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권리 강화하는 상법개정안, 치명적 약점 있다 [소셜 코리아]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당대의 지성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정승일]
상법 개정안이 지난 3일 여야 합의로 통과되면서, 기업 지배구조의 선진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평가 속에 종합주가지수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소액주주들은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반면, 기업 쪽에서는 부정적인 기류도 적지 않습니다. 주주의 이익을 앞세우다 보면 기업의 혁신 의지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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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코스피 등 주가가 상승세를 나타나고 있다. |
| ⓒ 셔터스톡 |
상법개정안의 전제, 주주 자본주의
먼저 법률적으로는 주주가 회사의 소유자이며 주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주주는 주식 일부를 소유했을 뿐이다. 회사 자산에 대한 통제권과 처분권은 그에게 없으며 그 권한은 이사회와 경영진이 행사한다. 모든 회사 자산 소유의 주체는 회사 즉 법인격 그 자체이며 주주는 배당권과 잔여재산 청구권, 그리고 주총 의결권을 가질 뿐이다. 유한책임 주주의 한계이다.
주식회사와 주식시장 제도가 성장한 결정적 전환점은 19세기 중반 주주 유한책임 (limited liability) 원칙이 정착하면서다. 주주가 회사의 채무에 대해 자기 지분만큼만 책임지기 때문에 회사가 파산할 경우에도 주주의 개인 재산은 보호받도록 하는 제도다. 이전에는 주주 무한책임 원칙이 일반적이어서 기업 파산 시 주주·투자자들도 큰 손해를 입었다. 유한책임 원칙은 주주·투자자의 투자 리스크를 제한해, 주식 매입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었다. 유상증자의 폭발적 증가와 함께 주식회사와 주식시장 제도가 성장한 결정적 계기다.
그런데 지배주주 역시 소수주주와 마찬가지로 유한책임의 주주일까? 이 경우 은행이 지배주주가 이사회를 장악한 회사에 기꺼이 돈을 꿔주려 할까? 거래업체가 그 회사와 기꺼이 외상·어음 거래에 나서려 할까? 은행은 단순히 법적 책임 여부보다 거래 회사 지배주주의 신용과 평판(개인의 재산 담보력도 포함된다)도 고려해 대출 여부를 판단한다. 기업 간 어음 거래 역시 거래 상대 회사 지배주주의 신뢰성(재산과 실력 등)에 기반 한 공식·비공식 신용 시스템에서 작동한다. 한마디로 '신용 기반' 자본주의인 셈이다.
현실 경제와 현실 법 적용에서는 소수주주에 견줘 지배주주에게 훨씬 높은 윤리적·사법적 책임이 부과된다. 회사의 지배주주는 잘못된 이사회 결정에 대해 훨씬 높은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일종의 무한 책임이다. 반면에 회사의 의사결정 및 경영과 무관한 주주·투자자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 유한책임 원리가 작동한다. '권한에 비례하는 책임'의 원리다. 지배주주와 소수주주의 책임을 이렇게 차등화하는 것은 사회정의와 경제정의에 부합한다.
석학들이 주주 자본주의를 비판한 이유
그렇다면 주주자본주의의 전제인 '모든 주주는 평등한 주인'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소수주주들도 지배주주처럼 자기 지분보다 더 많은 윤리적, 사법적 책임을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것인가? 소수주주들의 권한을 지배주주에 대항할 만큼 강화하되 책임은 유한책임 원칙을 내세워 회피하겠다는 것인가? 이 경우 '책임 없는 권리'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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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
| ⓒ AFP/연합뉴스 |
주주자본주의의 기저에는 회사는 오직 주주들의 결사체 즉 '자본의 결사체'라는 사상이 깔려있다. 우리나라 상법·회사법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실 경제는 자본과 함께 노동과 토지(자연)의 3가지 생산요소를 반드시 포함해 작동한다. 생산의 주체인 회사는 자본만 아니라 노동(사회)과 토지(생태)가 반드시 함께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결사체'다.
스티글리츠와 엘리자베스 워런에 따르면, 회사란 주주(지배주주와 소수주주)만 아니라 직원·노동자와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사회적 공동체이다. 게다가 언제든 주식을 팔고 떠나면 되는 충성심 없는 유한책임 주주·투자자와 달리, 직원·노동자들과 가족(지역사회를 포함해)은 때로 평생 회사를 위해 일한다. 심지어 회사가 많은 빚을 지거나 손실을 입어 위기에 처할 경우, 임금삭감과 추가 근무까지 감수하는 '책임질 줄 아는 이해관계자'다.
그래서 워런은 "대기업은 단지 주주·투자자만 아니라 노동자, 지역사회, 국가로부터 법인격과 특권을 부여받은 존재이며 따라서 이들 모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연 매출 10억 달러 이상 대기업은 상장·비상장 불문하고 이사회 구성원의 40% 이상을 독일식 노동이사로 선출하는 법안을 제출했다(Accountable Capitalism Act). 이 법을 둘러싼 논란은 2019년 미국의 주요 대기업 CEO 연합체(Business Round Table)가 '기업 경영의 목적은 주주·투자자 이익 극대화가 아니라 이해관계자의 이익 도모다'라고 선언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고, ESG 논의로도 이어졌다.
