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살 하반신 마비 장애인인 나, 임신해도 괜찮을까
[하성태 기자]
'츠네오는 그후로도 조제와 같이 살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 부부라고 생각하지만, 호적 신고도 하지 않았고,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고, 피로연도 하지 않았고, 츠네오의 가족 친지들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종이 상자 속에 담긴 할머니의 유골도 그대로다.' - 다나베 세이코 단편소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중에서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일본 문단의 권위 있는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 다네베 세이코의 단편 소설이 원작이다. 하반신 마비 장애인인 조제는 언젠가 츠네오가 떠날 걸 알지만 이대로가 좋다. 물고기처럼 죽은 존재로 사는 거고, 완전무결한 행복은 죽음 그 자체라는 논리다. 조제는 물고기 같은 둘의 모습에 만족감을 느낀다. 그걸로 족하다. 행복하다.
2000년대 초반 한국 관객들에게 유독 사랑받은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 속 조제(이케와키 치즈루)와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는 바다 여행 몇 달 후 쿨하게 헤어진다. 이후 츠네오는 대학 졸업과 취업이라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얼마 후 전 여친 앞에서 주저앉아 눈물을 터트린다. 소설과 다르게 영화는 휠체어를 타야 하는 장애인 여성과의 짧은 사랑을 경험하는 츠네오에게 취준생 신분에 걸맞은 젊은 날의 현실적 고민을 부여하고선 확연히 다른 결말로 끝을 맺는다. 영화 속 츠네오는 조제와의 행복한 미래를 상상할 수 없었던 거다.
이 장면은 상대적으로 다수의 관객이 공감할 법한 비장애인 남성의 시선과 해석이 투영된 결말이요, 단편 소설에 현실적인 살을 붙인 영화가 지향했던 바를 결정적으로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팬들이라면 한 번쯤 상상해 봄 직하다. 조제와 츠네오처럼 장애인 여성과 비장애인 남성이 결혼한 후 임신과 출산을, 육아를 겪는 모습을.
여주인공의 성격은 사뭇 다르지만 오는 30일 개봉을 앞둔 영화 <우리 둘 사이에>는 비장애인 남성과 결혼한 장애인 여성이 임신 과정에서 겪는 34주간을 그린다. 짐작하는 것처럼, 그 과정이 전혀 쿨하지도 마냥 행복하지만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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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우리 둘 사이에> 스틸컷. |
| ⓒ 인디스토리 |
임신 8주 차라고 했다. 무턱대고 축하를 해줘도 모자랄 판에 담당의는 심각한 얼굴로 임신 지속 여부를 숙고하라 권한다. 기분이 상한다. 장애인이라 이런 취급을 받는 건 아닌지 괜히 억울해지고 화가 난다. 얼마간 망설임 끝에 호선에게 사실을 알렸지만 돌아오는 건 축하가 아닌 "이런 일 겪게 해서 미안"하다는 사과다. 은진은 왜 축하가 아닌 사과를 먼저 받아야 하나.
친정엄마의 반응도 의외다. 임신 초반 겪은 입원에 걱정이 한가득이다. 얼굴도 못 본 태아보다 딸 건강이 먼저다. 그건 안 그래도 몸이 약해졌을까 봐 걱정인 남편도 마찬가지다. 그런 엄마는 딸이 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됐을 때 노심초사 헌신적으로 간호하고 돌봤다. 은진이 엄마의 반응에 서운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은진은 아이와 만날 결심을 한다.
그런 결심은 은진에게 심리적 이중고를 안긴다. 장애를 가진 내가 아이를 무사히 낳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또 행여 임신 과정이 순탄치 않은 것이 그 장애 때문은 아닌가 하는 죄책감의 이중고. 내가 먹고 있는 약이 혹여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까, 아이에게 장애가 유전되는 건 아닐까, 출산과 이어지는 육아가 가족을 힘들게 하는 건 아닌가. 일상이 고민의 연속이다.
<우리 둘 사이에>는 착하고 세심한 영화다. 현실의 냉혹함을 드러내기보다 현실 속 은진의 심리를 함께 들여다봐 달라고 권유하는 쪽에 가깝다. 34주라는 기간을 세분화하며 몸과 마음의 변화를 겪는 35살 후천적 하반신 마비 장애인 임신부의 심리를 파헤치기보다 찬찬히 대화하고 같이 고민해보자는 쪽이다. 사려 깊다는 표현이 딱 적절하다.
장애인이 부딪쳐야 하는 현실적 장벽과 같은 갈등은 딱히 제시하지 않는다. 은진이 겪는 현실은 장애인이 겪는 차별과 혐오가 일정 정도 탈색된 영화적 공간이다. 대학 시간강사 일을 하는 호선이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배달 알바를 뛰는 상황도, 즉 경제적 어려움도 갈등을 키우는 소재로 부각하지 않는다. 집중과 선택의 문제다. 영화가 집중하는 건 온전하게 장애와 임신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은진의 심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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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우리 둘 사이에> 스틸컷. |
| ⓒ 인디스토리 |
동서고금을 망라하고 코미디로, 드라마로 소비된 임신 소재 작품들도 대개는 여성들이 겪는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공포에 기반한다. 이 착하고 세심한 영화가 결을 달리하고자 작심한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다.
여성, 그것도 후천적 하반신 마비 장애를 가진 여성이 겪는 임신에 대한 공포를 <우리 둘 사이에>는 나름의 영화적 상상력으로 형상화한다. 여타 영상 콘텐츠들이 때때로 내세운 설정, 즉 은진에게 가중된 심리적 스트레스를 캐릭터로 가시화하는 것이다.
은진은 임신 초기 병원 옆 침상에서 이것저것 조언해 주던 만삭의 지후에게 호감을 느낀다. 늦은 나이에 임신을 했다는 지후는 그 이후로 만나거나 통화를 통해 은진을 차분하게 다독인다. 휠체어를 밀어주며 산책도 하고, 출산 후 일상을 상상하게 만들어 준다. 지후의 존재 자체는 일종의 영화적인 반전이다. 하지만 이 착한 영화는 그 반전마저도 은진의 심리를 오롯이 들여다보는 기능적 요소로 한정한다.
영화적으로 혹은 좀 더 자극적인 방식을 택하는 욕심을 낼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우리 둘 사이에>는 도달하고자 하는 주제와 목표에서 이탈하지 않는 일관성이 더 중요해 보인다. 이건 어떤 영화적 결단이다. 현실을 외면하지도 않고 일관되게 당사자성을 유지한 채로 장애인 임신부의 심리적 공포와 마주하고자 하는 결단 말이다. 후반부 은진 얼굴의 클로즈업이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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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우리 둘 사이에> 스틸컷. |
| ⓒ 인디스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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