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시작한 일,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어요"
‘청년활동가’. 익숙한 말 같지만, 막상 누군가에게 설명하려 하면 입이 멈칫하게 되는 단어다. 인터넷 창에 청년활동가를 검색해보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청년',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일하는 청년', '개인이 인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실천하는 청년'… 다양하고 막연한 정의만 있을 뿐, 이들이 살아가는 현실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렇다면 청년활동가는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기자말>
[황정욱 기자]
안산 지역에서 10년째 청년들의 고통을 대변하고 정치와 기득권에 청년에게 필요한 정책을 제안해 온 안산청년네트워크에서 청년 당사자를 만나 내밀한 대화를 나누고 대안을 찾는 과정을 열었다.
안산청년네트워크가 주최하고 시화나래환경기금위원회가 지원하는 '별의별 청년 이어말하기'는 '활동가 청년', '쉬었음 청년', '창업 청년' 세 가지 의제로 청년 당사자들이 직접 한 자리에 모여 그룹 인터뷰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안산청년네트워크 관계자는 "다양한 청년들의 이야기, 삶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기록해 이후 정책 및 대안 마련을 시도해보고자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별의별 청년 이어말하기'의 첫 번째 시간은 22일 오전 안산 스페이스오즈에서 진행된 '청년 활동가'들의 이야기였다. 노동, 환경, 성평등, 청년, 청소년 등 안산지역 청년 활동가 5명이 모여 대화를 이어갔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그들이 나눈 이야기는 닮아 있었다. 시작의 계기부터 지속의 이유, 그리고 앞으로 변화해야 할 현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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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산별의별청년이어말하기 '별의별 청년 이어말하기'에 참가한 청년활동가들의 모습 |
| ⓒ 안산청년네트워크 |
청년활동가로 살아가는 다섯 명의 출발점은 모두 달랐다. 누군가는 아픔에서, 누군가는 우연한 권유에서, 또 다른 이는 사회의 구조적 부조리 앞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이 활동가의 길을 택하게 된 데에는 공통적으로 '사람'과 '경험'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A씨는 자신이 상처 받았던 경험에서 출발했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치유 활동에 함께하면서, 치유의 과정조차 불편했던 자신의 경험을 떠올렸다. "이런 과정을 다른 사람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그를 활동가로 만들었다. 이후 청년공간에서 청년들과 만나면서, 청년들 또한 자신처럼 말할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활동의 대상과 방향을 자연스레 넓혀갔다.
B씨는 함께 일하던 이의 권유로 청년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현장실습의 불합리함과 서울반도체 산재사고, 공공 일자리 연결 사업 등의 현실을 마주하면서 노동의 출발선이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애초에 시작이 다르면 삶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그 고민은 곧 실천이 되었고, 지금은 이제 막 노동을 시작하는 청년들과 함께 현장을 만들고 연결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C씨는 중학생 때부터 봉사활동을 해오며 활동가의 길에 자연스럽게 발을 들였다. 고등학교 봉사동아리를 거쳐 단체와 연결됐고, 청소년 활동이 청년 활동으로 이어졌다. 대학생이 된 후에는 청년정책토론회 발제자로 참여하면서 정책 분야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처음엔 단순히 궁금해서 시작했지만, 점점 재밌어졌고, 무엇보다 사람들 때문에 이 환경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D씨는 처음엔 단순히 "인턴 자리가 있으니, 한번 가보라"는 말에 시작했고, 이후 활동 제안을 받고 일하게 됐다. 환경을 주제로 시민들과 만나고 알리는 활동을 하면서, 그는 스스로도 변화하고 있음을 느끼게 됐다. 그는 이어 "불편하다고만 느끼던 것들이 조금씩 바뀌는 내 자신을 보게 됐어요. 그렇게 활동 안에 서서히 스며들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E씨는 2015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 혐오와 차별의 현실을 처음으로 체감하게 됐다. 관련 커뮤니티를 찾아 페미니즘 독서모임에 참여하며 문제 의식을 키웠고, 이후 지인의 소개로 안산여성단체에 들어가 활동을 이어왔다. 그는 "그동안 겪었던 부당함과 괴로움을 단체 활동을 통해 비로소 '사회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특히 젊은 여성, 여직원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살아온 시간을 돌이켜보게 됐다"고 했다.
