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준비 90% 전무... "당신은 죽음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차종관 2025. 7. 2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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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죽음과 임종준비 집담회 열려... 요양 현장·재택 의료·커뮤니티 장례 등 대안 모색 나와

[차종관 기자]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지하다해에서 ‘죽음과 임종준비 집담회’가 시작되고 있는 모습. 왼쪽은 구은경 사단법인 여성이만드는일과미래 이사장, 오른쪽은 박미정 에이징솔로네트워크 이사.
ⓒ 차종관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곧 지금을 잘 사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복합커뮤니티 공간 '지하다해'에서 열린 '죽음과 임종준비 집담회'는 이 문장을 증명하는 자리였다.

행사 시작 전부터 현장은 따뜻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평소 죽음과 웰다잉에 관심이 많던 시민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며 설레는 마음으로 공론장을 기다렸다. 죽음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도 이곳에서는 유머와 웃음 속에서 자연스럽게 오갔다. 한 참가자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이 자리 자체가 이미 위로"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번 행사는 지역사회 임종관리 네트워크 준비모임이 주최하고, 재단법인 숲과나눔과 사단법인 여성이만드는일과미래(아래 여성미래)가 후원했다. 주최 측인 프리카레는 공짜 카레 한 끼로 시작된 여성미래 회원 소모임으로 출발했다. 이들은 '누구나 원하는 곳에서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사회'라는 공통된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서비스가 아닌 시민 주도의 돌봄과 애도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설문조사로 드러난 죽음 준비의 공백

행사 1부에서는 올해 4월 24일부터 5월 31일까지 진행된 죽음과 임종준비 관련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총 52명이 응답한 이번 조사에서 "임종 준비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90.4%(47명)에 달했다.

사전에 임종 준비를 한 사람 중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경험이 있는 사람은 26.9%(14명), 상조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25%(13명), 유서를 작성한 사람은 11.5%(6명)였다. 반면 "아직 임종에 관해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다"는 응답은 40.4%(21명)에 이르러 '죽음 준비의 공백'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응답자들이 가장 원하는 임종 방식은 고통 없는 평온한 자연사(58%), 사랑하는 이들과의 작별 인사(53%)였다. "집에서 조용히 떠나고 싶다"는 답변도 많았지만, 실제 재택사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나 절차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장례 및 요양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장례 절차의 과도한 형식화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응답자들의 연령대는 50대(44.2%, 23명)가 가장 많았고, 40대(28.8%, 15명), 60대(17.3%, 9명) 순이었다. 성별로는 여성 응답자가 84.6%(44명)를 차지해, 여성들이 특히 죽음과 임종 준비에 대한 관심이 높음을 보여줬다.

임종 경험에서 가장 두드러진 감정은 후회(63%), 아쉬움(57%), 죄책감(42%), 두려움(38%) 순이었다. 응답자들은 가족이나 지인의 임종을 경험하며 "너무 갑작스러워 애도할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했다"거나 "병원과 장례 절차가 지나치게 행정화되어 개인적인 작별을 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특히 1인 가구나 독거노인의 경우,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이 더 고립적이고 불안정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응답자 중 한 명은 "가족이 없으면 시신 인도가 어렵고, 무연고 장례로 처리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죽음은 개인적인 경험인 동시에 사회적 사건"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지하다해에서 ‘죽음과 임종준비 집담회’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한 여성 참가자가 발언하고 있다.
ⓒ 차종관
이날 집담회에서는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한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참석자들은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불길하다고 회피하는 문화"를 문제로 꼽았다. 한 40대 여성 참석자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병세 악화로 연명의료 여부를 묻는 순간이 가장 힘들었다"며 "제대로 된 정보를 미리 알고 준비했다면 덜 혼란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리카레 팀의 방향성도 이날 더욱 뚜렷해졌다. 구은경 여성미래 이사장은 "죽음은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사건"이라며 "누군가의 임종은 가족과 지인뿐 아니라 지역사회 모두가 준비하고 배려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프리카레는 앞으로 임종관리사 양성, 여성 상조회 실험, 라이프 설계 워크숍 등을 통해 '시민주도형 웰엔딩 문화'를 확산시키겠다고 밝혔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현장의 분위기는 따뜻하고 솔직했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죽음과 애도 경험을 나누며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한 참석자는 "죽음을 이야기하다 보니 오히려 삶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존엄한 삶의 마무리 위한 세 가지 해법

