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사람들
[정병진 기자]
|
|
| ▲ 넷플릭스 다큐 영화 <열대의 묵시록> 한 장면 |
| ⓒ 넷플릭스 |
소위 '복음주의'를 표방하지만, 실은 기독교 근본주의(문자주의) 성향인 기독교 신자들이 노골적으로 정치에 개입하고 조직적으로 부정선거 음모론 등의 가짜 뉴스를 유포한다. 더 나아가 대법원과 국회를 비롯한 국가 기관을 침탈하거나 내란을 시도한다. 이런 모습은 충격적일 정도로 한국과 유사하다.
물론 <열대의 묵시록>이 최근 브라질의 정치 상황을 다룬 첫 다큐는 아니다. 그보다 앞서 나온 넷플릭스 다큐 <위기의 민주주의>는 룰라 전 대통령의 몰락과 보우소나루의 부상을 다루면서 브라질 민주주의의 위기를 이미 조명하였다. 하지만 <열대의 묵시록>은 특히 복음주의 근본주의 세력이 어떻게 극우 정치와 결탁하여 민주주의를 훼손하는지를 깊이 파고든다는 점에서 더욱 뚜렷한 차이점과 강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현재 브라질에서는 가톨릭 신자 비율이 급감하는 중이다. 반면 복음주의 성향의 개신교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27~30%에 달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말라파이아 목사는 1982년부터 TV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꾸준히 영향력을 쌓았다. 그는 현재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에서도 수백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인물이다.
|
|
| ▲ 브라질 복음주의 막후 실세 말라파이아 목사와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
| ⓒ 넷플릭스 |
이들은 "낙태 반대, 동성애 반대, 마약 반대" 등의 보수적 의제를 앞세워 세를 결집한다. 또한 고위 관료들에게 '복음주의자'가 되라고 강요한다. 가령 보우소나루는 현직 대통령일 때 "브라질 대법관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복음주의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브라질 기독교 근본주의자들 중 일부는 "신의 권위에 반하는 이들과는 성전(聖戰)을 벌이겠다"고 말하며 폭력을 정당화하려 한다.
이와 같은 종교 극단주의는 결국 현실 정치에 깊숙이 개입해 국회와 대법원 침탈이라는 무서운 폭력 사태를 낳았다. 2023년 1월, 브라질에서는 보우소나루의 대선 패배에 반발한 극우 시위대가 군부 개입을 요구하며 육군본부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급기야 국회와 대법원 건물을 침탈해 대규모 폭동으로 이어졌다.
이 사태로 1500명 이상이 체포되었으며, 919명이 기소되고 약 400명이 수감되었다고 한다. 당시 보우소나루 측은 선거에 불복하며 군과 경찰을 동원해 내란을 일으키려 한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그러한 최악의 사태는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현재 보우소나루는 제한적 가택 연금, 전자 발찌 착용, 외국 정부 관계자 접촉 금지 등의 조치를 받고 있다.
|
|
| ▲ 브라질 국회와 대법원에 난입하여 창을 깨는 폭도들, <열대의 묵시록>의 한 장면 |
| ⓒ 넷플릭스 |
이들은 '반동성애', '차별금지법 반대' 등을 내세우며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면 곧바로 '사탄'이나 '종북'으로 낙인찍는 선악 이분법적 언어를 즐겨 사용한다. 이같은 종류의 공격은 미디어와 소셜미디어를 통한 가짜 뉴스 확산과 결합되어 더욱 큰 사회적 파괴력을 발휘한다. 가령 "룰라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교회를 탄압할 것"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
|
| ▲ 국회와 대법원 폭동 이후 나뒹구는 부조상과 깨진 유리창들. <열대의 묵시록> 한 장면 |
| ⓒ 넷플릭스 |
그런데 이와 같은 상황은 비단 브라질과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간다, 나이지리아 등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 필리핀, 러시아, 이스라엘에 이르기까지 종교 근본주의 세력이 정치에 개입하거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현상은 지금 세계적으로 확산 중이다. 이들은 권위주의 정권과 결탁하여 종교적 신념을 정치적 선동에 이용하고, 가짜 뉴스와 음모론을 퍼뜨리며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종교 자유의 본래 의미를 왜곡한다.
이처럼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사회 혼란을 부추기는 종교 근본주의와 신정주의적 흐름에 맞서기 위해서 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헌법이 규정한 '정교분리'의 원칙(제20조 제2항)을 더욱 강조하고, 종교 지도자나 종교 단체의 선거 개입과 직접적인 정치 활동을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종교를 가진 시민들이 합리적인 사고와 민주주의적 가치를 내면화할 수 있도록 시민 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시민 사회는 극단적 선동과 허위정보의 유통 경로를 감시하고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단지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는 절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신념과 존재를 인정하고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 약자를 억압하지 않는 존중과 인권 보호의 차원을 포함한다. 또한 신앙을 권력의 도구로 삼지 않는 문화도 민주적 기초에 해당한다. 최근 지구촌 상황은 신앙과 권력이 결탁할 때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금 우리는 종교적 맹신이 사람을 해치고 사회를 망치는 일을 막기 위한 다각적 노력이 절실한 시점에 서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겨자씨신문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용인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현수막... 동네에 험한 것이 들어온다
- 김건희 돈줄, 찾을 수 있을까
- 애 둘인데 갑자기 생긴 대출금...소비쿠폰 덕에 여름휴가 갑니다
- 갑자기 오전 회의가 잡혔다... '눈치 비용'을 아십니까
- 폭염 시작하자 그만둔 '실적왕' 택배기사... 다른 이유가 있었다
- 이 정도면 신이 물감통을 떨어뜨린 게 분명하다
- "헌재 때려부수자"던 서천호, 지역구 사천 집 팔았다
- 수원 갈 때 지나던 도로의 '배신'... 더 충격적인 오산시 해명
- 일본이 758조 미국 투자, 관세율 15%로 협상 타결
- 충남학생인권조례 폐지 측 변호사가 인권위원 후보? '자격 논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