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 위에선 영웅, 링 밖에선 악역' 프로레슬링 전설 헐크 호건, 심장마비로 사망...향년 71세 [춘추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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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크 호건이 죽었다.
프로레슬링계에는 여러 전설들이 있지만, 호건만큼 미국과 전세계 대중문화에 깊숙이 파고든 인물은 없었다.
일각에선 단순한 쇼맨십이라고 폄하했지만, 호건의 등장과 함께 프로레슬링은 주류 오락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8, 90년대 한국 청소년들에게 "헐크 호건"은 곧 프로레슬링 그 자체로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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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춘추]
헐크 호건이 죽었다. 사인은 심장마비, 향년 71세다. 프로레슬링계에는 여러 전설들이 있지만, 호건만큼 미국과 전세계 대중문화에 깊숙이 파고든 인물은 없었다. 그리고 호건만큼 극명한 명암을 가진 인물도 없었다.
1980년대 프로레슬링엔 '헐크매니아'라는 바람이 불었다. 빨간색과 노란색 의상, 탈색한 콧수염, 경기 전 셔츠를 찢어버리는 퍼포먼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이 모든 게 하나의 문화 코드가 됐다. '파격적 캐릭터'라는 평가가 나왔다. 일각에선 단순한 쇼맨십이라고 폄하했지만, 호건의 등장과 함께 프로레슬링은 주류 오락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WWF, 지금의 WWE는 호건을 앞세워 전국구 브랜드로 성장했다. 1985년 첫 번째 레슬매니아에서 미스터 T와 팀을 이뤄 100만 명이 유료 TV로 시청하게 만들었고, 1987년 앙드레 더 자이언트와의 경기는 3300만 명을 TV 앞에 붙들어 놓았다. 당시 호건의 인기를 증명하는 숫자다. 멀리 한국에서도 호건의 인기는 대단했다. 8, 90년대 한국 청소년들에게 "헐크 호건"은 곧 프로레슬링 그 자체로 통했다.

문제는 링 밖의 호건이었다. 2015년 한 테이프가 공개됐다. 2007년 녹음된 것으로, 딸이 흑인 남성과 사귀는 것에 반대하며 인종차별적 욕설을 반복한 내용이었다. "나는 어느 정도까지는 인종차별주의자다"라는 그의 발언은 30년간 쌓아온 영웅 이미지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WWE는 즉시 계약을 해지했다.
2012년에는 성관계 동영상 유출 사건도 있었다. 호건은 가커 미디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억 4000만 달러(약 1900억원)를 받아냈지만, 이미 훼손될 대로 훼손된 그의 명성은 회복불가능한 상태였다.

호건은 말년에 도널드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2024년 공화당 전당 대회에서 연설까지 했다.무대에서 시그니처 동작인 셔츠 찢기까지 선보였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열광했지만 반대 진영 사람들에게는 한물간 스타가 정치를 쇼 비즈니스로 전락시키는 모습으로 비쳤다.
호건의 몰락은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한 결과이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단순한 선악 구조와 과장된 애국주의가 통했지만, 2020년대에는 다양성과 포용이 더 중요한 가치가 됐다. 인종차별 발언과 정치적 편향성은 그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올 1월 WWE 넷플릭스 첫 방송에서 호건이 등장했을 때 LA 관중들이 보낸 야유 소리가 그의 마지막 모습을 상징한다. 한때 관중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던 영웅의 마지막 모습치고는 너무나 쓸쓸했다. 그것이 테리 볼레아(호건의 본명)라는 한 인간이 걸어온 길의 끝이었다. 복잡하고 모순적인 인물이었지만, 분명 미국 대중문화사에 지워지지 않는 족적을 남긴 인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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