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매료돼 이것까지 해봤습니다 [윤한샘의 맥주실록]
[윤한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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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오리지널사운드트랙 앨범 |
| ⓒ 넷플릭스 |
나 같이 개발도상국에서 태어난 중년 아저씨는 이런 현상을 처음 접하면 냉소적으로 변하기 십상이다.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같은 레토릭에 짜증 난 세대들은 괜히 국내에서만 떠드는 호들갑 아닐까, 의심 먼저 한다.
다행스럽게도 케데헌의 열풍이 이런 의심을 박살내고 있다. 요즘은 우리 세대조차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를 입에 올리며 KPOP을 아는 체하면 망신당하기 일쑤다. 적어도 스트레이 키즈나 더 로즈 정도는 논해야, K컬처 담론에 낄 수 있다.
얼마 전 맥주캠핑에 가서 사람들과 케데헌을 보며 모두 파안대소를 했다. 아니, 이렇게 한국적이라고? 심슨에서 묘사한 한국 현실에 키득거린 게 불과 얼마 전이었는데. 한국의 문화, 더구나 정확히 고증한 전통문화를 미학적으로 다룬 애니메이션이라, 그 감흥이 남 달랐다.
오해하지 마시라. 맥주실록에서 케데헌의 성공 요인이나 파급 효과를 다루려고 하는 건 아니다. 나는 문화 평론가도 아닐뿐더러, 이미 전문가들의 분석은 인터넷에 차고 넘친다. 다만, 플레이리스트 속에 있는 케데헌 KPOP들을 듣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직업병이 다시 도졌을 뿐이다.
맞다. 그분이 또 오셨다. 음악에 취해 있으면 느닷없이 나타나는 맥주의 신. 케데헌 OST에 있는 네 곡의 음악을 듣자니, 그분이 네 개의 맥주를 점지해 주셨다. 이름하야, 케데헌 맥주 페어링,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할 수 없다. 원래 공감각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영역이니까. 그래도 이왕이면 맥주의 신을 믿고 음악이 흘러나올 때, 맥주를 꺼내 마셔보면 어떨까? 케데헌을 보는 작은 재미가 더해질 수도 있으니.
How it's done & 필스너 우르켈
초반 비행기에서 펼쳐지는 악령들과의 전투. 헌트릭스는 '하우 잇츠 던 How it's done'을 합창하며 가볍게 도깨비들을 물리치고 공연장에 도착한다. 'How it's done'은, '바로 이렇게 하는 거지', '바로 그게 정답이지' 같은 뜻이다. 어려운 일을 가뿐히 해내는 숙련된 프로들의 모습, 보는 우리는 마음을 졸이지만 정작 주인공은 별일 아니라는 듯 넘치는 자신감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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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w it's done 과 어울리는 필스너 우르켈 |
| ⓒ 윤한샘 |
'How it's done'을 부르는 헌트릭스는 자신감으로 꽉 차있다. 위기 속에서도 언제나 프로답다. 악령들이 망가뜨린 비행기에서도 라면을 먹고 낙하산으로 내려오며 도깨비를 처치하는 장면은 수천 개의 라거 브랜드가 있지만 우리가 여전히 최고라는 필스너 우르켈과 정확하게 오버랩된다.
그리고 다 제쳐놓고 일단 영화 초반에는, 4.4% 밖에 안 되는 맥주로 시작하는 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Golden & 듀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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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한 장면. |
| ⓒ 넷플릭스 |
'Golden'은 따뜻한 햇살 아래 반짝이는 황금빛 물결을 연상시킨다. 그 물결은 활기찬 에너지로 변해 온몸을 휘감고 하늘 위로 날아간다. 마치 활발한 거품처럼. 어떤 맥주가 어울릴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황금빛 라거를 떠올리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라거는 이 곡에 비해 강렬함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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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olden 과 어울리는 듀벨 |
| ⓒ 윤한샘 |
듀벨은 악마를 의미한다. 맥주가 부드럽고 음용성이 좋아 높은 알코올 도수를 잊을 수 있어 붙은 이름이다. 헌트릭스가 악마 맥주, 듀벨을 마시며 악령을 잡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상상 해보라. 물론 이렇게 되면 바로 '19금'이 붙겠지만.
Takedown & 시에라 네바다 토르피도 IPA
'테이크다운 Takedown'은 헌트릭스 곡 중 가장 강렬하고 전투적인 곡이다. 루미, 미라, 조이가 각각 자신의 무기인 사인검, 곡도, 신칼을 휘두르며 악령을 잡는 씬은 시원하고 짜릿하다. 특히, 노래와 벌어지는 지하철(나는 이 지하철이 영종대교 아래를 지나가는 공항철도라고 확신한다.) 전투씬은 박진감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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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kedown 과 어울리는 토르피도 IPA |
| ⓒ 윤한샘 |
'Takedown'을 들으며 시에라 네바다 토르피도 IPA를 마시면 곡 안에 있는 비트가 입 속에 있는 홉 향과 함께 폭발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주위에 악령이 있다면 조심해야 한다. 노래와 맥주에 있는 강력한 에너지가 순식간에 너희들을 가루로 만들어 버릴 수 있으니.
Your idol & 스톤 에로건트 바스타드 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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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한 장면. |
| ⓒ 넷플릭스 |
이 강렬한 검붉음, 음울한 분위기를 보자마자 떠오른 맥주가 있었다. 스톤 브루잉의 애로건트 바스타드 에일. 이 맥주는 아메리칸 스트롱 에일로 알코올 도수는 7.2%에 달한다. 검붉은 라벨에는 무섭게 찡그리고 있는 가고일이 있다. 가고일은 악마처럼 보이지만 사실 악령을 퇴치하는 존재다. 스톤은 나쁜 맥주를 물리치는 수호자라는 의미로 가고일을 자신의 로고에 사용하고 있다.
가고일의 뜻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 맥주가 'Your idol'과 찰떡궁합이라는 의견에는 변함이 없다. 애로건트 바스타드 에일을 처음 마시는 사람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강력한 쓴맛에 혀는 마비되고 묵직한 바디감에 정신이 몽롱해질 테니. 그러나 맥주를 마실수록 빠져드는 묘한 매력은 도발적이고 매혹적인 사자보이스의 'Your idol'과 어울린다. 헌트릭스가 없더라도 이 맥주가 있다면 귀마의 불꽃을 두려워하지 말자. 가고일이 옆에서 당신을 지켜주고 있을 테니.
케데헌과 맥주가 이어지는 페어링에 다시 한번 맥주의 신에게 감사드린다. 그가 아니었으면 이 맛있는 마법을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오늘 저녁에는 KPOP 데몬 헌터스를 다시 정주행 해야겠다. 맥주의 신이 점지해 준 맥주를 옆에 끼고. 혹시 아는가, 맥주의 신이 더피와 서씨의 모습으로 나타나실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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