각자의 출발은 다르지만, 이들이 청년활동가로 살아가는 이유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이 겪은 경험을 타인의 변화로 연결하고 싶다는 진심, 그리고 사람을 통한 성장. 이 이야기는 단지 다섯 명의 개인사가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청년활동가들의 또 다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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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산 별의별 청년이어말하기 진행자들이 참가자들에게 별의별 청년 이어말하기 프로그램을 설명하는 모습 |
| ⓒ 안산청년네트워크 |
활동가로서의 삶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 자리에 계속 머물 수 있었던 데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보람이기도 했고, 연대였으며, 스스로 단단해지는 과정이었다.
E씨는 피해자들의 삶이 조금씩 변화할 때, 그 안에서 자신도 희망을 느낀다고 표현했다. 그는 "성별임금 격차 같은 구조적인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활동을 하면서, 나도 한마디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며, "맨날 혼자였는데, 이제는 함께 말할 수 있고,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힘이 생겼다"며, 활동을 통해 자신 안에 생긴 변화에 대해 설명했다.
A씨도 이어 "활동을 통해 자신이 단단해졌다"며, "포인트는 다 달라도 같은 방향으로 가는 동료들이 있다는 게 지속의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B씨는 '효용감'을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자신이 돕는 이들, 함께하는 사람들 속에서 오는 힘이 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동시에 부담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는 "청년들의 현실을 온몸으로 겪는다"며, "떠나가는 사람도 많고, 함께하면서도 다른 의견에 부딪히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시스템의 한계를 체감하며 "지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직업으로서의 활동가 시스템, 새로운 시선의 활동가 모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D씨는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봉사자나, 참가자들이 늘어나는 걸 보면 '함께하는 사람이 있구나' 싶다"며 그 순간들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만 행정이 요구하는 수치와 현장의 변화 사이 괴리를 느끼며 "가끔 목적을 잃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C씨는 졸업 후 현장에서 활동하며, "함께 일하는 사람이 좋아야 이 일이 가능하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작년에 진행한 청년 사업이 부족한 점이 많았는데, 마지막에 청년들이 고맙다고 말해줬을 때 뿌듯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상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 함께 고민을 나누는 동료들이 지속의 원동력이라고 했다.
"좋아서 시작했지만… 오래 하려면"
청년활동가들이 지속 가능성을 말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경제적 어려움과 제도의 부재였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지속 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E씨는 과거에는 '부품처럼' 일하다가 지금은 '사람 대접'을 받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다만 지속 가능한 활동을 위해서는 '인건비 개선'과 '지원 제도', '활동가도 노동자라는 걸 사회가 인정하는 시스템'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D씨는 인건비를 마련하기 위해 외부 강의로 수익을 채워야 하는 현실을 토로했다. "사업은 사람 손으로 하는 건데, 식비나 인건비는 지원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나 지자체 지원의 한계를 설명했다.
A씨는 "아직 젊어서 도전할 수 있었고, 좋아하는 일이니까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의 급여로 과연 오래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계속 있다고 말했다. "현재는 누군가를 부양하진 않지만, 앞으로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생긴다면, 애정 만으로 계속할 수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인력 확충'이나 '급여 개선'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C씨는 "현재는 일을 배우는 중이라 이 정도로 만족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는 또 다른 고민"이라고 덧붙였다.
B씨는 "공공 부문에서 만큼은 활동가를 전문성과 공공성의 영역으로 보고, 제도적으로 응원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처럼 인건비는 그대로 인데 사업만 늘어나는 구조는 한계"라며, "돈과 사람이 함께 유입되는 시스템, 이제는 만들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들의 이야기처럼, 청년활동가가 지속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은, 결국 이 사회가 스스로의 회복력과 변화를 지켜내는 길이기도 하다. 참가자들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위로를 얻고, 고민이 깊어졌으며,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한 참가자는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너무 소중했다"며 "이런 시간이 1년에 한 번이라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청년활동가라는 이름으로 만나지만, 결국은 사람과 삶이 중심이 되는 일"이니 만큼, "건강하게 오래 활동을 같이 해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참여자들은 이 자리를 계기로, 청년활동가들이 지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새로운 활동가들이 자연스럽게 유입될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지길 함께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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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산 별의별 청년 이어말하기 안산 별의별 청년 이어말하기 웹홍보물 |
| ⓒ 안산청년네트워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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