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것 하는 아티스트, 이찬혁이 말하는 희망 'EROS'
[박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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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찬혁 앨범 < EROS > 타이틀 '비비드라라러브'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
| ⓒ YG엔터테인먼트 |
"세상이 변할 거라고 했었지 / 유감스럽게도 나의 친구여 / 상한 포도알이 다시 신선해 지나."
타이틀 '비비드라라러브'의 일부 가사처럼 앨범 곳곳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냉소적 시선이 깔려있다.
말하자면 이는 데뷔 초 'Give love', '오랜 날, 오랜 밤' 등에서 보여줬던 아기자기한 감성에서 나아가 그가 보다 음악 안에 자신의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는 성장의 증거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2021년 < 쇼미더머니 10 > 무대를 발칵 뒤집어 놓은 한마디 '어느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와 결을 같이하는 태도인 것이다.
성장의 증명. 기실 그의 음악적 완숙도는 전작 < ERROR >를 통해 이미 한 차례 인정받은 바 있다. 따라서 신보를 바라보는 데 있어 1집은 그 변화의 정도를 파악하는 훌륭한 바로미터다. 이전과 같이 이 작품도 어떠한 상황을 가정, 상상하며 앨범을 꾸렸다. 1집이 '나의 죽음'을 떠올리며 길을 낸다면 이번에는 첫 곡 'SINNY SINNY'에서 유추할 수 있듯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을 그리며 앨범의 스타트라인을 새긴다.
콘셉트 음반이라는 것은 같지만, 두 작품은 몇몇 지점에서 확연한 차이를 낸다. 우선 전작이 지금에 시점 맞췄다면 후자는 시곗바늘을 돌려 그 배경을 1980년대로 가져간다. 실제로 < ERROR >가 전자음을 근간으로 자신이 사망하는 순간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그려냈다면('목격담', 'Siren') < EROS >는 신시사이저, 브라스 섹션, 다층의 코러스 등을 풍부하게 섞어 복고 지향적 사운드를 핵심으로 삼는다.
현재와 과거 그리고 특정 상황을 가정한다는 미래 사이의 이 벌어진 틈은 이찬혁 메시지에 더 힘을 실어 넣는다. 복고. 즉, 작품이 소환한 1980년대가 말 그대로 하나의 픽션, 판타지로서의 세계관을 굳히고 더욱 또렷이 앨범 속 세상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뮤직비디오 혹은 무대 위에서 그가 현장을 한 편의 뮤지컬처럼 만든 것과 맞닿아 시너지를 낸다.
유기적이란 측면에서 본 작은 이전만큼의 높은 완결성을 지니지는 않는다. 특히, 전반부 복고풍의 대중적 선율로 이야기를 꾸며냄과 별개로 'Eve'를 시작으로 톤 다운된 후반부 전개는 앞선 기대감에 균열을 낸다. 이야기의 헐거움을 메우는 건 가사이며, 메시지다. 유일하게 진실한 사랑에 대해 노래하는 'Eve', 자신을 괴물에 빗댄 듯한 'Andrew', 사람들을 꼬리 잘린 새에 비유하며 사랑의 방향성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꼬리' 등. 순도 높은 철학적 고민의 흔적이 곡 면면에 묻어 있다.
그리하여 이 음반은 음악을 하는 현재의 이찬혁을 보여준다. 지금의 그가 골몰하는,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여기에 담겨있다. 뮤지션 프린스가 스쳐 가는 'TV show'나 '돌아버렸어'는 자조적이지만 이를 유쾌한 선율에 풀어낸 모습이 매력적이고, 또 하나의 타이틀이라고 봐도 무방한 '멸종위기 사랑'은 이찬혁다운 발칙한 상상이 매혹적으로 뒤섞여 있다.
또한 끝내 만족스러운 것은 그가 결핍 있는 사랑을 분노로 마무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보코더를 사용해 뭉개진 목소리로 노래하는 끝 곡 '빛나는 세상'에 이르러 결국 우리는 이찬혁이 말하는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빛나는 세상은 오지 않았지만, 그걸 바라는 우리는 빛이 날 거야 / 좌절이 반복되어 너는 내일이 두려운가? 미안하게도 나는 그렇지 않네."
사랑을 중심으로 냉소와 좌절과 절망과 비관과 희망 사이를 매끈하게 오간다. 제 것을 하는 아티스트. 이번에도 그의 음악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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