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로드 50여 곳 중 딱 한 곳만 꼽으라면 바로 여기
[김종훈 기자]
지난 22일, <항일로드 2000km> 이름의 새 책이 나왔습니다. 소회를 묻는 질문에 '더 잘 쓰지 못했기에 아쉬움은 남지만 더 잘 쓸 수 없기에 후회는 없다'고 했습니다. 정말로 마음 다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다섯 번째 책인데, 처음으로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서 북펀딩이란 것도 해봤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선전했고, 덕분에 출간과 동시에 알라딘에서 종합베스트셀러 3위(역사·여행 분야 1위)라는, 다소 믿기 어려운 결과도 마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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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일로드 2000㎞ - 광복 80주년, 일본에서 다시 만난 독립투사들, 김종훈 (지은이) |
| ⓒ 필로소픽 |
물론 '항일'이라는 이름이 2025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일부지만 제목만 보고 '이건 일본을 혐오하기 위해 만든 책 아니냐'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오히려 반대입니다. 일본땅으로 지금 떠나라고, 그곳에 가봤으면 좋겠다고 끊임없이 강조하고, 또 설득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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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국 당시 윤봉길 의사 |
| ⓒ 윤봉길의사기념관 |
그때도 그랬지만 광복 80주년을 맞은 2025년 현재도 술 한 잔 올릴 수 없는 금단의 땅입니다. 윤 의사가 순국했을 당시에는 일본군 제9사단이, 2025년 현재는 일본 육군 자위대가 주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위대가 해당 지역을 사격장으로 활용하고 있어 허가받은 인원을 제외하고는 한국인, 일본인 가릴 것 없이 접근이 제한됩니다(단, 부대 앞 개활지를 주말에 한해 민간에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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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가 자위대원들 만난 곳. |
| ⓒ 김종훈 |
불과 2분 거리, 윤 의사의 순국지를 눈앞에 둔 채였습니다. 이후로 7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윤 의사의 순국 현장을 마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위도 36° 31′ 30.11″, 경도 136° 40′ 17.9″의 땅, 책을 쓴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곳에서 천하영웅 윤봉길을 가슴에 새기며 여럿이 함께 술 한 잔 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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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봉길 의사가 투척한 폭탄으로 치명상을 입고 입원하여 치료 중 사망한 시라카와 요시노리 생전 모습. |
| ⓒ 윤봉길의사기념관 |
이러한 윤 의사의 마지막 모습은 2002년 일본 방위청(현재의 방위성) 방위연구소 도서관에서 보관 중인 <만밀대일기満密大日記>에 포함된 문서 <윤봉길 형 집행 건>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매장은 장례식을 치르기 이전에 실시하고 묘지의 위치는 극비리에 은폐할 것. 또한 매장지 등이 훼손되거나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중략) 특히 조선인과 사상적으로 편향된 인물들, 또한 불령분자의 동향에 대해 감시를 게을리하지 말 것." - 만밀대일기 중
윤봉길 의사의 사형과 매장이 극도의 비밀 속에 이뤄졌다는 점은, 일제가 그의 죽음이 조선인 사회에 미칠 파장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보여줍니다. 일제는 왜 윤 의사를 의거가 일어난 상하이도, 생애 마지막 한 달을 보낸 오사카도 아닌, 이곳 가나자와까지 이송해 사형을 집행했을까? 비열한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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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9사단 우에다 겐기치 중장. 윤 의사 의거로 다리를 잃었다. |
| ⓒ 윤봉길의사기념관 |
왜 그랬을까? 1910년 3월 26일 안중근 장군의 사형을 통해 우리는 이미 경험했습니다. 당시 일제는 안 의사의 사형집행을 이토 히로부미 사망 시간에 맞춰 집행했습니다. 이를 정확히 22년 9개월이 흐른 윤봉길의 사형집행 때도 적용한 겁니다.
밟히고 또 밟힌 14년의 세월
일제는 윤봉길 의사의 유해를 노다산 공동묘지에 암매장했습니다. 그런데 암매장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가 존재했습니다. 당시 일제가 윤 의사를 암매장한 곳은, 쓰레기 처리장으로 가는 좁은 통로였습니다. 무슨 의미일까? 1946년에 윤 의사 유해가 발굴되기까지 무려 14년 동안, 공동묘지를 찾는 인원들이 윤 의사가 묻힌 땅 위를 밟고 지나다니도록 한 겁니다. 일제는 윤 의사가 죽은 뒤에도 모욕하고 또 모욕했습니다.
그럼 왜 이렇게까지 했나? 윤 의사의 의거로 사망하거나 다친 인물들은 말 그대로 일제 군부와 정계를 이끄는 핵심이었습니다. 군신이라 불린 시라카와 요시노리를 비롯해 상하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 사다지 등이 사망했고,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기치사부로 중장은 한쪽 눈을 실명했습니다. 제9사단장 우에다 겐키치 중장은 다리를 절단했고, 주중 일본공사 시게미쓰 마모루는 오른발이 잘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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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장지에서 발굴된 윤봉길의사 유해 |
| ⓒ 윤봉길의사기념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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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효창원 윤봉길 의사 묘역 |
| ⓒ 김종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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