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계엄군에 맞섰던 야학 교사들의 공부방이 돌아온다
[이돈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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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천동성당과 5.18사적지 표지석. 성당 앞에 남아있는 벽체가 옛 들불야학의 학당으로 쓰인 성당 교리실이었다. |
| ⓒ 이돈삼 |
"새벽까지 도청 옆 YWCA에 남아있다 살해되었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문장들을 읽은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되었다."
<빛과 실> 19쪽에 실려있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 일부분이다. 소설 쓰기를 거의 체념한 한강 작가에게 소설의 방향을 알게 해준 이가 박용준(1956∼1980)이다. 소설은 <소년이 온다>를 가리킨다. 고아로 자란 박용준은 김영철을 만나 시민운동을 하며, 들불야학 강학(교사, 가르치며 배우는 자)으로 활동했다. 1980년 5.18 땐 '투사회보' 제작에 참여했다. 같은 해 5월 27일 새벽 YWCA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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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 쓰기를 거의 체념한 한강 작가에게 소설의 방향을 알게 해준 박용준의 묘. 광주 5.18민주묘지에 있다. |
| ⓒ 이돈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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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기순 등 들불야학 강학들. 청소년 노동자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그들에게 다시 노동의 삶을 배운다는 뜻을 담아 교사를 '강학(講學)'이라 불렀다. |
| ⓒ 들불열사기념사업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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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군 대변인이면서 '들불 7열사'로 불리는 윤상원과 박기순의 묘. 광주 5.18민주묘지에 있다. |
| ⓒ 이돈삼 |
영어 강학 박관현(1958∼1982)은 1980년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도청 앞 '민족·민주화 대성회'를 이끌었다. 광주교도소에서 40여 일 단식투쟁을 하다 1982년 10월 숨을 거뒀다. 박관현과 옥중 단식을 함께 한 신영일(1958∼1988)은 역사 강학으로 전남민주청년운동협의회를 꾸렸다.
생활 강학 김영철(1948∼1998)은 박용준과 함께 살며 주민 운동을 했다. 항쟁지도부 기획실장으로 활동하고, 5월 27일 새벽 계엄군에 붙잡혔다. 갖은 폭력과 고문 후유증으로 18년 동안 정신질환을 앓았다. 문화 강학 박효선(1954∼1998)은 항쟁지도부 홍보부장을 맡았다. 극단 토박이를 창단해 <금희의 5월> <모란꽃>등을 무대에 올리며 민중 문화운동의 새 지평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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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들불야학으로 쓰인 광천동성당 교리실. 지금은 일부 벽체만 남기고 철거됐다. |
| ⓒ 들불열사기념사업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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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불야학에서 쓰던 옛 등사기. '들불의 기록, 생동의 공간으로'를 주제로 2023년 5월부터 8월까지 5.18민주화운동기록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 특별전 모습이다. |
| ⓒ 이돈삼 |
윤상원이 사글세로 살며 야학 공부방으로 쓴 광천시민아파트도 애틋하다. 시민아파트는 광주시가 판자촌을 허물고 1970년 지은 첫 연립형 아파트다. 9평 규모 3개 동에 180여 세대가 살았다. 화장실과 세탁실은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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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불야학으로 쓰인 성당 옛 교리실의 벽체. 건물은 철거되고 벽체 일부가 남겨져 옛 건물임을 증거하고 있다. |
| ⓒ 이돈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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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천시민아파트 전경. 시민아파트는 광주시가 피난민 판자촌을 허물고 1970년 지은 첫 연립형 아파트다. 9평 규모 3개 동에 180여 세대가 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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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 어둠 속에서 별은 빛나고/ 혹한을 지나 들꽃은 피어납니다/ 다만 지극히 낮고/ 뜨거운 열정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벗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타올라 영원한 들불 한 점, 밝은 별은/ 노동자와 민중의 가슴에 깃들어/ 모든 억압에 맞서 싸우는 이들에게 벗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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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자유공원에 있는 들불열사 기념탑. 들불야학 7열사의 얼굴이 캄캄한 밤에 길라잡이를 하는 북두칠성 모형을 따라 새겨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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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성광장 앞 도로 풍경. 예나 지금이나 차량 통행이 많은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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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광장은 도심과 상무대를 이어주는 도로에 있다. 중앙정보부와 국군광주병원, 505보안부대 등이 인근에 있어 계엄군한테도 중요했다.
1980년 5월 21일 아침, 시위대가 20사단 차량 14대를 빼앗았다. 차량에 탄 군인 28명은 돌려보냈다. 시위대는 아세아자동차 공장에서 장갑차와 군용트럭도 몰고 나왔다. 전날 밤 광주역 광장에서 공수부대의 발포 이후 시위가 항쟁으로 번진 결과였다.
계엄군이 광주 외곽 봉쇄에 들어가고, 도심에선 시민 자치공동체가 이뤄진 5월 22일 오후였다. 장갑차를 앞세우고 국군병원 쪽으로 가던 20사단 62연대가 시위대에 총격을 가했다. 계엄군과 시위대 사이 교전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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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성광장 공원에 세워져 있는 5.18사적지 표지석. 민주화 열기 드높았던 45년 전 그날의 모습을 떠올려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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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성광장 지하철역. 역사에 한강, 김대중 등의 얼굴이 기둥에 새겨져 있다. |
| ⓒ 이돈삼 |
시민군의 마지막 항쟁을 지켜본 시계탑이 신군부에 의해 한때 농성광장으로 옮겨졌다. 시계탑은 2015년 5·18민주광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시계탑에선 날마다 오후 5시 18분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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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성광장을 지키는 의병장 김태원 동상. 김태원 장군은 1907년 무등산 자락 무동촌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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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매일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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