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참경루에 담긴 청나라를 치겠다는 옹골찬 야심
종일 비가 오락가락하던 7월 중순의 어느 날 강화동 용진진을 찾아갔다. 고래를 베겠다는 염원을 담은 '참경루'가 우뚝하게 서 있었다. 좌강돈대 성벽 위에 올라서서 바다를 바라봤다. <기자말>
[이승숙 기자]
한반도 앞 바다에도 고래가 살았을까? 답은 '살았다'이다. 최근 유네스코 자연 유산에 등재된 울산 반구천 암각화에는 고래를 새긴 그림도 있다. 우리 바다에 고래가 살았다는 증거다.
반구천 암각화는 지금으로부터 6000년 전 그림이다. 암벽에 새겨 놓은 그림을 통해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데 특히 고래를 그린 그림이 인상적이다. 어미 고래와 새끼 고래, 잠수하는 고래, 주름이 사실적으로 표현된 큰 혹등고래 등 모두 57점의 고래 그림이 있다. 그중에 작살을 맞은 고래 그림도 있다. 말하자면 당시에 이미 고래사냥을 했다는 뜻이다.
반구천 암각화 고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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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화 외성의 문루인 '참경루'. |
| ⓒ 이승숙 |
광해군에서 숙종 때까지 동아시아의 정세는 불안했다. 이 시기는 명말청초(明末淸初)의 시기로 동북아시아의 전환기이자 격변기였다.
광해군 때 모문룡이라는 명나라의 하급 장교가 후금(나중에 청나라)과 교전을 하다 패하자 조선으로 넘어왔다. 그는 평안북도 철산군에 진을 치고는 만주족에 쫓겨난 한족까지 불러들였다. 후금과의 관계가 악화될까 염려한 광해군은 모문룡의 일당을 철산군의 앞바다에 있는 가도(椵島)로 거처를 옮기게 했다. 가도는 압록강 하구와 가까워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압록강 근처 '가도'에 주둔한 명나라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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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화 외성의 '참경루' |
| ⓒ 이승숙 |
모문룡의 군대는 후금을 자극했고 그 피해는 조선이 입었다. 후금은 명나라를 공격하기 전에 배후인 조선을 먼저 쳐들어왔다. 정묘호란(1627, 인조5년)이다. 그러나 정작 모문룡의 군대는 이 전쟁을 강 건너 불 보듯 했다. 후금과 싸우기는 커녕 오히려 내통하며 조선에 대한 정보를 흘렸다. 섬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는 모문룡의 군대를 보고 조선은 그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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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강돈대'에서 바라본 '참경루' |
| ⓒ 이승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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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경루'의 홍예문 |
| ⓒ 이승숙 |
강화 외성은 동쪽 바닷가를 따라 축조 되었다. 서해에서 강화로 들어오는 초입인 초지진에서 한강으로 들어서는 길목인 월곶리 적북돈대까지, 총 길이 23km인 외성에는 6개의 문루가 있었다. 조해루(朝海樓), 복파루(伏波樓), 진해루(鎭海樓), 참경루(斬鯨樓), 공조루(控潮樓), 안해루(按海樓)가 그것이다. 문루 이름에는 모두 '바다(海)'의 의미가 들어 있다. 그중 '참경루'는 고래를 잡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참경루'라 지은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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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강돈대는 지름 35m, 둘레 102m, 잔존 성벽의 높이는 3.5m에 달한다. |
| ⓒ 이승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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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강돈대의 위용. |
| ⓒ 이승숙 |
병자호란 이후 강화도로 들어오는 관문인 '갑곶'의 중요성을 인지한 효종은 갑곶 인근에 여러 개의 군영을 설치했다. '용진진'도 그중 하나다. 용진진은 인천시 기념물 제42호로 효종 7년(1656)에 설치돼 포좌 4개소, 총좌 26개소를 갖췄다. 용진진은 좌강돈대, 가리산돈대, 용당돈대를 관할했다. 돈대에는 돈군이 숙직했는데, 모두 합해 18명이었다. 각 돈대마다 약 6명의 군사가 숙직했을 것이다.
용진진에 바짝 붙어 있는 좌강돈대는 숙종 5년(1679)에 축조 되었다. 이 돈대는 수로를 통해 육지로 침입하려는 적을 막기 위해 만든 듯 수로 옆의 낮은 언덕에 위치해 있다. 방치되어 있던 이 돈대는 1999년 육군박물관의 조사를 거쳐 2000년 복원되었다. 발굴 조사를 할 때 아래쪽 1~2단의 기단석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좌강돈대와 용당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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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종 5년(1679)에 축조된 '용당돈대' |
| ⓒ 이승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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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당돈대 안의 건물 터 |
| ⓒ 이승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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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강돈대'에서 바라본 강화와 김포 사이의 바다. |
| ⓒ 이승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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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당돈대'에서 바라본 강화와 김포 사이의 바다. |
| ⓒ 이승숙 |
모문룡의 군대는 조선에게는 '계륵'과도 같았다. 그들에게 매달 쌀 1만석을 지원했으니, 말이 좋아 지원이지 강탈당한 것이나 매한가지일 듯하다. 명나라를 등에 업은 그들의 요구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응해야만 했을 약소국 조선의 설움이 느껴진다.
지금도 그와 비슷한 일을 우리나라는 감당하고 있다. 지난해 2024년 10월한국과 미국 정부가 2026~2030년 적용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타결했다. 한국이 2026년 부담할 주한미군 방위비는 전년 대비 8.3% 늘어난 1조5192억원이다. 그 뒤로는 매년 소비자물가지수 증가율에 연동해 늘어난다.
정부는 "한·미가 상호 수용가능한 합리적 결과를 도출했다"고 자평했지만 우리나라 재정에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400년 전 평안도 가도에 주둔했던 모문룡의 군대와 그들에게 보낸 지원금이 연상되는 뉴스였다.
덧붙이는 글 | 돈대(墩臺)는 주변을 잘 관측할 수 있도록 평지보다 높은 평평한 땅에 설치한 소규모 군사 기지를 말한다.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접경지역 또는 해안 지역에 주로 만들었다. 조선 숙종 5년(1679)에 48개의 돈대를 강화 해안에 쌓았다. 그후 6개의 돈대를 더 쌓아서, 모두 54개의 돈대가 강화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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