즉, 재벌 총수 등 지배주주의 무능과 사리사욕, 순환출자 등의 문제는 주주·투자자 모델만이 아니라 이해관계자 모델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오히려 이렇게 볼 때 더 잘 해결할 수 있다는 설득력 있는 논의들이 제시되어 왔다.
주주권한을 강화하면 경제가 성장할까?
주주·투자자 권리 강화는 주주·투자자 수익성 강화로 이어진다. 주주권 강화를 요구하는 이들은 입을 모아 '한국의 낮은 주주환원율(29~32%)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라며, 그것을 미국(약 92%) 수준은 아니라도 적어도 OECD 선진국 평균(68%)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증권사와 투자자단체들은 76%까지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주주환원액은 현금배당과 자사주 매입, 소각을 합친 액수를 뜻한다. 요즘은 주로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통해 ROE(자기자본이이익률)와 PBR(주가순자산비율)을 높이는 방식을 요구한다.
법인세 납부 후 순이익은 주주환원과 이익잉여금(사내유보금)으로 배분된다. 주주환원이 많아질수록 사내유보금이 감소한다. 회사의 실물투자 재원에는 내부자금(사내유보금)과 외부자금(대출금과 회사채·주식 발행)이 있다. 사내유보금은 무이자·무배당이므로 회사 경영진이 가장 선호하는 재원이다. 따라서 사내유보금이 감소하면 실물투자가 줄어들 위험이 있다. 주주환원율을 32%에서 76%로 2배 이상 높이면 우리나라 상장사들의 실물 투자가 현재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정부의 '성장 우선'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지점이다.
고투자·고성장을 보여온 중국의 주주환원율(31%)과 비슷한 수준의 낮은 주주환원율 덕분에 한국 경제는 1인당 평균 소득 3만 6천 달러를 달성하며 겨우 선진국 문턱을 넘었다. 앞으로 OECD 평균 수준의 높은 주주환원율로 저투자·저성장 모델이 고착될 경우, 한국은 선진국 문턱에서 멈춘 채 정체될 위험성도 적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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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워싱턴주 렌튼에 위치한 보잉 공장에 보잉 로고가 표시되어 있다. |
| ⓒ AP/연합뉴스 |
하지만 2019년부터 보잉 737 Max 기종에서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보잉 경영진이 품질·기술 투자를 줄였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2020~22년에는 코로나 셧다운으로 세계 항공기 수요가 급감했다. 2019년부터 누적 적자가 3백억 달러가 넘었다. 겨우 4억 달러의 자기자본은 순식간에 잠식되었고, 회사는 파산 직전의 위기에 이르렀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의 지원(회사채 보증)과 연방정부, 즉 국방부와 NASA 차원의 보조금(조달계약)이 없었다면 보잉은 이미 파산했을 것이다. 국민의 혈세로 회생한 셈이다. 대동소이한 일이 반도체 기업인 인텔에서도 지난 15년간 벌어졌다. 주주·투자자들은 수익만 빼먹고 손실은 사회와 국가에 떠넘겼다.
높은 주주환원율과 기술투자가 공존하기 어려운 이유
혹자는 미국의 화이자(제약), 엔비디아(반도체), 구글(IT) 등의 사례를 들어 이재명 정부가 표방하는 높은 주주환원율과 높은 기술투자(R&D)가 동시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화이자와 엔비디아, 구글은 영업마진율(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이 30~50%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순이익이 영업이익의 절반 수준에 이를 정도로 높기 때문에, 순이익의 대부분을 주주·투자자들에 환원해도 나머지 절반으로 세계 최고 R&D 집중도(매출액의 15~25%)를 유지할 수 있다. 미국 연방정부가 지난 80년간 '기업가형 국가'(세계적 경제학자 마추카토의 저서로, '창조적 파괴를 이끌어내는 주체로서의 국가'를 강조했다) 정책을 펼친 결과, 미국 회사들이 인공지능(소프트웨어)과 반도체, 바이오·제약, 항공·우주 등 과학·지식 기반 산업에서 세계 시장을 사실상 독과점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 정부와 대기업들이 앞으로 수십 년간 노력해도 모방·추격이 쉽지 않은 모델이다.
이재명 정부가 국가전략 산업으로 지정한 인공지능(네이버 등)과 반도체(삼성전자 등), 전기차(현대기아차 등), 이차전지(LG엔솔 등), 바이오·제약(셀트리온 등), 방산(현대로템 등) 산업의 영업마진율은 5~15% 수준이다. 한국만 아니라 유럽과 일본의 대기업 역시 대동소이하다.
미국의 과학·지식 기반 회사들은 제조·공정(공장)을 아웃소싱한다. 그에 반해 한국의 대기업들은 국제적 비교우위를 제조·공정 관련 품질관리와 기술력에서 확보해 수익을 내고 있다. 설비와 공장에 많은 자본과 자산이 투하되는 만큼 ROE(자기자본이익률)와 ROA(총자산이익률)를 손쉽게 높일 수 없다. 그런데도 ROE를 높이고 그 순이익의 70% 이상을 주주·투자자들에 분배하라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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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승일/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
| ⓒ 본인 제공 |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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