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가 안 맺힌다, 15년 자두 농사 했는데 이런 적은 처음"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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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석봉·이상희씨 부부의 과수원은 자두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나무에 이파리만 무성했다. |
| ⓒ 월간 옥이네 |
많은 이에게 여름의 맛을 전하는 자두이지만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하다. '기후재난'으로 매년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폭염으로 인한 병해충 문제는 물론이고 길고 습한 장마까지 더해져 지난해엔 수확량이 70%가량 줄었다. 어려움의 연속이지만 그 속에서도 살아남은 자두에 감사하며 수확을 마친 지난해다.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3월 동해로 꽃이 죽으면서 열매가 맺히지 않는 것. 충북 옥천군 청산면 인정리에서 자두 농사를 하는 안석봉(72)·이상희(72)씨 부부는 "먹거리를 위해 15년 동안 땀 흘렸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말한다. 출하를 앞두고 한창 바빠야 할 시기, 빈 가지를 보며 막막함을 토로하는 두 사람이다.
6월 10일 안석봉·이상희 씨 부부를 찾았다. 부부의 과수원은 자두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나무에 이파리만 무성했다. 농민에게, 자두나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두 사람에게 들어봤다.
성실함으로 알린 자두의 맛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서울로 떠난 두 사람은 24년 전 안석봉씨의 고향인 청산면 인정리로 돌아왔다. 당시 나이 48세. 젊은 나이에 더해, 서울로 가기 전까지의 경험을 살려 함께 농사를 시작했다. 자두 농사를 시작한 건 그로부터 9년 뒤. 과수 농사를 고민하던 부부는 포도·복숭아처럼 종이 포장 작업이 필요 없는 자두를 선택했다. 과수 농사를 하는 농민에게 조언을 받아 천 평 남짓한 땅에 자두나무 200주를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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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년 6월 20일 수확 당시 모습 (사진제공 : 이상희씨) |
| ⓒ 월간 옥이네 |
"10월 말부터 거름을 주고 꽃 피는 3월까지 전지(가지치기)를 해요. 그리고 3월 초가 되면 제초와 병충해 예방을 위해 소독하죠." (안석봉씨)
휴식 없는 농사지만 탐스럽게 잘 자라는 자두 덕분에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새순이 오르고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가지에서 활짝 핀 꽃이 열매가 되기까지, 활기 넘치는 나무를 보고 있으면 없던 힘도 생기곤 했다.
"자두(농사)가 가장 잘 된 시기가 나무 심고 4년 됐을 때였는데, 그때만 해도 날씨가 지금 같지 않았어요. 장마나 태풍 소식에 긴장은 했지만 생산량이 절반으로 줄거나 하는 극심한 피해는 없었어요. 우리만 잘하면 맛있는 자두가 자라니까 정말 신나게 일했죠." (이상희씨)
영농일지에 매일 자두나무 상태를 기록하던 두 사람. 그 모습을 본 딸이 블로그에 내용을 올리면 어떻겠냐 제안했고, 자연스레 온라인 판매로 이어졌다. 전국 곳곳으로 두 사람의 자두가 퍼져나갔다. 없어서 못 팔 정도였던 자두가 줄기 시작한 것은 2023년부터. 후무사자두 수확을 앞두고 시작된 장마는 판매 불가 소식을 전할 만큼의 피해로 이어졌다. 그때만 해도 하늘의 뜻이겠거니 생각했지만 피해는 점점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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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년 가까이 자두 농사를 했지만 열매가 안 맺힌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
| ⓒ 월간 옥이네 |
예년 같으면 수확할 준비로 바쁠 손들이 텅 빈 가지에 멈췄다. 지난 11월부터 준비해온 농사였건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 두 사람은 망연자실이다.
"3월에 과수원 가득 만개한 꽃을 보며 올해 농사 잘되겠다고 기뻐했죠. 그런데 3월 말에 영하로 떨어지더니 4월엔 눈까지 와서 동해를 입었어요. 꽃이 다 죽은 거죠." (안석봉씨)
지난 3월 22~27일 낮 최고 기온은 26도로 봄철 고온현상이 이어지더니, 3월 28일부터 시작된 비에 기온은 -4도까지 뚝 떨어졌다. 4월 중반에는 3~7mm의 눈이 내리기도 했다. 때아닌 더위와 추위가 번갈아 오면서 그 피해는 착과 불량 문제로 이어졌다. 6월이면 90% 이상의 착과율을 보여야 하지만 나무엔 그 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드물게 열매가 맺혔다. 그마저도 병충해로 폐기해야 하는 상황. 이상희씨는 올해 착과율이 0%와 다름없다고 말한다.
