)에서 삼송을 지나 한양으로 가는 길의 큰 고개였다. 옛 국도 1호선이 둥글게 휜 모습, 멀리 보이는 산이 북한산이다. |
| ⓒ 이영천 |
모든 왜군이 후퇴를 서두른다. 그때 냉철한 장수 둘이 있었다. 노련한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다. 반격만이 살길이라며 매복을 주장한다. 그 전술이 후퇴는 물론 지구전으로 가는 디딤돌이라며 분위기를 다잡는다.
반면 소소한 승리에 도취한 이여송은 파죽지세다. 한양 탈환을 서두른다. 호기롭게 벽제관을 지난다. 결국 벽제관 전투는 방심과 냉철함의 대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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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석현(1872년지방지도_고양_부분) 오른 쪽 붉은 선이 옛 '의주로'다. 위에서 부터 혜음령~읍치(벽제관)~망객현(신원리)~여석현~삼송리로 이어진다. 여석현에서 벽제관 전투가 벌어졌다. |
| ⓒ 서울대학교_규장각_한국학연구원 |
이여송과 힘을 합해 한양 탈환에 나서고자, 권율이 수원 독산성에서 북상했다. 벽제관 전투의 패배로 결국 권율만 행주산성에 갇히고 말았다.
행주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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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양산 한강에 기대어 오뚜기처럼 서 있는 덕양산. 한강이 동남~서북으로 흐르고, 창릉천이 동쪽을 막았다. 빠르게 달리는 도로에 갇힌 모양새다. |
| ⓒ 고양시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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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대동여지도_부분) 삼각산에서 왼쪽으로 뻗은 산줄기에 '노고산'이 보인다. 그 옆으로 검은 실선을 따라 여현_신원-고양(벽제)-혜음령이 이어진다. 한강 변으로 '행주' 그리고 멀리 '고봉'이 산 모양으로 표현되어 있다. |
| ⓒ 서울대학교_규장각_한국학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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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양산 정상 덕양산 정상의 모습이다. 행주대첩과 관련된 탑, 비석(비각), 기념관, 정자 등이 보인다. |
| ⓒ 고양시청 |
행주대첩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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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주대첩도 1593년 02월 12일(음)의 치열했던 전쟁 장면을 매우 실감나게 그린 그림이다. |
| ⓒ 이영천(행주대첩기념관_촬영) |
제2공격은 이시다 미쓰나리다. 그가 흉부에 관통상을 입자 모두 달아나 버린다. 고니시 부대보다 더 큰 희생을 치른다.
구로다 나가마사 부대가 제3공격대로, 성책을 부술 작정으로 조총 부대를 앞세워 공격에 나선다. 조선군의 비격진천뢰에 혼쭐이 나, 많은 사상자를 내며 후퇴한다. 3차례 공격에 왜군은 제1성책도 돌파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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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율 장군 행주산성 오르는 초입의 '대첩문'을 지나면 바로 보이는 권율 장군의 동상. 뒤쪽 부조엔 행주대첩 장면 몇이 표현되어 있다. |
| ⓒ 이영천 |
제6공격대 모리 모토야스는 산성 취약지인 제2성책 서북쪽에 맹공을 가해온다. 가까스로 막아낸다. 실전에 능한 승군이 지키고 있어서다.
제7공격대는 벽제관 전투의 주역인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다. 이들은 조금 달랐다. 서북쪽을 집중 공격, 일부를 뚫고 내성까지 침입해 온다. 승군이 동요하자 권율이 나선다. 전열을 재정비, 활을 쏘며 분전한다. 화살이 바닥을 보이자 투석전이 이어진다. 약점을 본 왜군의 공격이 집중된다. 위기일발이다. 조선군도 필사적이다. 부녀자들이 치마를 잘라 허리에 묶고 돌을 담아 나른다. 행주치마의 탄생이다.
때마침 화살을 가득 실은 배 2척이 행호에 나타난다. 충청 수사 정걸과 경기 수사 이빈이다. 김천일도 군사 수백을 거느려 후방을 지원하고, 전라도 조운선 40여 척이 양천 포구를 뒤덮는다. 하늘의 도움이다. 화살을 얻은 산성은 사기가 올라 적을 격퇴할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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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 덕양산 정상, 행주대첩비 옆에서 바라 본 한강과 주변. 멀리 관악산이 보인다. |
| ⓒ 이영천 |
깃털처럼 가벼운 작금 세태에, 묵직하게 다가드는 자그마한 덕양산의 무게다. 흔적마저 희미한 행주산성의 위용이다. 잔잔하고 푸르러 평화롭기 그지없는 느린 행호가 간직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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