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초소에서 뒤집어진 계급... 군대가 영화가 될 수 있는 이유
[김성호 기자]
군대라는 공간이 그렇다. 일부 예외를 제하고 남성 모두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여해 징집하도록 하는 선택이, 그 많은 장병이 좁은 생활관에 수용돼 근무하는 환경이, 참모총장부터 말단 훈련병까지 좌르륵 줄 세울 수 있는 계급체계까지가 하나하나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이다. 기실 외부의 침략에 대항해 유사시 사람을 죽일 수 있어야 하는 군대가 인간다운 조직이기를 바라는 건 지나친 기대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장교와 부사관, 사병에 이르는 삼분할 된 계급체계, 그 사이 다시 철저히 짜인 위계질서는 유형의 사건으로 작동하지 않더라도 존재 자체로 폭력적이다. 통제하고 감시하는 자가 있고, 통제받고 감시당하는 이가 있다. 위력과 권력이 작용하며 복종과 굴종 또한 존재한다. 특히나 직업을 선택하지 않고 징집당한 일반 사병의 경우, 애국이며 나라에 의무를 다한다는 마음 외엔 제 삶을 긍정하고 정을 붙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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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 초소 스틸컷 |
|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모든 문제가 계급사회의 가장 위쪽에서 빚어지는 건 아니다. 삼분할된 계급체계는 장교와 부사관, 병사에게 서로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림자 영역을 만들어두고 있는 때문이다. 때로는 병사의 삶에서 장교며 부사관은 알 수 없는 진실이 존재하고, 또 때로는 부사관과 장교에게 그러하다. 이를테면 병사가 초소에서 정작 경계해야 할 전방이 아닌 후방만을 경계한다거나, 아예 업무를 내팽개쳐 놓고 돌아가며 숙면을 취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도 이러한 문제라고 하겠다.
초소 경계근무 중에 후방만을 살펴본 경험, 또 아예 경계는 서지 않고 잠을 퍼질러 잔 기억, 아예 근무지를 이탈해 민가에까지 나간다거나 술을 밀반입해 마시는 등의 일탈까지 초소에서 경계근무 중에 있는 비위행위도 여럿이다. 이를 자주 겪어본 병사라면, 또 그가 창작을 업으로 삼는 작가거나 감독이라면 이를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어보아야겠단 생각이 드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나 또한 그런 이 중 하나거니와, 이제껏 비슷한 이들을 적잖이 많나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씨네만세에서 소개할 <#1-1초소> 또한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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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초소 스틸컷 |
|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영화는 간명하다. 야간 경계를 서는 초병들이 있다. 선후임 2인1조 경계근무는 군의 오랜 규칙이다. 여기에도 선임인 김선엽 병장이 후임인 신병 박지훈과 함께 조를 이뤘다. 언제나처럼 평온할 줄 알았던 이들의 근무가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번지는 건 별다를 것 없는 사건 때문이다. 부사관 박장현이 초소로 순찰을 오면서다. 초병의 일탈을 방지하고 군 기강을 확립학 위한 목적으로 간부가 경계 중 순찰을 도는 것이 기본적인 업무라 하겠으나, 현실 가운데 이를 해태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초소에 긴장감이 감도는 것도 무리한 일은 아닌 것이다.
그로부터 영화는 간부와 선임초병 간에 감도는 긴장감 있는 대화로 흘러간다. 갑작스레 떨어진 순찰 돌라는 명령에 날이 선 간부와 그에게 책 잡히는 일 없이 돌려보내려는 병사 사이의 대화가 마음을 졸이게 한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 누구라도 알 만한 상황으로, 영화는 별다른 사건 없이도 상당한 시간 동안 긴장을 유지한다. 군대 내 계급과 초소 경계근무 중이란 상황, 여기에 더해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하는 말년병장의 입장이 주는 긴장은 그것만으로도 보는 이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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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 초소 스틸컷 |
|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박준혁 감독은 중반부에 이르러 작품을 다시 한 번 처음부터 보이기를 시도한다. 앞서 펼쳐진 이야기는 수면 위의 이야기일 뿐, 그 아래를 관객 앞에 내보이려 한다. 그를 보고나면 관객은 어째서 앞의 초병들이 그토록 간부를 상대하길 꺼려했는지를 납득할 수 있게 된다. 반복되는 이야기 가운데는 앞서 미처 담지 못한 진상, 간부가 초소에 오기 전의 이야기가 그대로 담겨 있는 때문이다.
말하자면 선임병은 후임에게 민통선 밖 편의점에 가서 술과 안주를 사오라고 요구했고, 말단 후임은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또 그걸 사오는 과정에서 출입문을 열어두는 우를 범했고, 이를 본 민간인이 몰래 그를 따라들어와 무리한 요구를 했다는 내용이다. 제정신이라면 하지 않을 일을 실제로 감행하는 이의 존재감이란 대단한 것이어서, 영화는 총 한 발도 쏘지 않는 가운데서 상당한 긴장을 자아내기에 이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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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 |
|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박준혁 감독은 영화 상영 뒤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군대에서 실제로 초소근무를 했었는데, 전방을 감시하라고는 하지만 아무도 안 와서 실제로는 다 잔다"며 "그걸 꼭 영화로 만들어야지 했었는데 이렇게 만들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장편으로 만들어야겠다고 하고 있었는데 <#1-1 초소>는 먼저 만든 단편"이라며 "경험을 살려 만들었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박준혁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단편 <죽고 싶은 학생>으로 주목받은 바 있는 젊은 영화인이다. 그가 자신의 경험을 한껏 살려 만든 이 작품에도 눈여겨 볼 만한 지점이 여럿이어서 나는 과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고 여긴다.
물론 모두가 만족스런 것은 아니다. 감독의 말 그대로 장편으로 기획한 걸 단편으로 만들면서 벌이고 봉합하는 과정이 다소 급박하고 서투르게 된 듯한 인상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영화가 '군대 내 위계와 폭력을 들추고, 그것을 전복한다'는 분명한 목표를 의도하고 얼마간 달성했다는 성과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비슷한 경험을 한 이가 적잖을 것임에도 오로지 소수의 사람만이 그를 실제 창작으로 이어가는 법이다. 박준혁 감독은 그를 이뤄낸 소수의 창작자다. 나는 그를 높이 산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영화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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