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시작하자 그만둔 '실적왕' 택배기사... 다른 이유가 있었다
사보회사를 다니다 육아를 이유로 경력단절이 되었습니다. 아는 분의 소개로 택배회사에 OP(오퍼레이터)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근무하며 느꼈던 이야기를 씁니다. <기자말>
[김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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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염특보가 이어진 지난 11일 오전 광주 광산구 한 택배회사 물류창고에서 노동자들이 선풍기 아래서 택배 물건을 분류하고 있다. (*사진의 업체는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 ⓒ 연합뉴스 |
얼굴이 하얗게 질린 기사가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사무실로 들어와 휴식을 취하지만, 택배 업무를 접고 퇴근할 수는 없다. 대신 해줄 기사가 없기 때문이다. 연신 "나 괜찮다"라며 다른 사람들을 안심시키고는 본인의 배송지로 향한다.
폭염인데... "쿠팡 본 받으라"며 호통치는 고객
'땀이 비오 듯 한다'는 말은 기사들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기사들 머리에서부터 땀이 물이 되어 줄줄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연신 닦아내지만 눈 뜨기도 버겁다. 새벽 6시부터 시작된 택배 분류 작업은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마무리된다. 낮 더위가 시작하는 12시, 기사들의 첫 배송이 시작된다.
폭염의 시작과 함께 영업점에서 가장 높은 실적을 자랑하던 40대 초반 기사가 그만뒀다. 실적이 높은 만큼 과중한 물량으로 매일 밤 10시가 넘어서야 배송이 마무리되어 건강이 염려되던 기사였다. 아니나 다를까 심장에 무리가 된다며 며칠 간 병원을 오가던 기사는 결국 퇴사를 선택했다.
인수인계가 마무리 되고 택배 업무를 처음 시작한 기사가 퇴사한 기사의 구역을 이어 받았다. 업무가 미숙한 만큼 항의 전화는 빗발친다. 지연 배송에 화가 난 고객은 다짜고짜 "쿠팡을 본 받으라"며 "그럴 자신이 없으면 택배 하지 말라, 누가 시켜서 하는 거냐" 화를 내며 전화를 끊는다.
이제 막 택배업무를 시작한 기사에게 항의 전화의 내용을 전달할 수는 없다. 그 기사마저 그만둔다면 비닐하우스가 많고 단독주택이 많은 해당 지역을 자원할 기사가 없기 때문이다. 담당 기사가 없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고객의 몫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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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볕이 뜨겁게 내리쬔 지난 11일 오후 3시 30분께 서울 강서구 화곡본동의 한 빌라촌에서 배달기사가 짐을 옮기고 있다. (*사진의 업체는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 ⓒ 연합뉴스 |
비닐로 지붕을 만들어 비를 잠시 피해보지만 임시방편일 뿐이다. 외부에서 작업하는 기사들은 비바람에 힘없이 날아가 버리는 비닐 지붕을 보며 택배가 젖을까 안절부절 못한다. 폭우가 내리는 기간이 길수록 배송 불가 지역에 대한 본사 공지가 늘어간다. 더불어 젖은 택배로 인한 항의도 증가한다.
기사가 천재지변을 막을 수 없는데도 파손 비용은 기사 몫이 된다. 쌀, 의류, 과일, 도서류 등 비가 오면 취약한 택배가 많지만 어떤 업체도 폭우 대비 포장을 하지 않은 채 택배를 보낸다. 본사 역시 계약서에 폭우나 폭염에 대비한 계약 조항을 넣지 않는다. 이에 따라 발생하는 업체 피해금은 기사와 분류를 담당하는 조업사의 몫이 된다.
기사들 사이에서 폭염보다 폭설이 낫겠다고 할 정도로 올해 폭염은 유난스럽다. 폭염으로 인해 아이스박스류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당일 배송이 늘어난다. 당일 배송에는 시간적 한계가 있어 밤 12시까지 배송을 해야 마무리할 수 있다. 밤 12시에 배송을 해도 아이스박스 특성상 고객이 녹아서 먹을 수 없다는 항의가 들어오면 배송 기사가 파손에 대한 책임을 진다. 겨우 당일 배송을 해도 고객이 항의를 하면 이를 방어할 법적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파손에 대한 법적 수단이나 계약 당시 면책 조항이 없어 간혹 이를 악용하는 업체들도 있다. 분명 금형을 뜰 때 생긴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배송시 파손됐다며 기사에게 파손 비용을 청구하는 형태다. 이를 방어할 방법이 없는 기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해당 파손비를 결국 물어낸다.
당연시되는 당일배송 문화
택배사들에는 택배에 대한 불만사항이나 칭찬 등을 적을 수 있는 홈페이지 내 게시판이 있다. 업무를 하는 몇 해 동안 택배기사에 대한 칭찬글은 단 한 건도 본 적이 없다. 대부분 택배가 지연되어 불만이라는 글들뿐이다. 여기는 쿠팡이 아니라고 설명을 해보지만 그런 식으로 일하면 발전할 수 없다는 고객의 항의 섞인 가르침만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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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택배노동자 긴급 폭염대책 촉구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주최로 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택배노동자 긴급 폭염대책 및 택배없는 날 시행 촉구 시민사회 공동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택배노동자들에 대한 긴급 폭염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
| ⓒ 이정민 |
이곳에서 택배 기사들과 함께 일하며 느낀 건, 본인의 남은 수명을 끌어와 쓰는 것 같다는 것이다. 수명까지 깎아가며 일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체력을 담보로 하는 일일수록 일에 대한 생명력은 짧다. 부디 올해 폭염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없기를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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