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월담' 찍은 그 사람... "<서울의 봄> 생각났다"

박소희 2025. 7. 23.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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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호 등 16차 공판] 국회경비대 의장경호대장, 계엄의 밤 증언..."의장님 위치 보안 때문에 전화도 안 받았다"

[박소희 기자]

▲ 통제 속 국회담 넘는 우원식 국회의장 3일 오후 11시경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경찰이 통제 중인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담을 넘어 본청으로 향하고 있다. 2024.12.4 [국회의장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 연합뉴스
[기사 수정 : 24일 오전 10시 15분]

지난해 12월 3일 오후 10시 58분, 1957년생 우원식 국회의장은 담을 넘었다. 이 장면은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았다. 촬영자는 김성록 국회경비대 의장경호대장(경감)이다. 그는 23일 법정에서 "놀랍기도 했고, 역사적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며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상세히 증언했다.

김 대장은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조지호 경찰청장 등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왔다. 그는 비상계엄 선포 직후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에서 팀원 한 명, 수행비서와 함께 우 의장을 모시고 국회로 이동했다. 김 대장은 이때 경찰, 군인은 물론 아는 번호로 전화가 와도 받지 않았다. 그는 "워낙 긴장됐고, 의장님 위치나 보안사항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의장님 수행하는 보좌관 등의 전화는 받아도 위치는 말 안했다"고 설명했다.

"제가 그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군과 경찰이 동원되고 주요인사가 체포되는 그런 상황이다. 일단 의장님 안전이 우선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의장님 안전이 우선... 그때는 그 생각밖에 없었다"

10시 54분, 평소 우 의장이 이용하는 3문 앞에 도착했을 당시에는 이미 국회 주변이 차벽으로 막혀 있었다. 그때 박태서 공보수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김 대장은 "공보수석이 '어디냐'고 해서 '3문에 도착했는데 못 들어가고 있다'고 했더니 '의장님 내리시면 안 된다. 노출되면 안 된다. 안전하게 모시고 돌아가라'고 통화했다"고 말했다. 또 "비상계엄이라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단 (의장께서) 안전하게 국회에 들어가는 게 우선이다. 그때는 그 생각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후 김 대장과 우 의장은 3문에서 4문쪽으로 이동하다가 상대적으로 낮은 격자무늬 철문을 발견했다. 김 대장이 먼저 담을 넘었고, 이어 우 의장이 월담을 했다. 김 대장은 "울타리가 일자형으로 돼있어서 저희 같이 젊은 사람은 훌쩍 넘는 게 가능한데 의장님 같은 경우는 넘기가 약간 애매한 게 있었다"며 "(월담 장면이) 놀랍기도 했고, 역사적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약간 정신없는 상태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설명했다.

어렵사리 국회 본청 안으로 들어갔지만, 상황은 심상치 않았다. 김 대장은 11시 14분 의장 경호팀 단체대화방에 "의장님 위치는 절대 보안입니다. 노출되면 바로 체포 들어갑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체포조 운영에 관한 정보를 들었는가'라는 구승기 검사의 질문에 "전혀 들은 게 없다"며 "경찰, 저희가 흔히 쓰는 '체포 당할 수 있다'로 그냥 썼다"고 설명했다. 의장 경호팀 역시 경찰 신분임에도 기동대에 막혀 일부 팀원은 담을 넘을 수밖에 없었다고 부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불이 켜진 국회의사당의 모습.
ⓒ 권우성
11시 57분, 우 의장은 의장실 옆 접견실에서 '국회는 비상계엄 선포에 헌법적 절차대로 대응하겠다'는 긴급기자회견을 했다. 이 직후 집무실에 모여있을 때 누군가 "헬기 소리가 들린다. 군인들이 내리고 있다고 한다. 지금 기자회견을 했으니 의장님 위치가 노출됐을 거다. 군인들이 들어오면 바로 이쪽으로 올 것이다. 바로 피신하셔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장은 서둘러 우 의장을 대피시켰고 다른 직원들은 본청 곳곳의 불을 켰다. 멀리서 어렴풋하게나마 헬기 소리가 들렸다.