행사 2부 순서로는 ▲요양 현장의 죽음 ▲재택 의료와 임종 관리 ▲커뮤니티 장례와 애도 문화 등 세 가지 발제가 이어졌다. 세 발제는 병원 중심의 임종 관행을 넘어 '어떻게 하면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다양한 해법을 제시했다.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고은주 울림두레돌봄사회적협동조합 이사는 요양 현장에서의 죽음을 생생하게 전했다. 그는 "요양보호사가 하루 3시간 방문하는 것만으로는 임종기에 필요한 돌봄을 충분히 제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요양 현장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죽음과 마주하는 경우가 많다. 자연사나 집에서의 평온한 임종을 꿈꾸지만, 제도적 한계로 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떠나는 분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고은주 이사는 고독한 죽음보다 '고독한 삶'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독거노인 중 울림두레돌봄센터 이용자의 30%는 사회적 관계망이 극히 취약했다. 그는 "노년에 자녀와 합가를 당연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보다는 누구나 혼자서도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요양보호사들이 임종 이후 장례 과정에서 배제되는 현실도 문제로 꼽았다. 고 이사는 "고인을 마지막까지 지켜본 이들이 제대로 애도할 시간조차 갖지 못한다. 돌보는 사람을 돌보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지하다해에서 ‘죽음과 임종준비 집담회’ 행사 2부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왼쪽은 정혜진 우리동네30분의원 원장, 가운데는 전승욱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채비 이사, 오른쪽은 고은주 울림두레돌봄사회적협동조합 이사.
ⓒ 차종관
정혜진 우리동네30분의원 원장이 두 번째 발제를 진행했다. 그는 재택 임종의 현실을 들려주며 "대부분의 사람이 집에서 편안히 죽고 싶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병원에서 임종하는 비율이 OECD 국가 중 한국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정혜진 원장은 그 배경으로 생애말기 돌봄의 부족, 자연스러운 임종과정에 대한 이해 부족, 재택 사망 후 경찰, 과수대 방문 등의 복잡한 절차를 꼽았다. "119에 연락하면 자동으로 경찰이 오고, 이후 형사와 과수대가 차례로 방문하면서 애도할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절차가 가족들에게 큰 심리적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정혜진 원장은 이어 "재택에서 임종을 준비하는 가족들은 보호자의 죄책감과 불안감이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식사나 물을 거부하는 임종기의 자연스러운 과정조차도 보호자들은 '혹시 내가 돌봄을 소홀히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으로 받아들인다"며 "재택 임종의 이해를 돕는 정보 제공과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우리동네30분의원은 장기요양보험이 시작된 2008년부터 방문 진료를 확대해 17년째 지역 환자들의 '집에서 떠나는 준비'를 돕고 있다. 정 원장은 "장비보다 대화가 더 중요하다. 의료진과 가족, 환자 간 충분한 소통이 평온한 죽음을 만든다"고 말했다.

세 번째 발제는 '채비'라는 대안장례 서비스를 운영하는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전승욱 이사가 맡았다. 그는 "죽음을 둘러싼 의례가 과시적이고 상업화된 방식으로 고착화되면서 정작 중요한 '애도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채비는 화려한 장식과 고비용 패키지 대신, 가족과 지인이 함께 참여하고 고인을 기억할 수 있는 공동체 장례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전 이사는 "장례는 고인과 남겨진 사람들이 서로의 관계를 정리하고 기억을 나누는 시간이어야 한다"며 "혈연 중심의 장례 관행을 넘어 이웃과 친구도 함께 애도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승욱 이사는 실제 사례를 통해 애도할 권리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가까운 사이였지만 공식 빈소에 참여할 수 없어 고인을 제대로 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채비는 '소수이지만 깊이 있는 참여'를 추구하며, 지역 커뮤니티가 직접 장례식을 준비하거나 기억 모임을 여는 방식의 장례도 실험 중이다. 전 이사는 "죽음은 개인의 사건인 동시에 사회적 기억의 문제"라며 "공동체가 함께 작별할 수 있는 작은 공간과 시간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죽음을 배우는 것은 곧 삶을 배우는 일"

자유 발언 시간에는 참가자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한 참석자는 "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지 못한 채 아버지를 병원에서 떠나보냈다. 끝내 인공호흡기와 기도삽관으로 고통스러운 마지막을 지켜보며 집에서 편히 떠나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무연고 장례를 치르는 친구를 도우며 절차가 얼마나 복잡한지 알게 됐다"며 "누군가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준비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프리카레 팀은 이번 모임 이후 '커뮤니티 장례 체험'을 준비 중이다. 이 체험은 실제 장례 절차를 간소화하고 공동체 중심의 애도 문화를 실습하는 워크숍 형태로 기획되고 있다. 구은경 이사장은 "다음 모임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장례의 의미와 애도의 과정을 몸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참가자들은 "죽음을 배우는 것은 곧 삶을 배우는 일"이라는 말에 공감하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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