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살은 불가능" 소리 들었지만 86세에도 그림 그리는 화가
[전사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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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환적인 풍경>, 2025. |
| ⓒ 전사랑 |
빛에 반사된 푸른 바다와 연결된 창. 안과 밖의 경계는 얇게 비치는 커튼 뿐이다. 이 작품은 린넨에 유화로 그린 작품이다. 작품에 다가가 자세히 보아야 화가의 붓 터치가 옅게 보인다. 현대 미술 작가에게는 쉽게 볼 수 없는 리얼리스트의 경지를 보여주는 앨리스 달튼 브라운(Alice Dalton Brown)의 2025년 최신작 <몽환적 풍경>(Ethereal)이다(더현대서울 Alt .1에서 오는 9월 20일까지). 놀랍게도 작가의 나이는 86세.
엄마이자 예술가, 그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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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장 안에 마련된 작가의 인터뷰 영상 |
| ⓒ 전사랑 |
전시장 안에 마련된 작가의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 팔십이 되면 자신의 지난 작업들과 인생을 돌아보며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도 아이 셋 기저귀 떼고 말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키워내고 '엄마'가 아닌 '나'를 인식하게 된 나이가 38세였다. 아이들을 낳기 전 받은 교육과 꿈이 38세의 나와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던 시절, 그 막막함이 떠올라 작품의 울림이 더 크게 다가왔다.
전시를 다니다 보다 보면 주변의 공기와 다르게 어떤 작품 혹은 작가가 말을 건넬 때가 있다. 그 울림은 가슴 가득 퍼져 존재의 한 부분을 건드린다. 이번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회고전에서 만난 작품들이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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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방에서>, 1965. 미완성작. |
| ⓒ 전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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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문 뒤에 숨은 나>, <신문을 사이에 둔 우리> 1965. |
| ⓒ 전사랑 |
한창 육아와 예술을 병행하며 그린 작품들은 미완성이거나, 아이들 미술도구인 파스텔로 북북 칠해져 그 현장성을 생생하게 전해 주고 있었다. 아마도 그림을 그리는 동안 세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끝없이 방해 받고 침범 당했을 거다. 그럼에도 그녀는 작업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공간, 그리고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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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디언 힐 도로>, 1976. |
| ⓒ 전사랑 |
멀리서 보면 흡사 사진과 같지만, 달튼 브라운은 '포토 리얼리즘'(photo realism)과는 경계를 둔다. 그는 코넬 대학교 존슨 박물관에서 열린 전시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이 "차갑고 비개입적인 거리감"을 갖는 포토 리얼리즘이 아니라, 사물과 공간에 "친밀하고 개인적인 관계"(intimate and personal relationship)를 드러내고 있다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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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살이 비치는 분홍색 집>, 1993. |
| ⓒ 전사랑 |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인간의 생각, 기억, 꿈을 통합하는 가장 위대한 힘 중 하나이고, 이 통합의 결속 원리는 바로 몽상(daydream)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위대하고 단순한 이미지는 하나의 심리적 상태를 드러냅니다. 집은 심리적 상태이며, 외관만으로도 친밀함을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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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나무가 드리운 안뜰>, 2019. |
| ⓒ 전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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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피톨리니 박물관의 발루스트레이드 난간>, 2017. |
| ⓒ 전사랑 |
정서와 감각의 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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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빛 속의 여인>, 1961. 2023년 서울시립미술관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시 당시 사진 |
| ⓒ 전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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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울가의 작은 현관>, <고요한 개울>, 2024 |
| ⓒ 전사랑 |
"그림이 어떤 인물을 묘사할 때, 우리가 그 인물에 공감하거나 자신을 투영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그림은 결국 '그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장소와도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고, 저는 제 작품 속을 보는 사람(viewer) 그 공간 속 인물이 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둡니다."
말하자면 관람객이 공간 속 인물이 될 수 있도록 작품의 공간 속으로 한 사람을 초대하고 싶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그의 그림 앞에 서면 우리는 그 공간으로 들어가 그 공간이 주는 감각을 느끼게 된다. 특히 아파트에서 획일화 된 공간에 사는 도시인들은 바슐라르가 말한 장소성을 잃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회화로 재현된 마음 속 그 장소와 정서적으로 교감 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브라운의 장소 감각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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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라지는 순간>, 2024. |
| ⓒ 전사랑 |
최근 작품들은 공간 안에 비현실적이지만 누구나 한 번 쯤은 꿈꿔 봤을 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어 그는 안도 밖도 아닌 "경계적 공간(liminal space)" 즉 집의 안과 그 너머로 이동하는 현실과 비현실 공간을 통해, 우리 마음속 장소를 재현한다. 맑고 푸른 바다가 보이는, 빛과 바다, 바람이 들어오는 실내 공간, 안과 밖의 경계는 살랑이는 커튼 뿐이다. 원숙한 리얼리즘 화가답게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도 이질감 없이 재현해 냈다. 마치 바다의 신선함, 물결이 출렁이는 소리까지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하다.
달튼 작품세계의 백미는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창이다. 주방의 수납장을 바라보고 그림자를 드리우던 주부는 어디로 갔을까. 그의 초기작과 비교하면 회화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뜻 깊고 놀라운 도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조용히 말하는 듯하다. 그가 그려낸 끝없이 이어진 바다처럼, 푸르고 밝은 하늘처럼, 당신도 당신의 바다와 하늘을 그려낼 수 있다고. 늦은 때는 없다고 말이다. 그는 이제 관조하며 평온한 물을 바라본다. 혼자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관객을 그 따스하고 안전하지만, 넓게 펼쳐진 장소로 초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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