같은 건물 5층의 한 사무실 안에 들어갔을 때, 우 의장은 수행비서와 더 안쪽 사무실에 있었고 김 대장은 바로 앞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군인들이 헬기를 타고 들어온다고 했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솔직히 좀 두렵기도 했고. 제가 생각한 게 <서울의 봄> 영화처럼, (5층) 사무실에 있을 때 '군인들이 이 문을 박차고 들어오겠다'는 혼자만의 생각을 하고, '여기서 그냥 당당히 맞서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그 정도로 약간 긴장됐다."

20~30분 정도 지났을 때, 국회의원 절반 정도가 모인 것 같으니 본회의장으로 의장을 모시라는 연락이 왔다. 김 대장은 본회의장 안에서도 우 의장 옆을 지켰다. 그런데 12월 4일 0시 33분경 계엄군이 본청 233호 창문을 깼다. 김 대장은 "그때 의원들이 '군인들이 창문을 깨고 들어왔다. 빨리 회의를 진행하라'고 했다"며 "그때 (의장)경호팀이 다 들어와서 '우리는 군인들이 본회의장에 들어와 의원들을 끌어내고 하면, 의장님이 의결을 마칠 때까지 경호하자'고 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다른 경호원들은 총기와 실탄을 휴대하고 있었지만, 김 대장은 처음부터 없었다. 공관에서 서둘러 나오느라 챙기지 못해서였다. 그는 비무장상태임에도 줄곧 우 의장 곁을 지켰다. 김 대장은 "의장님 곁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이동을 안 했다"며 "총기를 가진 이유도 의장님이 위해상황일 때 사용할 수 있는데, 군인들이 총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저희가 권총으로 맞서봤자 그쪽은 중무장한 군인이기 때문에 안 될 거다. 차라리 맞더라도 그냥 몸으로 맞자고 생각했다"고 했다.

"솔직히 좀 두렵기도... " 광주 기억하는 경찰의 고백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긴급성명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재석 190인, 찬성 190인으로 가결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내란 특검은 김 대장이 당시 '체포'라는 용어를 사용한 데에 거듭 의문을 표했다. 그가 현직 경찰인 만큼, 조재철 검사는 "경찰 쪽에서 우 의장을 체포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든지 연락을 받은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김 대장은 "전혀 그런 연락은 없었고, '절대 보안'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고 답했다. 또 "경호원의 임무는 경호대상자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솔직히 상급부대인 경찰에서 연락이 오면 저도 아마 고민하지 않았을까. 그런 고민을 아예 없애기 위해 전화를 안 받았다"고도 했다.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 김 대장은 6년간 군 생활을 할 때 20사단에서 근무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파견된 부대였다. 그리고 그는 광주에서 공부했다.

"제가 광주에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5.18이나 계엄에 대해서도 많이 들었고. 약간 그런… 비상계엄은 주요정치인을 체포할 수 있는 상황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여튼 그래서 군과 경찰이 동원되기 때문에 '우리 경찰에도 (의장님 위치가) 노출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노출되면 위해상황, (이것을) 제가 표현할 수 있는 게 '체포'란 용어를 쓴 것 같다."

김 대장은 증인신문을 마칠 무렵, 재판부에 발언 기회를 요청했다. 그는 출석 전 검찰 조사 내용 등을 다시 살펴보면서 "저도 '내가 왜 이 단어를 썼지? 의심받을 수 있겠구나' 했다"면서도 "설명이 부족한 면도 있는 것 같은데, 재판에서 말한 것은 시간이 혼동되는 점은 있을 수 있지만 기억나는 대로, 사실대로 말했다"고 강조했다.

지귀연 부장판사는 "차분하게 말하셨고, 진심이 느껴졌다"며 "광주분이기도 하고, 재판부도 이해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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