"5kg 상자 기준으로 적게는 1000개, 많게는 1500개까지 나와요. 원래라면 다음 주부터 수확을 시작해야 하는데 자두가 하나도 없어요. 그나마 작게 맺힌 것도 얼마나 클지 모르겠고... 올해는 자두를 못 팔 것 같아요." (이상희씨)
급변하는 날씨에 따른 피해는 최근 몇 년 사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첫 수확을 앞두고 시작된 장마와 이어지는 태풍으로 자두가 무르고 낙과해 70% 이상 폐기했다. 온라인으로 받은 선주문 건은 전부 환불 조치해야만 했다.
"농사는 늘 어렵지만 비 피해가 컸던 지난해 제일 힘들었어요. 올해는 좀 나을 줄 알았는데 더 심할 줄이야... 15년 가까이 자두 농사를 했지만 열매가 안 맺힌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이상희씨)
이상저온으로 피해 입은 농가가 늘어나면서 지난 5월 충북 옥천군농업기술센터 기술지원과는 표본조사에 나섰다. 6개 면 지역(군서·동이·이원·안내·청산·청성) 조사 결과 자두나무 착과율은 50%로 나타났고 청성·청산면은 20%까지 떨어지면서 피해를 가장 심하게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평년이라면 착과율 90% 이상을 보여야 하지만 과수원 열매 찾기가 심각하게 어려워진 셈이다.
수확할 자두가 없어 생계가 막막한 부부는 앙상해져 가는 나무 상태도 걱정이다. 3년째 이어지는 냉해와 긴 장마, 폭염이 겹치면서 나무가 버티지 못하고 있는 것. 열매는 물론 나뭇잎마저 자라지 못하는 나무를 보고 있으면 농사를 포기해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병해충으로 남은 열매도 폐기해야 하고 이파리도 구멍이 숭숭 뚫려 상태가 안 좋아요. 지난해에는 농작물재해보험으로 일부 보상을 받았지만 충분하지 않았죠. 인력, 자재, 소독약 값은 날로 오르고 상황은 더 안 좋아지는데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이 없어요. 부족하지만 보험이라도 있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안석봉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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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석봉·이상희씨 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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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가 최고라더니만 이제 먹거리가 제일 힘든 것 같아요."
흘린 땀만큼 정직하게 자란 자두에 자부심을 느끼며 농사해왔건만 해가 지날수록 기후재난도, 몸도 말썽이다. 한숨 푹푹 나오는, 좋을 것 하나 없는 상황에서도 두 사람은 쉽게 농사를 포기할 수도 없다.
"노후 대책도 해야 하고 빚도 갚아야 하니까... 요즘은 어떻게 먹고 살 건가 그 걱정뿐이에요. 농사가 안된다고 땅을 놀릴 수도 없으니 어떻게든 하는 거예요." (안석봉씨)
두 사람은 열매 없는 나무에 관수를 중단했다. 농사가 잘될 줄 알았던 3월 미리 준비한 관수 시설이지만 관리 비용이라도 줄여보고자 결정한 일이다. 안석봉씨는 농사의 즐거움을 잃어갈 때마다 옛 생각이 난다고 했다.
"사람도 많고 장도 크게 열리던 청산이에요. 땅이 좋아 청산에서 나는 건 맛이 좋다고 다른 지역에서도 사 가곤 했죠.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였는데, 이제는 농사하는 것도 파는 것도 어려우니 즐거움을 느낄 새가 없네요. 사람이 늘어나면 조금 나아질까요? 농민들이 즐겁게 일 할 수 있도록 많은 이가 농촌에 관심 가져주면 좋겠어요."
옥천군농업기술센터 "조사 마무리되는 대로 복구계획 수립"
옥천군농업기술센터는 6월부터 과수 피해 현황을 조사 중이다. 충청북도와 현장을 교차로 검증해 이상기후 피해를 농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옥천군농업기술센터 농업정책과 김동진 주무관은 "호우 피해까지 조사하면 3개월가량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피해 현황에 따른 복구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옥천청정자두연합회 홍완표 회장은 "계속되는 피해에 농가 사정이 너무 어렵다. 이런 상황이라면 추희 농사는 접고 조생종으로 품종갱신이 필요한데 묘목을 심는 것도 비용이 만만치 않다"며 지금 농가에 가장 필요한 것으로 이상기후 대응 설비 지원을 꼽았다.
옥천군의 피해조사에 따른 복구 계획에 대해서는 "500여 개가 넘는 포도, 복숭아 농가에 비해 자두 농가는 60여 개밖에 되지 않아 과수 피해가 있을 때마다 보상책을 찾기도 어렵다"며 "자두 농가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월간옥이네 통권 97호(2025년 7월호)
글·사진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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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은 어떻게 먹고 살 건가 그 걱정뿐이에요. 농사가 안된다고 땅을 놀릴 수도 없으니 어떻게든 하는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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